그것이 알고싶다 - 새 엄마를 풀어주세요, 소녀의 이상한 탄원서 칠곡계모사건 그 후그것이 알고싶다 - 새 엄마를 풀어주세요, 소녀의 이상한 탄원서 칠곡계모사건 그 후

Posted at 2014. 5. 25. 13:31 | Posted in 리뷰/TV

 추악하고, 참혹한 아동 학대 사건, 혹은 살인 사건인 칠곡 계모사건을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시 재조명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호러로 시작해 분노를 넘어 결국 슬픔으로 끝난다.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평할 수 있는 이번 내용은 포스팅하기도 전에 멘탈이 절반쯤 날아가고 시작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나 관련자들을 보면 한 두 번씩 울컥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눈물이 줄줄 흐를 만큼 슬픈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이미 2번 포스팅했으며,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도 관련 내용을 게재했었다. 어느 정도 아는 사건을 다시 재조명했는데, 눈물이 났다. 처음 칠곡계모사건을 접했을 때 울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에와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그것이 알고싶다.'진행자 김상중 씨는 한 가지 조언하며 시작한다. '보기 불편하다. 하지만 눈을 돌리지 말아달라.' 그 말은 사실이었다. 보기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래서 눈을 돌릴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도 사실일 것이다. 개인적인 멘탈 관리를 위해서 혹은 세상의 비극적인 일을 접해서 생기는 감정 소모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합리적 인간들에게 이번 방송은 정말 보기 싫을 것이다. 심장이 약해서 자극적인 내용이 부적절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필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불편하지만, 결코 소설이나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화나고 슬프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에 대해 눈을 돌리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영한 소재 중 충격적인 것들은 일명 레전드라고 불리며, 아직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편도 레전드에 들어갈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적임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른 것이다. 기상천외나 엽기가 아니었고, 끝없는 분노와 슬픔만 느껴진다. 


 칠곡계모사건에 인해 사망한 아이가 아닌, 그 언니의 관점에서 사건은 재조명되었다. 그래서 이 방송은 의미가 크다. '살아서 돌아왔으면 좋겠어.' 라는 게 소원인 아이는 언니이며, 그 대상은 동생이다. 학대 폭력으로 죽어버린 동생이 살아서 돌아오는 게 소원인 소녀는 아직도 정신적인 피해가 엄청나 보였다. 



#1 숨바꼭질 - 아이는 숨었었다. 








 소녀는 악몽을 꾼다. 곁에 누군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동생이 꿈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꿈의 내용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심장을 꺼내는 것이라고 한다. 심적 트라우마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소녀는 현재 쉼터에 있다고 한다. 계모와 아버지가 모두 구속 재판 중이기 때문이다. 쉼터 관계자가 말하는 소녀의 행동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자아낸다고 한다. '미안해, 미안해' 목 놓아서 장시간을 운다는 소녀는 애초에 가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미안해하고 있다.








 아이는 사건 초기에 동생을 자신이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때리고 배를 발로 찼다고 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알듯 이는 거짓말이었다. 이 조사 영상을 보면서 그냥 계모가 아이에게 시켰으려니 생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아이는 평생 죄책감을 가질 것이다.





 언니 소리의 전 담임교사가 증언하는 자매의 분위기는 결코 언니가 동생을 때렸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언니는 동생을 잘 챙겼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2013년 11월 30일 방송분 '검은 집'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은 방영됐었다. 전문가가 나와 12살 먹은 여자애의 타격으로 장 파열이 됐다는 데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시민들과 단체들은 '사형'을 외쳤다. 엄벌을 요구했으나 검찰은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http://ritlog.tistory.com/265 칠곡계모사건 대구지검의 상해치사 공소장 무변경) 




 언니 소리 양은 상해치사죄로 10년을 구형받은 계모에 대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다. '엄마를 돌려보내 주세요.' '우리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 엄마 돌려주세요. 부탁드려요.' 라는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보고 아이가 충격 때문에 앞뒤 분간이 안 가서 저러는구나 생각했었다. 물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결코 헛갈려서나 분별이 없어서 저 탄원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에 관한 내용은 뒤에 나온다.




 자매는 2명 모두 학대 피해자이다. 장 파열로 죽은 소원이와 더불어 언니인 소리도 몸에서 험한 상처들이 많았다.




 언니 소리는 경찰 조사에서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으며, 엄마가 없는 빈자리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위에 말했듯 소리도 학대 피해자이다. 의문은 들지만, 큰일을 겪은 어린이가 감당을 못해서 사리분별을 못 하고 있으려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웃 주민들이 생각하기에 소리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학대에 대한 분노를 동생 소원이에게 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인터뷰는 계모가 진범이라고 밝혀지기 전에 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원래 계모가 생기기 전까진 고모 곁에서 자랐다. 소리의 고모 강진숙(가명) 씨는 사건 후, 소리에게 많은 언론이 붙었다고 한다. 핫이슈가 된 사건에 대해 기사들의 탐구심은 당연하며, 피해자와 관련자에 대한 인터뷰도 그 탐구의 영역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슈가 만약 학대라면 적어도 피해자를 어느 정도 존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국민의 알 권리는 학대 피해자의 보호보다 상위의 개념인가? 설사 그렇더라도 누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그 권리의 집행권을 주었는가? 자극적인 소재에 대해 피해자의 심적 고통은 배제하고 일단 정보를 얻기 위해 인권이나 고통 따위는 싸그리 무시하는 언론의 잘못된 행태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화장실에 나타나며, 미행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소리가 언론과의 접촉을 꺼렸다는 것을 방증한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꼭꼭 숨기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가 중요하다. 밖으로 말하길 꺼렸던 소리가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서 입을 연 것이기 때문이다.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른들은 꼭 새겨들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마음 아프고 힘든 진실이라 할지라도.





 고모는 소리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그것이 알고싶다.'에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아이가 이제부터 하는 말은 상세한 학대의 재구성이다. 더불어 자신이 경찰 조사에서 동생을 상해했다고 말한 이유와 계모를 두둔한 이유까지 말한다. 


 소리는 취재팀 앞에서 바로 말하지 못한다. 한참을 끌고서야 입을 연다.









 한참이 걸려 아이가 내뱉은 첫 말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쉽다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동생 소원이는 죽었다. 그리고 언니인 소리는 아직도 그 검은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적어도 정신적으로.



 #2 산타가 오지 않는 집 - 그 집에는 아이들을 위한 산타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줄 산타는 없었다.



 주민들이 계모가 오고 이상하게 느낀 것 중 하나가 수도요금이었다고 한다. 유난히 많이 나온 수도요금은 아이가 셋이나 되는 집이기에 매일 목욕을 시킨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소리가 말하는 유난히 많은 수도요금의 해답은 바로 '물고문'이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머리를 넣었다 빼는 형태의 학대 때문에 수도요금이 많이 나온 것이다. 물고문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머리를 담갔다고 한다. 물고문은 자매 모두에게 행해진 듯하다.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이런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어느 나라의 관대한 법원도 궁금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아이는 덤덤하게 그냥 물고문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전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실제 사건에 대해 그것을 복기하면, 필연적으로 그 당시를 상상하게 된다. 아이는 그 학대의 순간을 다시 들춰내고 있는 것이다. 상처를 꿰매도 모자를 아이는 억울함을 알리려고 상처를 벌리고 있다. 적어도 이 사건에 분노했거나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눈을 돌리지 말고 똑바로 들어야 한다.



 물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아등바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사적으로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서 탈출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 상상초월의 고통이 끝날 무렵 반항이 잦아들 때쯤 계모는 아이를 건졌을 것이다. 질식의 고통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을까? 








 동생 소원이는 사망 당시 8세였다. 8세 여아를 들어다 거꾸로 욕조에 담근 상황을 상상해보면 정말 참혹한 그림이 상상이 된다. 물고문 때문에 4분 동안 기절해있는 동생을 보며 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리는 학대가 시작되면 빌었다고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잘못을 빌고 있다. 동생에게.







 쉼터 관계자는 소리가 식탐이 비정상적으로 많다고 한다. 그것 또한 학대에 대한 후유증이었다.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밥 대신 청양고추 10개를 먹게 했다고 한다. 이유는 소리가 매운 것을 싫어해서. 더 충격적인 것은 어른도 청양고추를 먹으면 매워서 씁~씁 거리는데 아이는 어떤 액션도 하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만약 학대를 잘 받지 못하면 다른 폭행이나 학대가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계모도 경찰 조사에서 소리를 계단에서 민 것에 대해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한 학대를 한 이유는 소리가 계단을 무서워해서라고 증언했다. 계단을 무서워하면 안 되나? 무서워하면 계단을 걷게 해야지 왜 밀었을까? 이런 상식적인 의문들은 애초에 사이코패스에게 통하지 않는다





 먹는 것에 대한 학대도 있었고, 배변에 대한 학대도 있었다. 자매는 학교에서 볼 일 다 보고, 최대한 비워서 집에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될 리가 없다. 만약 집에서 배변을 보면 더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 일은 바로 대소변을 마무리한 휴지를 먹게 한다는 것. 






 동생 소원이는 등에 크고 심각한 화상을 입었었다. 소원이는 학교 선생에게 라면을 억지로 고집부려 끓이다가 미끄러져서 뜨거운 라면 위에 넘어졌다고 변명했다. 소원이는 등에 화상을 입어 진물이 흐르는데도 큰 내색을 안 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선생이 병원에 데려갔다. 




 소리가 말하는 소원이 등의 화상에 관한 진실은 계모가 소원이를 엎드려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뜨거운 정수기를 물을 부어서 생긴 화상이라고 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작열통이라고 한다. 몸이 타는 고통인데, 물론 불은 아니지만, 화상을 입을 정도의 높은 온도도 그와 같은 고통 강도를 가지지 않을까? 


 끔찍한 상황에 대해 끝없이 상상해야 한다. 소리가 다시는 생각하기 싫었을 상황에 대해 입을 연 용기와 취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8살짜리 아이가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 계모가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등에 붓는다. 정신이 나갈 듯한 고통. 아마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고통이 아닐 것이다. 눈물이 나고, 뒹굴었을 것이다.  8살 여아의 고통 어린 울부짖음을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일면 시청자들의 분노를 종용해서 시청률을 올리려는 간악한 미디어의 행태를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일부러라도 더 많은 분노가 모였으면 한다. 적어도 분노라는 감정이 관심의 한 종류이기에 그렇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음식을 먹지 못하면 손가락을 입에 넣어 확 벌리기도 했으며, 대용량의 물을 한꺼번에 들이켜게도 했다. 만약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또 매질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웃에서는 애들 우는 소리는 물론 비명도 못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완전방음이 되는 집이거나, 아이들이 고통을 참았다는 것이 된다. 각종 학대와 매질에 대해 아픔의 신음도 내지 못했을 아이를 우리는 상상 해야 한다. 


 어렸을 때 무언가 잘못해서 부모님이 매질하면, 보통 8살의 경우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운다. 그리고 매질을 당하면 '악.' 같은 소리를 낸다. 성인도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은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학대를 당하면서도 학대를 견디지 못했을 시 당하는 학대를 걱정한 것이다. 역사상 전례없는 고문 아닐까? '남영동 1985' 라는 군사정권시절의 고문에 대한 영화에서도 고문을 당할 때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른다. 




 소원이가 죽어가던 밤. 복부에 집중된 폭행은 장간막을 파열시켰다. 내장이 상했는데 당연히 배가 아플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기에 매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원이는 아픔을 호소했다. 이에 계모는 아이에게 대변을 보라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대변은 보지 못했고, 또 복부를 맞았다고 한다.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이상한 교수, 당시 부검의는 장간막 파열과 창자의 염증과 천공, 위장 벽의 멍 췌장 주변의 출혈이 있었다고 말한다. 즉, 몸이 성한 곳 없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다. 





 당시 검안의 김지훈 씨는 장 파열에 인한 복막염은 건장한 성인도 활동을 못 할 만한 고통이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누워서 좌우로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하기 힘든 통증이라고 한다. 그 상태에서도 매질을 당했을 8살 소원이를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지옥이 있다면 이 세상이라는 어떤 사람의 말처럼, 정말 지옥에서나 맛볼 고통을 소원이는 감당했다. 성인이 옴짝달싹 못할 고통인데도 매질이 무서워 화장실까지 걸어가 대변을 보려고 변기에 앉았을 것이다. 상상하기로 아이는 아픈 것보다 계모가 말한 대변이 나오지 않은 것에 더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소리와 소원이는 심리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거기에 엄마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의 좋은 점은 잘 챙겨주는 것이며, 나쁜 점은 없다고 했으며, 완전 Good, 완전 다정하고 부드럽고 상냥하며, 이쁜 엄마라는 답변을 한다.






 #3 덫 - 계모의 덫, 아이가 계모 편을 드는 이유



 한 데칼코마니 그림을 보여주고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평가에서 언니 소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이한 해석을 한다. 다른 아이들은 사람이나 동물을 생각했지만, 소리는 '바위 문 사이로 지나가던 새가 문에 끼어서 죽은 모습'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소아정신과 이호분 전문의 원장은 아주 특이한 반응이며, 그림 카드의 기능이 대개 자기의 신체적 취약성 또는 손상을 볼 수 있는 카드에 자신의 이야기를 투사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것이 알고싶다.'팀은 언니 소리가 계모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 이유와 조사에서 계모를 두둔한 이유에 대해 스톡홀롬 신드롬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한다. 이 부분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전역을 들썩였던 납치와 18년 동안의 감금, 성 노예 사건인 제이시 리 두가드 납치 사건에선 스톡홀롬 신드롬의 사례가 보인다. 제이시 리 두가드는 범인과 함께 쇼핑하고 밖에 나갈 때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탈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가해자의 입장에 자신을 투영하는 스톡홀롬 신드롬 때문이다.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은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긍정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역설적인 심리적 현상이다. 흔히 은행강도가 인질을 잡고 농성을 할 때, 인질이 강도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대표 사례로 삼는 그것이다.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정태연 교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스톡홀름 신드롬이 어떻게 소리의 계모 두둔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실험은 두 그룹을 나눠 한 그룹은 불친절하지만, 막판에는 친절한 그룹, 한 그룹은 마냥 친절한 그룹을 만들어 각 그룹에 대한 아이들에게 도우미의 인상을 묻는 것이다. 






 아이들의 평가는 불친절했지만, 마지막에 친절해진 도우미에 대해 더 좋은 평가를 한다. 흔히 원래 전교 1등 하는 학생이 1등을 하면 당연하다. 100등 하던 학생이 1등을 하면 눈물 나는 노력의 화신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이 실험을 빗대면, 계모 또한 아이들에게 한 번씩 사랑해서 그랬다느니, 미안하다느니 했다는 것으로 아이들이 계모에 대한 희망의 덫에 걸리는 계기라고 연결 지을 수 있다. 


 효과의 차이에 인한 착각으로 아이가 계모를 두둔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저자) - 인간은 악을 기대했던 상황에서 선을 느낄 때, 그 선을 제공한 사람에게 더 감사함을 느낀다. 


 정말 그렇다. 원래 꾸준히 빵을 주던 자선단체보다, 곧 굶어 죽을 상황에서 숭늉 한 사발주는 조폭이 더 고맙다. 그런데 좀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있다. 역설적인 심리 상태인 스톡홀름 신드롬을 아이가 겪고 있었다면, 계모 두둔 탄원서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에 보낸 소리의 편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너무 괴롭다. 전 그 아줌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립니다. 거짓말하고 너무 힘들다." 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원장은 학대를 가하다가 때로 보살피거나 사랑을 표현하면 그것이 더 크게 와 닿는다고 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학대의 고통이 크고, 그 학대에 대해 피할 길이 없을수록 정말 그 온정을 사실로 믿고 싶은 심정이 든다고 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심리학 기재가 발현됐다기보다는 이런 심리 해석이 더 맞는 것 같다. 바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소리 양이 말하는 새엄마의 장점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였다. 정확히는 그 사람이 차지한 엄마라는 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포만감이었다. 편부 가정에 원래 있어야 할 요소가 빠진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란 그 존재 자체로 좋은 것이었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애정에 대해 더 갈망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더해서 편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매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하지만 갈망하던 애정은 고사하고 극한 학대를 당했다. 왜 그래야 했을까? 팔자일까? 아니면 무관심? 







  소리, 소원 자매는 교수인 고모 밑에서 아주 잘 크고 있었다. 계모가 생겨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데려간 그 이유가 이 사건의 단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법적 보호자의 배우자이므로 같이 살겠다는 데 말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취재결과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분명히 있다. 결국, 이 사건에도 돈은 연루되어 있었다. 본질적이진 않다. 


 당시 자매의 아버지 월급은 130만 원 선, 두 자매와 계모의 친자식까지 총 5명의 식구가 생계를 꾸려가기에 나쁜 경제 사정에도 계모는 아이를 원했다. 아이가 너무 좋아서 데려간 것은 아닌 것 같다.




#4 - 454일, 아이와 새엄마가 만난 날, 비극의 시작일, 되돌리고 싶은 날











 아이들을 데려간 계모는 그간 아이들을 양육했던 고모의 아들이 아이들을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용의자로 주목된 아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펄펄 뛰었다. 





 결국, 기관에 신고됐다. 용의자로 지목된 입장에서도 정말 결백하다면 오히려 수사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고모의 아들은 흔쾌히 스스로 고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 여부를 계모 측에서 원하지 않았다. 진짜 뒷냄새가 구리다. 이는 법적으로도 무고죄와 협박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죽은 소원이의 부검 결과에서도 성폭행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까지 모르는 이웃들은 아들을 이미 성범죄자로 인식했다. 이제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정신적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학생의 명예나 인권 따위 개나 줘버린 이 무고 협박의 이유는 돈이었다. 일단 아이를 데려간 계모는 성범죄 혐의를 씌움으로 어느 정도 형편이 괜찮은 고모로 하여금 합의를 원했던 것 같다. 이 사례가 사실이라면 계모는 그렇게 지능이 뛰어난 사람 같지는 않다. 게다가 고모 측에서 아예 금전적 도움을 안 준 것도 아니다. 아이를 데려다 직접 키우겠다는 것이 기특해서 집을 선뜻 내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계모가 아이들을 데려간 것은 아이를 이용하여 돈을 얻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보험 사기로 아이를 장애인 만들어버린 사건도 그렇고 힘없는 아이들은 돈에 눈 먼 어른들의 학대에 대해 일말의 반항도 못 하는 것이 변함없다. 




 자매의 계모는 초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계모의 전남편이 증언하는 그녀는 쓰레기였으며, 거짓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게다가 돈 관리도 썩 잘하지 못한 것 같다. 결혼반지를 가져다 팔 정도면 말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혼 당시에 계모는 양육권을 주장하며 친자식을 데려갔다. 그리고 전남편에게 양육권을 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를 돈의 매개로 보는 것이 생활고에 인한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습관이었던 것 같다. 150만 원에 아이의 양육권을 넘기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다. 학대 받은 자매도 불쌍하지만, 계모의 친자식도 불쌍했다.





 고모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모에게도 비용 청구는 시작됐다. 본성을 숨기고 아이를 위하는 척 열모(烈母) 코스프레를 하며, 소풍 비용이나 기타 부대비용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며, 돈을 받았다.







 계모는 소리 양에게 고모의 아들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하면 안되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아이가 쓴 탄원서에 대해 아이가 쓰지 않았을 거란 의혹을 제기했다. 탄원서 내용 중 불구속이나 유치장 같은 초등학생이 쓰기엔 다소 난해한 단어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친부는 여전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첫 공판 후 몇 개의 탐사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보도했다. 그때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도 있었는데 인상 깊었던 내용은 '아내(계모)가 불쌍하다.'란 말이었다. 

(http://ritlog.tistory.com/275 리얼스토리 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부모는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좋은 부모 노릇은 아무나 못 한다. 



 어떤 면에서 자매의 아버지는 인류 최강의 인종이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명제에 빗대어 보면,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자식의 죽음 앞에 저토록 시크한 사람이라면 정말 잃을 것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정말 헛소리가 분명하다. 죄를 짓는 것은 어차피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미워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란 말이 진리라면, 전 세계 형법 체계는 진리에 반하는 것이 된다. 죄에 대한 형벌을 사람이 받기 때문이다. (http://ritlog.tistory.com/151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진짜?)



 친부의 말처럼 계모를 미워한다고 해서 죽은 소원이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소리는 그것을 원할 것이다. 무언가 심하게 상황을 스스로 왜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알고싶다.'팀의 제작진이 아이에게 외치는 장면은 아마 이 사건을 대하는 온 국민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와주겠다.'란 말, 그것은 아이에게 너무나 허무한 거짓말이었다. 아이가 학대 당할 때 우린 도와주지 못했다. 물론 알지 못해서라고 항변할 수 있다. 여기서 도와주는 주체는 단체와 공권력이다. 사건을 조금 심도 있게 관찰한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의 학대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동기관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아이에게 사회에 대한 신뢰는 없을 것이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 아이들 말고도 수많은 아이가 학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그저 감정에서 발현된 우격다짐이다. 우리는 도와줄 수 없다. 아동 학대 방지에 대한 열의가 있는 정치인보다는 땅값과 개발 공약을 내건 정치인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까지 정치에 결부시키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을 도와줄 수 없다. 눈앞에서 맞고 있는 아이를 보호하는 것도 학대를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학대까지 억제할 때야 비로소 완벽한 도움 아닐까?


 언론은 도와줄 수 있다. 물론 지금 이미 학대당해서 죽은 아이는 도와줄 수 없겠지만, 현재 학대 당하는 아이는 도와줄 수 있다. 영향력 있는 방송이 이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도한다면, 여론이 형성되고 여론은 양은 냄비가 다 탈 때까지겠지만, 국회를 압박하여 관련 법안 발의를 재촉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이 의미 있는 방송이라고 언급한 이유이다. 








 자매의 친아빠는 소리 양이 소원 양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계모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답이 안 보인다. 물론 실제로 소리 양의 자백이 받아들여졌으면 법정에서는 진짜 별 거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아비란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소름이 끼치는 것은 비단 본 블레기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감옥에 있는 계모가 소리 양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가 없는 자리 힘들지. 미안하다. 엄마가. 잘 견뎌내고 엄마가 소리 곁으로 가는 동안 힘들더라도 기다려줘. 엄마도 다 같이 우리 가족이 모일 때까지 기다릴께.' 


 편지는 가히 A급 호러 소설을 보는 느낌이다. 분명 소리 양에게 엄마가 없는 자리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릴 채울 사람이 당신은 아니다. 힘들더라도 당신을 기다릴 이유 따윈 없으며, 능력 있는 법조인 중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형을 마치고 계모가 나오더라도 법적으로 제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한다. 



 이런 편지는 협박 혹은 위협으로 느껴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 자체로도 학대라고 생각한다. 



 소리 양도 대견하게 현실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학대 사건에 대한 징후를 알 법한 어른들이 이 사건에는 37명이 있었다. 그중에는 아동기관에서 나온 전문가도 있었고 성폭력 상담사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까지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학대를 막지 못했고 아이가 죽었다. 소리 양이 포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찰에 신고했는데 알고도 넘어가더란 말을 하는 아이가 과연 사회에 대한 어떤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도와주겠다.' , '잊지 않겠다.' 항상 그리 말한다. 하지만 결국, 일이 터져야 나오는 말들이다. 


 아이는 나라의 미래이다. 하지만 그 미래가 학대당하는 것에 대한 어떤 안전장치도 없는 것이 이 사건 안에서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는 논거는 비논리적인걸까?

 



 신경정신과 김준기 원장은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좌절을 넘어 절망에 가까운 것으로 결국, 학대에 대한 순응이 아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말한다. 마치 일제강점기 시절,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식민지 통치에 무릎을 꿇고 변절해갔던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한다.






 법원은 피고인 계모와 친부에게 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가벼운 형량이었다. '아이의 사망을 적극적으로 의욕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이란 판결문 발췌를 보면 검찰이 엘리트 집단이라는 말은 정말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정확한 판결문은 보지 않았다. 그래서 본 블레기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 징역은 오직 죽은 소원이에 대한 범죄 값이라고 알고 있다. 즉 같이 학대를 당했으나 살아있는 소리에 대한 책임은 아예 법적으로 논의조차 안된 것이다. 설마 죽지 않았으니까 물고문을 받았든, 비인권행위를 당했든 상관없다는 취지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칠곡 아동학대 사건 피해자 측 변호인 이명숙 변호사는 법조인의 입장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 즉,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은 점으로 이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본다고 했다. 







 소리 양은 스스로 판사라면 그들에게 무기징역을 내리고 싶다고 한다. 진짜 아이는 착했다. 당연히 사형일 줄 알았는데. 이런 착한 아이가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왜 또 다른 착한 아이는 맞아 죽어야 했을까?





 동생이 살아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소녀의 소원을 들으면서 울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쉼터에서 어떻게 하면 죽느냐며 가위로 손목에 상처를 냈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홍정희 과장은 아동 학대 특례법에 대해 설명했다. 학대에 대한 실질적 보호를 하겠다는 데 중점을 둔 법으로써 가해자의 엄벌과 보호 관계 회복, 피해 아동 보호가 주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 말은 반대로 지금까지 학대 피해자가 실질적 보호가 안 되고 있었으며, 법 마저 가해자를 엄벌하지 못했다고 자인하는 것이다. 






 아동학대 특례법은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법이지만, 환영하는 바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관계자가 밝히는 특례법 진행 사항은 충격적이다. 관련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구 했으나 반영이 안 된다고 한다. 즉 돈 없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학대에 대한 특례법 시행을 못 하고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 복지예산과의 말은 또 달랐다. 특례법에 대해 노의 자체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 말을 듣든, 어차피 두 군데 모두 한국의 정부기관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저런 정도의 효율을 가진 기관을 위해서 세금이 쓰인다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다. 게다가 이번 건은 둘 중 한 군데가 확실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저들이 저럴 수 있는 배경에는 국민적 무관심이라는 원죄가 있을 것이다.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 남윤인순 의원은 전혀 인프라를 더 확충하는 계획이 없다고 하는 것은 법만 통과시켜 놓고 그 법을 활용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동학대 관련 전문가들은 특례법이 인프라의 확충없이 현 상태에서 시행된다면, 기존의 업무에 마비가 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인원, 예산의 확대없이 신고건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방안은 없는 것이다. 


 한 때나마 전국들 들썩였던 사건에 대해 정치인들이 포풀리즘을 실행한 것이다. 이 아동학대에 대한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총선에서는 볼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인기를 의식해서 법안을 발의했든, 아니면 이득을 위해서 했든, 일단 발의를 했으면 그에 관한 사후 처리에 대해 감시하며, 부정이나 미흡한 점이 있을 시엔 국민이 준 권리를 가지고 충분히 피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아무 신경도 안 쓴 것이다. 직무유기라고도 생각한다. 






 한국 역사에서 아동학대라는 이름으로 그 문제의 화두를 사회에 던진 사건이 있다. 98년, 이웃 주민의 제보로 학대당하던 영양실조 상태의 영훈이를 발견한 것이다. 심한 상처는 기본이었다. 





 영훈이 사건을 계기로 2000년 아동복지법 전면 개정 및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이 설립하게 된다. 



 남매의 계모와 친부가 영훈이 누나 보람이를 굶겨 죽인 뒤 집 앞마당에 유기했었다.





 90년대 후반의 한국 아동인권의 끝을 보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누나 보람이가 사망했을 당시에 폭행 당한 이유는 누나가 영훈이에게 몰래 밥을 갖다 줘서 라고 한다. 물론 대부분 아이는 저런 학대를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최악은 존재했다. 지금도 그렇다. 한쪽에서는 아빠와 여행하며, 뽀뽀하고 음식해주면 엄지손가락 번쩍 치켜드는 귀여운 예능 꼬마가 있는 반면, 집에서 화장실 한번 이용하면 뒷마무리했던 휴지를 먹어야 하는 아이도 있지 않은가? 지금도 힘든 아이는 힘들다. 


 영훈이 사건의 보람이의 죽음으로 아동복지법이 전면 개정됐고, 아동복지기관이 설립됀다. 8세 여아 소원이가 맞아죽었다. 그래서 특례법이 발의 됀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동 학대에 대한 완전히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대처를 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아이가 죽어야 할까? 언제까지 소를 잃고 있는 외양간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하는걸까?







 소리 양은 커서 심리치료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준기 원장은 하나의 각인된 기억을 풀어내서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데는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즉 각인된 학대에 대한 기억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말일 것이다. 


 신경정신학적인 측면의 전문적 지식은 하나도 없지만, 단언할 수 있다. 아이는 죽을 때까지 학대 사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상세한 아픔에 대해 조금씩 망각할 수는 있지만, 결코 큰 틀에서의 기억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깨진 그릇처럼.



 칠곡계모사건 재판은 2심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과연 고등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간다. 그리고 은근히 그 재판은 중요한 면도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공동 인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심처럼 빛나는 법리의식을 앞세워 다수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벼운 처벌을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살인죄나 그에 준하는 죄를 적용할 것이냐는 앞으로 아동 학대에 대한 처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이가 생각한 상황은 어떨까? 같이 학대를 당하다가 동생이 죽었다. 소녀는 그런 동생을 죽였다고 스스로 말해야 했다. 위협은 그렇게 소녀를 살인범으로 몰고 있었다. 보복이 무서워 항상 엄마를 좋아하는 척을 했다. 계단에서 밀치고 물고문을 해도 그걸 못 견딜 시 내려지는 폭행이 두려워 아픈 티도 못 냈다. 각종 아동기관과 전문가, 경찰이 이런 학대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어떤 도움이 주지 못했다. 결국, 동생이 죽었고 큰 사건이 되어 엄마, 아빠는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 보내온 계모의 편지는 언제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어차피 사회는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가해자에게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덜 학대받는 길이다. 그래서 그녀의 탄원서를 썼다. 그럼에도 억울했다. 억울한 감정을 앞서는 것은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다. 사는 것이 고통이다. 쉼터 관리하는 어른에게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죽는 것이 내가 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다. 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이 사건이 큰 이슈가 될 때, 각계각층의 관심은 곧 우리나라의 모든 아동학대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정치인은 티비에 나와 성명을 발표하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특례법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관심이 꺼지고, 특례법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마치 아무 관심도 못 받고 죽어갔던 소원이나 음지에서 아무도 모르게 학대받는 아동과 같은 모습이다.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죽었고, 한 아이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클로징에서 나온 것처럼, 소리는 잘못한 게 없다. 부디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훌륭하게 자랐으면 한다. 그래서 말한 것처럼 심리치료사가 되어 같은 고통을 받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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