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 군 잔혹사, 병사는 소모품인가그것이 알고싶다 - 군 잔혹사, 병사는 소모품인가

Posted at 2014. 8. 25. 13:39 | Posted in 리뷰/TV

 그것이 알고싶다.가 별로 어렵지 않은 수수께끼를 제시했다. 


"병사는 군대에서 소모품인가?"


 대답은 YES 다. 가끔 그 소모품들끼리 문제가 생겨 구타나 가혹행위가 발생하며, 그로 인해 죽거나 쓸모없어지는 소모품들이 생긴다. 인간이 죽으면 슬프겠지만, 소모품이 그 명을 다해서 어차피 다른 소모품이 꾸준하게 들어올 텐데 왜 슬퍼해야 하는가? 집에서 쓰던 치약이 다했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켓에서 또 사면 끝이며, 언제나 많은 치약이 있다. 군대도 마찬가지 아닐까? 군에서 근무하는 군인 한 명, 한 명은 물론 사람이며, 위에 설명한 것처럼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뭉쳐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이 되어 집단을 형성하면 이상하게 저것들이 인간 맞느냐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건 사고가 심심치 않게 터진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단골인 군대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시청자의 공분을 끌어올린 만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 무자비하고 강제적인 집단에 끌려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어떻게 가혹행위를 당했고, 어떻게 죽었는지 또는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스스로 죽었는지 그 죽음들에 대해 군대가 어떤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대응을 했는지 보여준다. 


 아마 시청자들의 공분이라는 반응이 이 방송의 최대 효과이자, 마지막 효과라는 생각이 든다. 이 방송으로 군대 개혁의 기틀이 마련되거나 시민들의 반 국방이라는 특이한 의식이 형성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런 나라이다. 군대에서 자기 아들이 개죽음을 당하고 그 개죽음에 많은 의혹이 있음에도 군대는 입을 다문다. 이 사실을 알면 동정하거나 분노를 느끼지만, 막상 군대를 어떻게 하자고 하면 주적을 운운하며, 군대 편을 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결국, 죽은 사람은 남의 자식이라는 차가운 사실만 남는다.  


 군 잔혹사가 진짜 잔혹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잔혹한 사건들을 대하는 조용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태도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공감에 의한 불안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대전제에서 몸이 성하지 않거나 정치인이나 재벌이 아니거나 유명 연예인이 아니면 거의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한다. 그래서 자기 아들도 언젠가는 군대에 갈 것이고, 희박한 확률로나마 저런 짓을 당한다면 어떻게 할까? 라는 불안이 대부분이다. 그 불안감이 이 군 잔혹사에서 느끼는 감정 중 90%이며 나머지가 희생자에 대한 동정이다. 이 극도의 개인주의가 결국 이슈가 된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아들이 당장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니고 군대에 갔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잔혹사라 불릴 만큼 크게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예 1%의 구타나 가혹행위가 없다고는 못한다. 왜냐하면, 군대 징집 자체가 이미 인권에 대한 가혹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가혹행위에 대해 신성한 의무라며 포장하는 분들이 있다. 국가가 공인 신성한 인권침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번 주 내용을 보는 내내 같은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솔루션. 즉 문제 해결에 대한 갈피는 그 시작조차 유추해내지 못했다. 군대에서 사고가 난 게 이번이 처음인가? 언제나 군대는 사고 투성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벌백계와 철저한 진상규명, 사고 방지를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정신 교육, 인성 교육을 약속해왔다. 물론 이번에도 그랬다. 패턴만 보면 그 알량한 계획들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군 잔혹사는 계속 일어난다. 


 스스로 죽거나 맞아 죽거나 쏴 맞혀 죽거나 어떻게 죽은 지 모르게 죽거나, 맞거나, 계속 맞거나 하는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 범주에 아직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포함된다. 하지만 그 남성들과 가족들은 이 일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불안은 느끼지만 강한 운빨로 이겨내리라 생각하는 걸까? 원래 당연한 무사 전역이 이제는 하나의 복이 되버린 나라가 됐다.

  





 정봉주의 전국구 35회 군대특집에서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출현한다. 윤 일병 사건에 디테일한 경위를 알 수 있다. 재미도 있다.  플레이타임 약 1시간인데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맞아 죽은 윤 일병에게 선임병들이 했던 비인간적인 작태는 그냥 구타, 가혹행위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있다. 뺨은 물론 발로 걷어차고 가래침을 핥아 먹게 했다. 치약을 짜 먹였으며 잠도 재우지 않고 구타를 하기도 한다. 방송 내용에는 나오지 않지만 윤 일병의 어머니를 섬에 팔아버리겠다고도 했다고 들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가 군대라는 틀 속에 있으니 더 없이 어울려 보인다. 잠재적으로 한국 군대는 군기 확립과 그에 대한 방법으로 얼차려가 인정되지 않던가.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말마따나 국방부는 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했다고 느낀다. 진짜 그렇게 은폐 축소를 하려고 했든 아니든 별 관심은 생기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사건에 국방부가 가타부타해봤자 달라지는 점도 없을뿐더러 추후 일어날 막을 수 있는 사건들도 어차피 막지 못할 것이란 강한 불신 때문이다. 


 일벌백계하여 군 문화를 쇄신하겠다는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의 말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군은 지금껏 일벌백계를 안 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죄인에게 맞는 형벌을 준다고 그와 같은 범죄가 라진다는 논리도 이상했다. 살인자를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형에 처하더라도 계속 살인자는 나타난다. 벌이 가벼워서 그럴까? 한마디로 벌을 줘서 어떤 문화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런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의식이라고 느낀다. 폭력을 행사한 학생에게 폭력으로 그 죄를 묻는 교사처럼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느낌은 여전히 한국 군대가 전근대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으며, 저런 군대를 믿고 북괴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있겠느냔 근본적인 의구심도 들었다. 










 윤 일병 어머니 안 씨는 처음에 헌병대를 100% 신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였다. 공무원이란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에 있는 것에는 열정적이지만 일단 책임에서 멀어지면 점점 도외시하며, 군 관계자도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있다. 자신의 앞길에 문제가 없으면 사병의 죽음 따위 솔직히 신경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매년 신병은 들어오며, 일 시키고 훈련해 자신의 진급을 위한 노예로 쓸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죽었든 알 바 없으리라. 다만 그 사건이 가족마저 모르는 사이 조용하고 간결하고 별거 아닌 듯 끝나길 간절하고 간절하게 원할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취업 전선에서도 조심해야 하고 그렇게 다가오며 금전을 요구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족 같은 무한대의 신뢰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언제나 뒤통수를 치려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99% 사기꾼이거나 범죄자다. 1%는 빈말이다. 즉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윤 일병은 간호 대학을 다니던 학생이었다. 간호 대학에서 과 대표까지 지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크다. 간호학은 예상하듯 여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 속에 남자가 대표를 맞는다는 것은 두 가지 양상이 있다. 너무 잘 생겨서 인기가 많거나 인간적으로 호감을 가질 수 있거나. 그렇다면 그 단서를 가지고 윤 일병이 타인에게도 충분히 호감을 줬던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선임병들은 그 윤 일병을 때려 죽였다. 이유가 뭘까? 정말 선임병.. 아니 살인자들이 말한 대로 인상을 쓰고 말을 어눌하게 해서일까? 사회에서의 호감형 인간이 군대에 가서는 맞아 죽을 정도로 인상을 쓰고 말도 어눌하게 했다고? 석연치 않다.













  모든 병사가 맞아 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폭력이나 가혹행위는 당하며, 그런 유구한 전통이 점점 발달해 어느 곳에서는 너무 활달하게 행해진 거뿐이다. 그러니까 보통의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부대 또한 약간의 왜곡이 있다면 충분히 윤 일병을 죽인 분대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황인종이 햇볕에 타봤자 흑인종이 아닌 황인종이듯 어차피 군인은 군인이고, 군대에선 얼차려라는 군기를 위한 허용된 인권 침해가 있기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군에서 발표한 사인은 기도폐쇄에 의한 호흡 중단이다. 기도 폐쇄는 음식물에 의해 일어났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임태훈 소장은 기도 폐쇄는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며, 의식 소실 때문에 기도 폐쇄가 일어났다고 추정했다. 


 여기서 또 한 번 군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만약 임 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군은 사병의 사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게 된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 써버린 군인이라는 소모품에 대해 어떤 재활용의 여지도 없기에 최초 사인이 아닌 눈에 보이는 최종의 사인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까 화장지라는 소모품을 말 그대로 다 써서 끝날 수도 있고, 물에 빠트려 끝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냥 화장지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기도폐색질식은 당연히 온 몸의 상처와 멍과 골절로 인한 속발성 쇼크가 부른 하나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윤 일병 맞선임의 진술은 윤 일병 죽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말하는 의무반은 말 그대로 군대 거의 모든 악습과 얼차려가 있었던 듯하다. 약품 암기와 부대 구성원의 연명부를 보며 하는 이름 직급, 계급 암기, 5분 대기조 암기 그 암기에 틀릴 경우는 여지없이 폭력. 이런 부조리는 옛날 군대에선 당연했다. 군가는 물론 해당 주특기의 재원이나 실행 방법도 포함된다. 자신이 할 일이나 관련된 것을 암기하는 데 이게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부대가 많이 없어졌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윤 일병의 부대는 아니었나 보다. 


 한국의 고유한 전통인 내리사랑은 한국 군대에서 내리 갈굼으로 바뀌었다. 선임이 후임을 갈구고 후임은 또 그 후임에게 갈군다. 쭉 내려오다 보면 먹이 사슬의 제일 아래 있는 신병이 언제나 최후의 먹잇감이 된다. 윤 일병의 사건에서도 윤 일병 맞선임 또한 막내 시절 윤 일병과 비슷한 구타와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 지랄 같은 것도 문화라면 문화다. 그 문화의 시작은 모르지만, 아직도 끝이 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며, 한숨이 났고 아들이 없는 것에 안도를 느꼈다.

 



 폭력은 전이 됐다. 원래 맞는 역할을 하던 병사 아래 신병이 오자 맞던 군인은 이제 때리는 군인이 됐다. 이 병장이 "말로만 하면 안 된다며 윤 일병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며, 말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라는 부분에서 윤 일병의 이름 대신 자기 아들 이름을 넣어보면 얼마나 끔찍한가. 더 끔찍한 것은 윤 일병의 이름이 아닌 이 말을 듣는 윤 일병 맞선임이 자기 아들이어도 끔찍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낫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맞는 것보다 때리는 거 죽임당하는 것보다 죽이는 거, 하지만 군대는 그런 것보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곳이기에 애초에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데에 분노를 가져야 하는 것이 맞다. 











 두 범죄심리학자가 추정한 범죄의 원인은 비슷했다. 바로 폭력을 용인하는 환경이다. 미친 사람들만 있는 나라에선 정상인이 미친 사람이다. 즉 환경은 언제나 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이 설령 범죄 행위라 할지라도 스스럼없이 실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군가는 인간을 보고 환경의 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환경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와 행동 양식이 정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환경은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윤 일병의 부대가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이 활발한 환경의 부대였다면 어땠을까? 윤 일병이 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윤 일병은 독립 부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작은 독립 분대의 구성원 모두가 윤 일병을 폭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독립 분대라 할지라도 그 의무 분대를 이용하는 많은 수의 외부 부대원들이 존재했으며, 폭력 사실을 알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그 부대원들이 입도 뻥긋 안한 것도 사실이다.






 폭력이 용인되는 환경을 만든 것은 그 환경의 최고 책임자였던 의무담당관 유 하사이다. 그 부사관은 폭력은 허락했다고 나온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원인은 도통 모르겠다. 부사관은 나름의 교육을 받는다. 일반 병사하고는 다르다. 그들은 부대의 관리자다. 그런 관리자가 자원이며, 소모품이며, 국가의 재산인 병사에 피해를 입히라고 한 것은 국가 적대 행위가 아닐까? 병사의 사망으로 인한 전투력 약화는 물론이며, 전시 같은 비상 시에는 평소의 폭력으로 억하심정을 갖고 있던 후임이 선임이나 지휘관을 쏘는 결국엔 완전한 임무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최악의 관리라고 생각한다.


 전 군의 부사관들을 싸잡아서 폭력을 용인하는 관리자들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유 하사를 보며, 부사관 교육에서 일반 병사에 대한 보호 같은 정신을 가르치진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곧 병사가 언제나 자동 보급되는 온전한 소모품이어서라는 당연한 결론에 귀결된다.


 누가 말했던가.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윤 일병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포의 근원은 이런 곳에서 몇 년을 버텨야 한다는 절망과 그것이 국가가 원하는 의무이기에 거부할 시 범죄가 된다는 좌절이 원인은 아니었을까? 윤 일병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이처럼 군대에서 죽은 다른 모든 군인의 명복도 기원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런 억울한 죽음이 군대에선 많을 것이다. 


 국가는 의무를 중시한다. 단, 국민이라고 불리는 노예와 소모품들만의 의무이다. 그들이 말하는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을 국가는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그러다 사고가 나면 갑자기 국가는 사라지고 개인의 사유와 정황과 환경이 대두하며, 자살자는 개인의 우울증이나 부적응 때문이며, 이번 같은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무대에 등장하며, 가해자들의 폭력성과 피해자가 맞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나열한다. 그리고 국가의 의무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임 병장 탈영 및 살해사건>





















 윤 일병 사건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이유는 정말 비인간적인 폭력행태 때문이기도 하며, 일면 임병장의 탈영과 총기 난사 사건이 군대에 대한 관심을 이미 끌어놓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임 병장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 같은 참혹한 짓을 했다. 그의 아버지 또한 임 병장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임 병장이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임병장은 원래 관심 병사였다. 그게 아마 병장이 되면서 관심병사 등급 중 괜찮은 등급이 되어 GOP에 배치된 거 같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이기적인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임 병장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저런 짓을 했겠냐, 혹은 피해 군인들이 불쌍하다기보다는 '저런 사람을 어떻게 GOP에 배치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냐.'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안위가 근본인 걱정이다. 그래서 한국 군대는 굳이 변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소수의 억울한 사람들은 힘이 없다. 그들이 힘을 얻으려면 큰 여론이 필요한데 그 여론이란게 애초에 사람이 죽었네 살았네 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얌체들이 대부분이기에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은 잘해봤자 양초나 태우다 말 것임을 너무 잘 알기에.


 임 병장이 초소 관련 문제를 중사에게 말하자, 중사는 총으로 해결하라고 말했다 한다. 그렇다면 그 중사는 최소 살인교사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게 아닐까? 하지만 군 법원이 판단하기에는 별문제가 없었나 보다 중사는 무혐의 판결을 받았고 임 병장만이 온전하고 악랄한 범인이 되어 남아있다. 


출처 : SBS 8 뉴스


 어떤 시민이 말하는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명언은 많은 공감을 얻었다. 



< 김지훈 일병 자살 사건 >



















 김지훈 일병 자살 사건에서 가장 공감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의무를 다하러 간 사람의 억울함을 국가는 모른 체 하며, 결국 그 가족이 사건을 조사한다. 이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국방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김지훈 일병 자살 사건이 이슈가 된 것은 한효주라는 연예인이 언급되면서부터이다. 정확히는 한효주 씨의 가족과 관계가 있다는 의혹이다. 물론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다. 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http://blueluna.tistory.com/73 블루루나님 포스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군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사망의 원인은 자살이다. 자살은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분류 했었다. 개인의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군대나 국가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자살도 순직 처리하는 훈령이 있다고는 하는데 어차피 그것도 꼭 지켜야 하는 법령이 아니다. 김지훈 일병의 경우도 일반사망이라고 판별됐었다. 


 개인의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개인의 이유라는 게 결국 국가의 의무 때문에 발생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는 문제가 아닐까? 


 평소 때는 없던 문제가 군대에 와서 생겼다. 군대에 와서 선임이 너무 괴롭힌다. 군대에 와서 몸이 안 좋아졌다. 군대에 와서 정신적으로 외롭다. 힘들다. 군대에 와서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그래서 죽는다. 는 여러 죽음의 이유가 개인의 이유이긴 하지만 결국 군대에 연관된 문제라면 국가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다. 무조건 순직처리를 위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순직처리는 어쩌면 당연하다. 진짜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 진상규명. 즉 "내 새끼가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죽었는 지 좀 알기나 합시다." 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요구다. 그 같은 요구가 얼마나 당연한지 군에 몸을 담았던 故 김훈 중위의 아버지 또한 장성이기 이전에 아버지로서 아들의 의문사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결국, 장성급의 군인이라도 자기 자식이 죽으면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 이는 현재 은폐 의혹을 받는 여러 기관과 국방부에서 일하는 사람도 같은 입장이라는 방증이다. 물론 아이가 없거나 이미 군대에 잘 다녀왔을 수도 있다. 아..그래서?


 역시 한국에서는 쥐뿔도 없으면 아이를 갖지 않는 게 맞다. 어떤 힘으로 아이를 군대에서 면제시킬 수 없다면 애초에 남자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게 아니라. 그 구더기가 맹독을 품은 구더기기 때문이다. 의무라는 강제성을 지닌 죽음의 구더기가 군대라는 장독대 안에 넘치고 있다. 거기에 아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 강제 감량지시 20KG 감량하고 자살 사망한 손 이병 >



 비만한 사람은 날렵한 사람보다 몸이 둔하다. 당연히 군 생활에 더 많은 애로 사항이 존재한다. 군대 예능인 진짜 사나이에서도 거구인 샘 해밍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기 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군에서도 어느 정도의 비만은 면제를 시킨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가 현실적으로 거의 없는 수준임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예전에 어떤 정치인의 아들도 몸무게로 군 면제를 받아 구설에 올랐다. 그 경우는 비만이 아니라 왜소에 대한 면제였는데 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몸무게로 실제로 본다면 미라 같을 것이라고 했던 의견이 생각난다. 


 손 이병의 경우, 부모가 그런 정치인이나 재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구임에도 군대에 갔다. 강제로 식사량까지 통제하며 하는 무리한 다이어트는 훈련병에겐 너무 가혹하지 않았을까? 그 고됨을 이기지 못하고 사격 훈련 때 총구를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그는 순직 처리되지 못했다. 군에서는 가족을 회유하면서 유효기간까지 기다렸다가 순직 기각을 발표한 것이다. 흔한 국가 기관의 뒷통수 작렬 찌질한 대처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관이 저 사람에게만 그럴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럴 수 있을까? 판단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관련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8026













 아주 솔직히 국립묘지에 안장하더라도 국가가 그를 기억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국립묘지에 가면 최소한 어떤 군바리의 개죽음은 아니게 된다. 부모의 입장에선 당연히 원하는 것이다. 애초에 말했듯 병사는 소모품이다. 지휘관이 보기에 손 이병이라는 소모품은 너무 뚱뚱해서 노예로 쓰기 부적절했고, 그래서 감량을 지시했으며 그러다 소모품 하나가 스스로 죽은 것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아마 어렵지 않게 다른 소모품이 채웠을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당연히 무리한 감량을 지시한 지휘관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군 측에서는 역시나 손 이병의 문제 쪽으로 가닥을 잡으며, 일반 사망으로 결론을 내린다. 큰 죄도 짓지 않고 아들이 열심히 키워서 나라에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맞다며, 군대로 보냈을 어머니의 미소는 결국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를 원하는 읍소로 바뀌었다. 


 부모가 울면서 정당한 사유를 들며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는 군 당국은 아마 다른 부모에겐 걱정 마시라고 몸 건강히 잘 보살피겠다고 하려나? 그 말은 위 몇 사례만 봐도 거짓말을 넘어선 사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잘도 속아 넘어가는 국뽕에 취한 부모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잇따른 군 잔혹사에 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물론 군의 대대적인 혁신이나 대응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거의 알아서 하라는 식의 말이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 사고의 원인을 완전히 뿌리 뽑기 바란다는 대통령의 말은 정말 국가의 원수다운 발표라고 생각했다. 가해 군인들에게 벌을 주면 다른 폭력 사병들이 벌벌 떨며 아마 전 군은 평화와 화합으로 다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국가의 원수 답다.




 여러 사건으로 사퇴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의 뒤를 이어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이 내정됐다. 그는 반인권적인 행위 계속되는 부대와 가혹행위를 은폐 개선하지 않는 부대는 부대 자체를 해체한다는 안을 내놨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보다는 해체해서 부숴버리겠다는 군인답고 용맹한 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어깨의 별이 너무 눈부시다. 역시 군 고위 관계자는 다르다. 이런 분은 아마 자기 자식이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의 해결보다는 자식을 사지를 해체할 정도의 군인 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신조어인 '답정너'가 떠오른다.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라는 뜻의 단어는 이 상황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저기에 나와서 사병 주제에 대놓고 '힘들어 죽겠습니다.'. '곧 자살하려고요', '선임이 너무 괴롭힙니다.'라고 할 사람이 존재할까? 그랬다가는 남은 군 생활이 지옥이 될 텐데? 말하는 순간 관심병사로 찍힐텐데? 막 전역한 병장이라면 모를까 어차피 저 철책 안에 사는 군인들은 절대로 나쁜 말을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이런 식의 쇼를 기획하는 군대의 입장에서도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예상했겠고, 어색하고 민망한 쇼는 결국 그런 사건들이 있음에도 군대는 아직 변한 게 없다는 방증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개뿔. 



 민망한 답정너 쑈가 끝나고 일주일 후 윤 일병 소속의 28사단에서 또 자살 사고가 일어났다.







 전 간부가 말하는 관심병사가 모이는 그린캠프는 결국 아무 소용 없는 짓으로 느껴진다. 











 군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혁신과 개선을 주장했다. 끝없는 혁신은 좋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한국 군인 자살율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즉 쇼하고 있거나,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 사회는 강한 태클을 걸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국민들이 군대를 혐오하고 회피만 할 뿐, 바꾸려고는 안 한다. 군은 이 대목에서 아마 환호를 지르지 않을까? 역시 멍청한 소모품들이라면서.






 김광진 의원실 고상만 보좌관이 나오는 팟캐스트에서도 위에 손 이병의 자살사건과 과거 김훈 중위의 의문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http://www.podbbang.com/ch/7456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의 마음 헤아릴 길 없으나 이 말을 듣고 난 웃어버렸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분명히 어떤 병사가 죽어가고 있다. 그것은 김지훈 일병이 군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랬고, 죽기 전에도 그랬으며, 아마 태어났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부모는 다소의 분노나 슬픔은 있었겠지만, 별 상관은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죽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른 병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자기 일로 겪고보니 사태의 심각성이 뼈에 사무친 경우일까? 


 그간 군 문제에 대해 조용한 것이 죄는 아니다. 그러다 아들이 죽어 군에 대한 불신과 다른 병사에 대해 더 걱정한다고 해서 그것 역시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이 루틴으로 보이는 다른 많은 사람의 생각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대부분 아들이 무사히 전역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느끼는 것은 이미 죽은 병사에 대한 약간의 동정과 슬픔, 군에 대한 분노가 전부는 아닐까? 그리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렇기에 군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계속 소수의 병사는 무참히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방송사는 시청률 올리기 좋은 주제로 선정하여 방송하며, 군 당국은 일벌백계와 사후 교육을 약속 할 것이고, 국민은 분노했다가 걸그룹 다리 벌리는 거나 프로야구의 홈런이나 로또 번호에 환호하겠지.









 군에서 사망한 유가족들에게 국방부의 철문은 오늘도 굳게 닫혀있다. 그 문을 넘어서 목소리를 전달해보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이미 사용이 끝나거나 고장 나거나 사라진 소모품에 국방부는 어떤 미련도 죄송도 입장도 없지 않을까? 어떤 방문에 대하는 태도는 항상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문전박대는 그만큼 방문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나 반대를 나타낸다.



 유가족들이 몰린 국방부 철문 앞은 군 당국이 군대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직 군의 입장만 있을 뿐, 병사와 가족의 입장은 없다. 그래서 생기는 잡음도 국방부가 행하는 중대한 임무에 의해 묻혀버릴 걸 알고 있기에. 국방부를 건들면 빨갱이라며, 종북이라며, 소리지르기에 너무도 알맞다. 굳이 나서서 사과하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만들 수고를 할 필요도 없는 건 아닐까? 


 병사는 소모품이다. 그 소모품의 출처는 국민이며, 군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자신들이 몇 년 소모품으로 쓰는 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 처음부터 군대는 국민을 위한다기보다는 국가를 위해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민이 죽든 말든, 병사로 입대해서 죽든 말든, 맞든 말든, 북쪽에 존재하는 뿔이 나고 팔이 네 개에 맹수의 이빨을 가진 공산당으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유구한 전통과 빛나는 역사를 지닌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 국방의 숙원을 국민이라는 소모품으로 완성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사태가 계속돼도 국민은 여전히 침묵한다. 촛불 들고 노래 부르고 서로 울고 함성 지르고 같은 자위행위를 안 해서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다. 이대로 계속 분노가 중첩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떤 나라의 국민은 냄비 같아서 중요한 일에도 항상 잘 잊는다는데 한국은 좀 다르지 않은가? 항상 갱제와 땅값과 아파트값에 초점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의 국민이지 않는가? 


 곧 아들을 군에 보낼 많은 부모도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괜히 동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사건들은 극히 일부이며, 복불복이기 때문이다. 동요하면 어찌할 껀데? 입대를 거부하면 그것은 범죄이다. 입대 거부하면 아들이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복불복에 걸 수 밖에 없다. 한국이란 나라는 자식의 무사를 운에 맡기는 게 어쩔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그 무사바람이 결국 나라를 위해서 내던지는 희생임에도 그렇다. 


 어떤 반성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성실하게", "묵묵하게", "부지런하게" 라는 사상으로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대가 정한 그들의 이름은 "노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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