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이야기 Y - 아빠의 자격, 딸에게 주고픈 마지막 선물, 끝나지 않은 비극 세월호궁금한 이야기 Y - 아빠의 자격, 딸에게 주고픈 마지막 선물, 끝나지 않은 비극 세월호

Posted at 2014. 9. 13. 16:02 | Posted in 리뷰/TV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지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조명했다. 그리고 문득 SBS라는 방송사와 궁금한 이야기를 제작하는 팀이 걱정됐다. 딱히 공중파 방송사에 대한 팬심이 있다거나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내용의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걱정됐다. 왜냐하면, 이 내용을 굉장히 싫어할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사람들은 대부분 위정자라 말할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로 오해를 풀어줄 좋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오해를 누군가는 굉장히 원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의사자지정이나 대학 특례입학 혹은 보상에 때문에 저런 처절한 투쟁을 한다는 오해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오해이지만 그 오해를 풀 수 없을 만큼 야만인들만 사는 나라도 아니다. 그 오해를 풀어줄 가장 효과적이고 그 같은 의무가 있는 곳이 언론이다. 


 SBS 궁금한 이야기 Y팀의 이번 방송은 그것이 설사 지난 세월호를 위시한 감정 짜내서 시청률을 올리려거나 소재가 고갈되어 이번 방송을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충분히 언론의 기능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단원고 사망 학생들이 쓰던 교실 한 켠에 적힌 과제는 "꼭 돌아오기" 라는 다하지 못한 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이 과제만큼 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하고 싶었을 과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약 40여 일의 단식으로 거의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었을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대한민국에 큰 이슈를 만들었다. 예상컨대 김영오 씨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세월호는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잊혔을 것이며, 유가족의 메마른 절규만이 그 비참함을 대변했을 것이다. 실제로 뉴스나 신문 지면상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포커스가 점점 멀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 발발 -> 슬픔과 구조의 급함 -> 허망함 -> 분노 -> 유병언 잡아라 -> 유병언 죽었다. 정도에서 이미 대중들은 슬픔 대신 악이 처단됐다는 이해할 수 없는 깔끔함을 느낀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이 죽었다고해서 이미 죽은 죄 없는 사망자들이 돌아올 리도 만무하다. 


 유병언이 정말 근본의 악이면 실소유주라는 수식어 대신 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하다. 유가족의 행동을 보고 "대통령이 배에 태운 것도 아니고 제주도에 가라고 한 것도 아니다." 라며 객관적인 쿨뽕을 시전하시는 분들도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유병언이 배에 태운 것도 아니고 제주도에 가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단원고의 선택으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 혐의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검경이 유병언을 쫓았던 이유조차 살인죄가 아닌 횡령죄였다. 즉 그 사람이 죽었다고 사건이 종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이미 38일의 단식으로 기진맥진한 김영오 씨가 청와대를 찾았을 때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에워쌌다. 관광객들은 지나가는 길을 김영오 씨는 사람에 막혀 가지 못했다. 그가 그 길을 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에 민원을 넣겠다는데 왜 그 길이 막혀있었을까? 김영오 씨가 몸에 폭탄이나 총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건 없다. 


 역지사지해보자. 억울한 가족의 죽음에 대해 진상 조사를 위한 민원을 넣으러 갔지만 그 길을 경찰 즉 공권력이 막는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멘탈 붕괴 당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한국의 많은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므로 별로 공감이 가지 않으며, 별 신경 안 쓰고 내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으면 상관없으므로 대국민적 집단 트라우마가 발병할 일은 없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가 있다면 반대 집회도 있다. 엄마부대, 어버이 연합 등의 단체는 단식 투쟁을 하는 반대편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단식으로 이루려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단식 자체를 폄하하는 행동에 이유를 쉽게 알 수 없다. 단식을 방해하려는 건지, 단식투쟁이 아닌 단식에 대해 투쟁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반대집회와 일베의 폭식투쟁을 보면서 이것이 한국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한다. 국가에 적용되는 지표 중 모랄도를 예로 든다면 한국은 모랄도 (도덕성) 가 거의 제로에 수렴하며, 마이너스로 치닫는 싸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의 나라가 아닐는지 생각한다. 물론 저런 반대집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매우 소수이며, 대부분 시민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반대집회는 존재하며, 그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김영오 씨에 대해 붉어진 아빠의 자격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짜증 나고 이해 안 됐다. 그가 단식으로 얻으려는 것에 대해 조금만 알면 애초에 아빠의 자격을 논할 이유가 없다. 단식으로 자식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부모의 자격이 충분한 사람 아닐까? 하지만 일부는 그에 대해 이혼 경력을 들먹이며 자격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격이란 뭘까? 자식의 죽음에 대해 알 자격? 죽음의 이유에 대해 파헤칠 자격? 아니면 자식의 죽음을 슬퍼할 자격? 오지랖도 태평양이다. 


 단식 투쟁의 이유가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을 보고 오직 돈만 있으면 자기 자식도 빠져 죽일 인간들이 넘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쯤 되면 자식 시체 값을 받을 유가족들을 시기한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아쉽게도 실제 유가족에게 보상은 없었지만, 막연하게 많이 모인 성금과 정부의 관심을 보고 큰 보상이 있겠거니 생각하는 걸까? 모든 행동을 돈으로 귀결하는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김영오 씨는 아빠의 자격에 대해 증명해야 했다. 통장 내역을 공개하며, 양육비를 공개했다. 아빠의 자격에 대해 논했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아니면 말고" 식의 상처 주기는 이제 한국의 또다른 여론 형태일까? 한국의 여론을 폄하하지 말라고? 아니면 말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전달하려는 유가족 앞을 경찰이 막았다. 왜 막았는지는 아리송하다. 유가족들이 딱히 시위를 한다거나 죽창이나 칼빈 총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며, 대통령이나 높으신 양반들에게 어떤 해를 가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경찰은 굳건히 팔짱 끼며 길을 막고 있다. 서명을 전달하는 것이 공권력의 제재를 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서비스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국민을 주인이나 사장처럼 모시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무라는 것이 국민이라는 사용자가 만족하는 방향에 있지 않아야 할까? 뭔가 심각하게 왜곡된 느낌을 받는다. 





 진실을 알고자, 그 진실의 종류가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임에도 공권력은 아예 길을 막아버렸다. 애초에 그 진실을 앞장서서 파헤쳐야 할 기관은 오히려 길을 막는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서민이라면 누구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억울하게 살해당했다 하더라도 공권력은 그것이 정권이나 안보나 경제에 해가 된다면, 그깟 서민 하나 억울하든 말든 길을 막아설 거란 예상은 매우 쉽다. 죄 없고 힘없고 돈 없는 서민의 억울함은 결국 형광 옷을 입은 민중이 지팡이들이 울타리를 만들며 또 다른 감옥에 갇힌다. 그 감옥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며, 죄인의 죄는 서민이라는 죄일까? 만약 저 울타리 안에 사람이 박근혜였다면 어땠을까? 경찰이 저렇게 울타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로 대한민국에서 돈 없고 힘없는 것은 실제로 죄일 수도 있다. 




 어버이 연합 김춘삼 (가명) 씨의 인터뷰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반대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대통령이 제주로 가라고 허가해준 것이 아니기에, 즉 마음대로 갔기에 대통령이나 나라의 책임이 아니라는 견지다. 애초에 한국은 이동의 자유가 있다. 어디로 가든 말든 허가받을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어디로 가든 말든 한국에서의 모든 안전은 애초에 정부의 몫이라는 것과도 같다. 정부의 수장은 대통령이며, 그러므로 정부의 책임은 대통령의 책임이 된다. 


 만약 저 인터뷰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미사일을 맞아 숨진다면, 그것 또한 국방을 소홀히 한 국가의 책임이다. 하지만 저분 말대로라면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으라 허가한 것이 아니기에 온전히, 때마침, 재수 없게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의 잘못일까? 곰곰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세월호 유가족 대표 유병근 씨는 단 한 명도 성금이나 보상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런 보상을 요구한 적도 없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상 문제는 애초에 유가족이 아닌 정치권에서 나온 것들이다. 선심성 보상안은 결국 제일 중요한 진실을 갈구하는 유가족에게 비수가 되어 되돌아왔다. 착하게 보이길 원하는 것 같은데, 그 착함의 중심에는 애초에 유가족의 마음 따윈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보상을 생각했다. 보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하는 것이 정치 본연의 기능 아닐까?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어려운 일일까?


 딱히 대한민국이 적극적이고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되도 않는 말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기에, 국민에 대한 예의는 다해야 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너무도 당연한 의문을 왜 유가족이 직접 외쳐야 할까?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 또한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여러 겹의 성역의 대한민국은 오늘도 잘 굴러가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그 성역 또한 수많은 서민의 존재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분노는 축적되고 있다.












 이번 사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대통령 자신이 말했다. 하지만 책임에 대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우는 것? 그건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엄중 처벌과 성역없는 수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를 위한 특별법 제정은 한치의 발전도 없다. 


 적어도 대통령 본연의 임무가 슬퍼하는 것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특별법 중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과거 많은 특검이 있었지만, 모두 유야무야로 끝난 이유는 이런 수사권 기소권이 없는 이유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 이런 권한을 주는 것이 사법체계를 흔든다며 반대하는 것은 언뜻 듣기엔 그럴싸하나 많은 법학자가 말하기론 사법체계 자체가 애초에 수사권 기소권을 갖는 객체를 특정짓지 않는다고 한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수사권 기소권을 특별법에 넣는 게 위헌이 아니라고 말한다. 


 궁금한 이야기 Y팀이 어떤 전문가의 의견을 자막 처리하면서 노란색 + 글자 크기 조절로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던가? 느낌상으로 작정하고 방송했다고 생각한다. 













끝나지 않은 비극, 세월호 사건은 파헤칠수록 혹은 시간이 갈수록 큰 슬픔만이 남는다. 


죄 없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슬픔


그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슬픔 


그리고 줄줄이 올라오는 시체를 보면서 느낀 슬픔


국가의 무능과 안하무인 그리고 그 국가에 속해있다는 슬픔


다른 어떤 기관이 아닌 유가족 스스로 사건에 대해 투쟁해야하는 슬픔


서민이라면 누구라도 저런 식의 투쟁이 최선이라는 공감의 슬픔


그럼에도 한 치의 발전도 없는 정치권과 행정부의 행태에 대한 분노와 그 분노를 삭히기 위해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은 나라에 대한 슬픔. 


 슬픔이 녹아내려 분노가 되면, 뜨거운 촛농이 흘러 언젠가는 손등에 화상을 입히듯 그들에게 뜨끔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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