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 신생아의 SOS, 거리를 헤매는 산모들, 미숙아 문제추적 60분 - 신생아의 SOS, 거리를 헤매는 산모들, 미숙아 문제

Posted at 2014. 10. 19. 14:12 | Posted in 리뷰/TV

 분명 전체 신생아 중 미숙아는 소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소수는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기 한 명, 한 명이 인간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까 미숙아를 살리는 일은 인간을 살리는 일이며, 나아가 한국의 미래를 살리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추적 60분에서 밝힌 미숙아 관련 의료시설은 굉장히 열약했다. 열약하다기보다는 위태로워 보였다. 그 위태로움은 불안이라는 감정보다는 슬픈 감정으로 치환된다. 왜냐면 그 위태로움의 크기만큼 죽어가는 미숙아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다. 아기가 죽는다. 이는 미래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다문화 가정 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기에 미숙아 몇천 명쯤 그냥 죽어도 될까? 대한민국 1%는 나머지 99%가 꼭 한국인일 필요가 없어도 된다는 말이 나돈다. 하지만 이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다문화가정 사업에 맞춰 들어온 외국인이라도 미숙아는 출산할 수 있으며, 그들도 사람이고 부모이기에 자기 자식을 맡길 곳이 없는 나라에 있을 이유는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약 300여 명의 어린 학생과 일반인이 차디찬 바다에 수장됐다. 세월호 사건은 사람들 마음속에 큰 슬픔을 남겼다.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슬픔. 그 생명들이 채 피지도 못한 젊은 영혼들이 많았다는 슬픔. 그 슬픔과 미숙아 의료시설의 부재로 인한 영아 사망의 슬픔과 어쩌면 같은 느낌의 슬픔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의학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기들이 자본의 논리와 무관심으로 죽어가고 있다.


 추적 60분에서는 신생 미숙아들의 의료시설 부족을 조명했다. 

  








  미숙아 혹은 조산아는 기형아가 아니다. 예정보다 빠른 조산으로 외부에 대해 면역력이 약한 상태의 아기이다. 그러므로 신생아 의료시설에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그 신생아 의료시설이 극도로 적다. 그래서 지방의 산모들은 1시간에서 많게는 4~5시간 구급차를 달려 대도시로 이동할 경우가 생기며, 이는 미숙아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리 신생아 치료실이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해있으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병상 수는 많지 않아 위독한 순서대로 꾸역꾸역 받는 실태라고 한다.


 위의 보건복지부 자료와 서울삼성병원 박원순 교수팀의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의 미숙아(저체중아)의 출산은 꾸준히 늘고 있으나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병상 수는 감소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미숙아의 갈 곳이 감소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으며, 바꿔 말하면 미숙아의 생존확률이 줄어들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미숙아로 태어나면 죽을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초극소미숙아의 생존률은 60%다. 10명의 아기 중 4명이 죽는다. 


 평소 아동 학대나 영아 학대, 유기 등을 끔찍하게 싫어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같은 통계자료들이 소름 끼쳤다. 물론 이는 학대나 유기는 아니다. 그래서 더 소름 돋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미숙아들은 딱히 학대나 유기 같은 과정이 없더라도 죽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는 곰곰하게 생각해보면 꽤 호러틱하다.




 매년 1%(2,000명) 이상의 미숙아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


 한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2천 명의 아기들이 매년 죽어 나간다. 한 반에 32여 명, 10개 반의 1학년부터 6학년까지가 2천 명쯤이 된다. 조금 비약하자면 한 개 초등학교 전 인원이 세계의 경제대국에서 의료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매년 죽어 나가는 것과 같다. 비극을 떠나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까? 죽어버린 2천 명의 아기들과 그 아기들의 부모 4천 명 일가 친척까지 합치면 매년 만여 명의 비극이 한국에선 일어나고 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전국적으로 감소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돈이 안 되는 사업이기에 병원은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애초에 설치하지 않거나 있는 곳도 철수한다. 병원 또한 자선단체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아기들이 안타깝다고 병원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이처럼 고공 적자행진을 하는 이유는 인력비 때문이다. 실제로 신생아 50명이 있는 곳에 간호사 7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게다가 아직 70~80년대 수가 상태인 한국에선 당연히 수지가 맞지 않기에 적자를 기록한다.








 일본은 세계에서 미숙아 생존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국가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현에서 지원을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관청에서 지원한다. '세금으로 아기를 구하자.'라는 아주 당연하고 상식적인 생각에 착안했다. 


 세금은 국민을 위해 쓰인다. 일본의 국민들은 미숙아를 살리는데 그들의 세금 쓰임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물론 한국 국민이 세금으로 아기를 살리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상황으로 보아 이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담뱃값과 각종 세금을 올리고 있는 현재는 국가적인 적자에 허덕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아기를 살리는 일은 할 수가 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선전했던 한국은 실제로 경제 대국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사는 집에서 아기 치료비가 없어 아기를 죽이진 않는다.


 집값, 땅값은 약 2천 명의 아기보다 소중한 대한민국이진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그렇지 않겠지." 라며 스스로에게 충고해본다. 얼굴도 모르고 아무 관계도 없는 아기가 죽든 말든 내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값만 오르면 투자는 이쪽에 해야지라고 생각하진 않겠지..하지만 자신은 없다.


 누군가 말하길,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게 조용한 투쟁이라고 했다. 투쟁일 수도 있지만, 정말 불안해서 못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면 둘 다일 확률이 높다. 


 일본은 지방세로 신생아 집중치료시설을 지원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오히려 20억 원의 예산이 축소됐다. 물론 쪼들리는 국가살림에 불가피한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쪼들리는 살림이라도 아기 분유부터 챙긴다는 걸 생각할 때, 이는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감액은 아닐까?




 아기는 나라의 미래다. 안 그래도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 중인 나라 한국에서는 더욱 더 아기는 미래다. 그렇다면 강바닥이나 해외 자원에 대한 투자보다 여기에 투자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진 않았을까? 집값, 땅값 부양보다 여기에 투자하는 게 먼저이진 않았을까? 되지도 않는 의문을 가져본다.


 박근혜 대통령님의 임신 출산정책에 관한 기사 중엔 고위험 분만 통합치료센터 설립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모양이다. 훌륭하신 대통령님이 이런 위대한 생각을 하신 데 이어 빠른 실천도 하리라 기대해본다. 


http://www.ibabynews.com/news/newsview.aspx?CategoryCode=0011&NewsCode=201212201112036718759030

(박근혜 대통령의 임신, 출산정책에 관한 기사)


 안타깝게도 냉소주의자, 염세주의자의 시점이 아님에도 부정적인 예측이 드는 것은 현재 한국은 엄청난 경제적 위험에 다가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외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데 우울함이 생긴다. 건강한 아기를 낳으라는 것은 결국 운에 맡기라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식을 낳는데 운이 없으면 아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로 생각된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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