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이야기 Y - 악몽같은 8일, 집단폭행과 감금궁금한 이야기 Y - 악몽같은 8일, 집단폭행과 감금

Posted at 2014. 5. 24. 04:05 | Posted in 리뷰/TV

 어쩌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심플하기 까지 하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한 감상이다. 


 사건의 개요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친구와 낯선 사람 2명 총 5명에게 8일간 집단 폭행을 당하고 감금당한 내용이다. 가해자들이 말하는 폭행 동기는 첫 번째로 '만만해서'이며, 두 번째로 '애정 전선'에 끼어들어서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는 곧 죽을지도 모르는 집단 폭행을 당했다. 소화기로 맞았다는 내용이 있으니, 아마 그 정도 선에서의 폭행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가해자들이 밝힌 폭행 동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피해자가 힘없고 분별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약한 것에 대한 폭력행위 자체가 동기인 셈이다. 순수한 폭력성이다. 피해자가 입은 상처를 보면 너무나도 참혹하다. 무언가 납득될만한 이유가 있는데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까지 하게 된다. 


 피해자에게 이입해서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못해 부르르 떨리기까지 한다. 명확한 이유 없는 가혹한 폭력, 그리고 감금에 인한 폭력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가해자들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 폭력이 아닌 살인미수 급의 범행이라고 생각되며, 동기로 미루어보아 교화가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된다. 예상컨대, 아마 이들도 감옥에 들어가면 성경책을 들고 회개를 하겠지.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보다는 허공에 대해 사죄를 할 것이다. 








 외과의는 피해자의 상태에 대해 갖은 외상과 더불어 폐 한쪽에 기흉이 발견됐으며, 손목뼈에도 골절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목숨과 연결될만한 상처라고 덧붙였다.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폐에 구멍이 생겨 찌그러지는 일명 기흉이 있으면, 당연히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은 살인미수까지는 모르더라도 상해치사 급의 범행을 저지른 셈이다. 




 피해자 박소희(가명) 양이 최초발견된 곳은 남성 전용 고시텔이라고 한다. 발견자는 처음 그녀가 고시텔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많은 상처와 더불어 이에도 금이 갔다고 했다. 오싹한 건 발견 시각이 낮이라는 것이다. 고시텔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초저녁에 유동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 밖에 나와 있는 걸 아무도 발견 못한 채 가해자들이 그것을 봤으면 어떻게 됐을까? 다른 사람이 발견해서 참 다행이다. 








 박소희 양은 감금된 8일간의 대해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유는 대부분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패서 의식을 잃게 하려면 얼마를 어떻게 폭행해야 하는 걸까? 상상도 안 되는 폭행에서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비 오는 옥상에 누워 추위를 겪는 것이었다. 다행히 저체온증은 안 온 듯 하다. 


 사람 신체란 게 생각보다 정말 약하다. 한여름이라고 하여도 산행 중 장마 때문에 조난당한 사람은 가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나무 하나 없는 옥상에서 그것도 누워서 비를 흠뻑 맞은 박소희 양의 상태는 아마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폭행 동기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 상황을 보면 마치 피해자에게 원수를 진 사람이 행한 범행 같을 정도의 참혹함이다. 




 가해자들은 박소희 양의 휴대폰을 이용해 가족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어쩌다 분위기에 휩쓸려 폭행이 진행됐다고 하기에는 너무 용의주도하다. 








 박소희 양은 최초 울산대공원 인근 야산에서 5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옥상으로 옮겨졌고, 다시 고시텔로 옮겨졌다. 폭행 때문에 정신을 잃은 박 양이 신고를 할까 봐 무서워서 감금했다고 한다. 폭행 신고는 무섭고, 살인은 무섭지 않았나 보다. 가해자 중 고등학생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 두 명의 남자는 그 정도 사고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긴, 19살이나 20살이나 다 같은 꼬마긴 하다. 꼬마들의 꼬마다운 생각은 한 사람의 목숨을 뺏을 뻔했다.






 가해자 중 김성수(가명) 씨가 말하는 폭행 동기는 어이없을 정도다. 가해자 중 유일한 여성인 장은지(가명)하고 현수(가명)하고 사귀고 있었는데 피해자 박소희 양이 현수한테 좋아한다고 표시를 내니까 그렇게 죽도록 팼다는 것이다. 커플이 있는데, 피해자가 커플 중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폭행한 것이다. 애초에 이게 폭행 사유가 될는지도 혼란스러웠다. 







 소화기로 머리를 때렸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뇌에 이상은 없는 듯하다. 사람이 둔기로 두부 즉 머리 쪽을 잘못 맞으면 한 대로 죽기로 한다.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그랬을까? 어느 쪽이든 이건 호러 영화다. 






 경찰대 행정학과 박지선 교수는 가해자들이 8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잔혹한 폭력성에 스스로 무뎌졌다고 진단했다. 적응의 동물이라고 불리는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처음엔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라도 계속 하다 보면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을 해내는 것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것에 이런 잔혹한 폭력도 포함된다.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 그래서 깔봐도 되는 사람. 깔보는 것을 넘어 마음대로 폭행까지 한 것은 결국 피해자를 사람으로 안 봤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폭행 중 그들은 분명히 피해자를 사람으로 안 봤을 것이다. 






 가해자 중 한 명인 장은지(가명) 양은 피해자가 폭력을 용인했다고 말한다. 설령 정말로 폭력을 용인했더라도 그건 폭력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정말 몰랐을까? '나 좀 죽여줘.'하면 정말 죽여도 상관없는 게 아닌 것처럼 이건 변명이라고 하기에 너무 퀄리티가 떨어진다. 


 장 양은 마치 자신은 폭력에 가담하기는커녕 말리는 데 일조했으며 약을 바르고 물도 주었다고 한다. 웃기는 건 그렇게 행동했으면서 감금에는 동참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물을 주었다고 말한 것은 피해자가 스스로 물을 찾아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방증이다. 그 상황에서 물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물을 찾을 수 있게끔 탈출을 도와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별로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변명 같다.





 피해자가 말하는 것과 장 양이 말하는 것을 대조하면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왠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장 양은 이어 고시텔 문은 열려있었으며, 일찍 나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은 피해자를 탓했다. 왜 스스로 이런 어이없는 변명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폭행을 가한 다음에 문을 열어 놓으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도움을 청하길 원했다면 스스로 전화기를 꺼내 들고 112을 누르면 될 일 아닌가? 친구의 자립성을 위해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되지도 않는 변명이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그리고 책임은 나누면 죄책감이 없어지는가 보다. 책임의 분산현상은 소름 끼치는 대중의 침묵이라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결국, 가해자 없는 사건이 생긴다. 하지만 그 경우는 사회적인 경우이며, 이 사건과는 별개이다. 분명히 가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의 부모가 찾아왔다. 당연하다. 범행에 대한 선처와 합의를 위해서이다. 남의 자식 패는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부모 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병상을 찾아와 피해자에게 자신의 자식이 뺏은 카드를 들이밀며, '카드를 니가 준 거니?' 라는 어처구니없는 물음를 했다고 한다. 가해자들이 왜 그런 싸이코패스 같은 범행을 저질렀는지 부모의 행동을 보니 그 근원이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울산 장애인 성폭력 상담센터의 홍정련 소장은 이 사건에 대해 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수사 당국의 불구속 수사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으며, 장애인 단체와 연대하여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줄 모양이었다. 


 시민 단체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일은 시민 복지단체가 아닌, 국가에서 하는 것이 옳다. 장애인 인권과 법치의 수호는 오직 국가가 그 주역이 되어야 한다. 실제 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가해자 전원은 구속 수사하는 것이 맞다. 도주의 우려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범행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경제 사범이 아닌, 형사 사범의 경우는 일단 구속 수사하지 않나?






 가해자 부모의 인터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아가 치밀게 했다. 부모 마음 다 같다 하더라도 이건 정도가 심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철도 없고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사람을 죽을 정도로 팼다고 말하는 부모는 과연 상식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순.진.한. 아이가 그런 잔인한 행동을 했는데 그것을 뉘우친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리길 바라는 것은 너무 염치없지 않은가? '일이 잘 풀려 '무기징역'은 피할 수 있었으면.' 이라고 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런 뜻이 아니란 건 너무 뻔하다. 


 폭행한 것은 잘못했으나 그냥 합의해서 없던 일로 하고 싶을 것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식에게 피해자가 당연히 자비를 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귀하디귀한 내 자식이니까.



가해자는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오직 정당한 처벌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부모는 합의를 안 보는 것도 아닌데 비난의 필요성이 있느냐는 말을 했다. 벌을 안 받는 것도 아니고, 재판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잘못 알고 있는 게 합의라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선심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합의가 당연한 걸로 착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피해자 쪽이 합의를 안 했으면 한다. 




 피해자는 폭행에 인한 트라우마를 아마 평생 지고 살 것이다. 평생 하루하루 잠 잘 때마다 꿈꿀 것이다. 가해자들은 아마 징역형을 받는다면 끽해야 몇 년 살 것이지만, 피해자는 평생 그 아픔을 느껴야 한다. 





 감금과 이유 없는 무차별 폭행. 고시텔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성숙하지 못한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의 크기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블레기는 항상 학대와 폭력에 대해 엄청난 반감이 있다. 설령 그것에 대해 온당한 이유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폭력은 폭력이다. 


 이번 건은 그런 이유조차 없었다. 그냥 사람을 지나가는 벌레 마냥 짓밟은 사건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대로 똑같은 폭행으로 벌을 받게 하고 싶다. 피해자처럼 안 죽으면 운 좋은 것이고, 죽으면 어쩔 수 없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미개한 원시 사회에서나 가능함을 알고 있으며, 가해자들은 가장 혹독하게 벌의 대가를 받는다고 하여도 국민의 세금으로 입고 먹고 자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할 것이다. 덤으로 미성년자에 대한 호의도 있을 것이며, 성년자에 대해서도 그리 센 형별은 없을 것이다. 한국은 항상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더 신경 쓰며, 그것이 인권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판을 진행 중이다고 하니 부디 높은 형량을 받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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