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스토리 - 28사 윤 일병 구타 살해사건, "엄마 저 좀 살려주세요"뉴 스토리 - 28사 윤 일병 구타 살해사건, "엄마 저 좀 살려주세요"

Posted at 2014. 8. 6. 21:11 | Posted in 리뷰/TV

 요새 한 젊은 병사의 죽음이 뜨거운 감자로 대두하고 있다. 언론에선 이른바 '윤 일병'이라 회자하고 있다. 군대 내 구타나 가혹행위에 인한 사망사건은 그 역사가 너무도 깊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구타와 가혹행위가 군대라는 집단을 대표하는 단어인지 알 방법은 없다. 그저 수식적 관계에 기인하여 인간이란 동물을 더 효과적으로 부리는 데 있어 민주적이고 자유스런 문화보다는 꽉 막히고 비인간적이며 잔혹한 가혹행위가 더 효과 있었을 것으로 유추해본다. 


 군대는 필연적으로 탄생부터 폭력과 관계된 기관이며, 한국의 일반 병사들은 처음 군대에 들어가는 계기가 국가의 폭력적인 강제징병에 의해서다. 요약하면 폭력을 위한 기관에서 폭력적으로 법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아놓고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잘 될 리 만무하지 않을까? 물론 군대라는 집단의 폭력은 당연히 적으로부터 나라의 재산과 국민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 폭력에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런데 폭력의 화살이 같은 군내 병사라면 어떨까? 그 병사는 병사이기 전에 이 나라의 국민이다. 그렇다면 군에 의해 자국민이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국민을 살해한 군'은 어떤 존재 가치가 있을까? 


 북괴로부터의 안전을 책임지는 신성한 군대라고 할지라도 자국민을 죽였다면 그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세력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잠재적 범죄테러집단은 아닐까? 그들은 그들의 명령을 안 듣거나 어눌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며, 그런 사람을 방조한 사람들이다. 같은 편도 그렇게 죽였는데 일반 시민 따위야 K-2 소총 성능 실험으로 사용해도 아무 느낌이 없지 않을까? 물론 비약이다. 우리의 충성스럽고 건강한 대다수 군인들은 지금도 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윤 일병의 빈자리도 해를 거듭하며, 다른 충성스럽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장정들이 채울 것이란 것도 알고 있으며, 또 다른 사건으로 '의문의' 혹은 '참혹한'이란 수식어와 함께 죽음이란 단어가 언론을 탈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이쯤 되면 예상 못 하는 게 이상하다. 


 군대에서 주기적으로 사망사건이 발생한다는 명제는 주기에 어느 정도 주관적 차이가 있겠지만, 여름이 되면 더워진다는 명제가 지금까지 참이며, 앞으로도 참일 듯 계속 참일 것이다. 




 윤 일병 구타 살해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많은 이들이 우려를 보내는 이유는 위와 같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윤 일병이 맞아 죽은 것과는 별개로 그 사고 사례를 들어 자식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이 사건은 주목을 받았다. 본 블레기, 성자가 아님에도 약간의 괴리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군인이 죽었다고 해서 슬프다거나 고통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가 그저 하나의 사례로만 남게 되는 것은 '역시 한국'이라는 이상한 자괴감이 들게 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낼까?' 이 질문의 답은 정상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키우는 부모는 모두 보내기 싫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제일 좋은 젊은 시절의 2년을 봉사의 시간으로 갇혀서 지내야 한다. 그것이 신성하다며, 의무라며, 당연하다며 국가에선 포장하지만 결국에는 개인의 손해인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복무한다. 물론 부모가 재벌이거나 유명인이거나 정치인이면 확률적으로 군대에 더 안 가기는 한다고 알고 있다. 소수의 신의 아들을 제외하고 웬만한 일반인들은 대부분 군대에 간다. 그렇게 억지로 끌려간 곳에서 맞고 가혹행위 당하고 언어폭력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죽거나 심한 후유증을 얻어 평생 치료 해야 된다면 어떨까? 그럴 수도 있는 곳에 국민들이 스스로 의무를 다하러 갈까? 아마.. 갈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호구' 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도 복불복 운운하며, 국가에 대한 의무라면서 국가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 하지 않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자기 자식을 자랑스럽게 보낼 것이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이번 사건을 이렇게 크게 터트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절대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류하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이미 군대라는 물은 냄새조차 맡을 수 없는 똥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똥물은 국방의 의무를 행하는 전국민.. 아니 남자들이 한 번쯤 온몸을 푹 담가야 하는 곳이므로 이 고발은 이슈가 되는 게 옳다. 타이밍 좋게도 임 병장의 탈영 사건이 있고 얼마 후, 언론에 이런 일이 터졌다.(실제 사건은 임 병장 사건 전에 일어난 걸로 안다.) 사건의 시기는 약 4개월 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이렇게 이슈가 된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윤 일병이 입장에서도 죽음의 진위가 영원히 묻히며, 약 500만 원의 군 위로금으로 결말이 났다면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정봉주의 전국구 - 군대특집 그만 좀 죽여라. (FEAT. 임태훈 소장)











 이런 누추한 블로그에 임태훈 소장이 올 일은 없어서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진 못하겠지만, 만난다면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바로 한국의 '군'과 '인권'이라는 단어의 괴리이며, 군인권센터라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란 질문이다.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라는 인권은 지켜져야 함에 동의한다. 그런데 국가에서 일단 적이 눈앞에 있으니 인권은 밀어두고 나라를 지키자란 주제로 강제 징용한다. 소수의 간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반 사병은 모두 징병 된다. 다시 말해 모두 강제로 끌려온다. 그렇다면 애초에 군에선 인권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래서 군인권센터라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있는 위안부 성폭력 상담소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번뜩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므로 선의의 딴지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마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인권침해인 징병을 건드리면 흔히 '종북'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며, 백발 성성한 노인이 한쪽 어깨엔 가스통을 메고 들어오는 광경을 목격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입대해서 가혹행위, 성추행, 폭력 같은 굳이 인권을 따지지 않더라도 범죄행위인 그것들에 대한 문제를 도와주리라고 예상해본다. 군인권센터 보다는 군범죄센터가 더 어울릴듯하다.  

  



 '당신이 무슨 죄죠?'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대국민사과문은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느냔 의문이 들었다. 재직 중에 그 사건이 일어났으면 당연히 어느 정도 장관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가 알기로 저 양반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면 현재 장관이 아닌 전 장관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과의 주체가 전 장관이나 현 장관이냐를 떠나서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러면 통수권자가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거나 대책을 발표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긴 오히려 그 분이 나오면 이번엔 육군이나 28사단을 해체해버릴까 무섭긴 하다. 


















 당신에게 머리를 박으라 하고 나서 옆구리를 발로 차는데 넘어지면 안 되니까 배 밑에는 메스(칼)을 대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건 어느 정도의 공포를 유발할까? 간단히 폭력의 공포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메스가 있기 때문이다. 외과용 수술칼은 외과의의 손에 있으면 사람을 살리는 칼이지만, 무지한 사람의 손에서는 살인 용도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말이 의무병이지 당연히 외과적 (사람의 배에 칼을 대어 의료행위를 할만한 지식)은 없다. 그렇다면 배아래 칼을 대었다는 것은 살인의 의도로 봐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의 배에 칼을 대고 있다면 개인적으로 살인의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 상상한다. 


 물론 윤 일병과는 다른 케이스이며, 많은 가혹행위 피해자들 중 유난히 안타까운 피해자를 고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방송용으로 더욱 자극적이게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저 피해자가 당신이나 당신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학대를 당하는 병사는 부모에게 '엄마 살려주세요.'란 말을 했다. 

아마 수 많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윤 일병도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많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군대 내 사망자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결코, 군대 내에선 자신을 살려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에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는 부모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군 헌병대에선 배에 칼을 대도 협박이나 위협이 아니라고 한다. 

 








 군 수사당국은 피해자가 사건을 진술할 때 가해자를 데려다 놓고 했다고 한다. 이런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 과연 군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기관이기에 가능한 걸까? 








 가혹행위 피해자가 하는 질문은 '내가 왜 군대 와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 이게 옳은 건가?'이다. 그는 군대에 왜 갔을까? 당신이 군대에 간 이유는 필요 이상으로 애국심이나 객기가 있었든가, 적극적으로 상류층의 일반적인 부정행위인 병역특례나 기피에 관심이 없었던 부모 덕분이다. 아니면 자신의 생니라도 뽑지 않았던 게으름 대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받은 대우는 옳지 않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해 신체적 피해를 입혀 장애나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명백한 전투력 약화이므로 적대적 행위에 해당한다. 아군을 사망케 한 것에 대해 군법의 양형 사유는 모른다. 하지만 전시였다면 법이 아닌 동료들이 살기 위해 그들을 총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신선하고 자극적인 기사에 묻힐 것이다. 그 기사가 이런 살인 사건이든 연애 가십 기사든 아니면 재앙 기사든 결국엔 묻힌다. 묻히지 못하고 오래가면 사람들은 굉장히 피로감을 느낀다. 300여 명이 수장된 세월호 사건도 특별법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보다 점점 이제 그만하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끔찍하다. 아마 이 사건, 약 100일이 흐른 시점에서 '이제 그 군인 이야기좀 그만하자.'라는 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다. 


 한 명의 창창한 젊은이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해야 될까? 그 젊은이의 현재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있다. 겨우 해봐야 이제 대학생 정도이기에 전문적인 직업이나 고수익 직업은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단순 노무 생산으로 벌 수 있는 돈이 그 젊은이의 가치이다. 하지만 현재 가치일 뿐, 그 청년의 미래 가능성까지 따진다면 어떨까? 만약 그 청년이 제 2의 스티브 잡스였다면? 제 2의 만델라였다면? 국가는 그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몇 백장과 보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사퇴와 힘만 쓰면 언제든 병역을 회피할 수 있는 특권 기득계층들의 더 단단해지는 병역회피증이 다가 아닐까?


 청년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높으신 양반들이 사퇴하는 것을 봤다. 일 못 하면 사퇴하는 것은 온당하다. 그런데 그것이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변색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니들이 일 못 해서 일이 크게 터져 망쳐버렸는데, 이제 그 일에서 손을 때는 게 책임을 지는 건가? 사람의 목숨과 자신의 직책이 동급이라는 것일까? 그건 책임이라기보다는 회피성 도주라고 생각한다. 그걸로는 아무것도 책임져지지 않으며 고쳐지지 않는다. 


 이 사건 이후에도 무엇하나 바뀌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관리자에 대한 응징이 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아예 문제집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떨어진 문제집을 보며, 언론들은 마치 문제를 이긴 것처럼 보도한다. 이래나 저래나 군대갈 사람들만 더 불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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