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씁쓸한 시대의 자화상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씁쓸한 시대의 자화상

Posted at 2014. 5. 28. 14:03 | Posted in BLOG/끄적끄적

 미국과 유럽에서 한 경제 서적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토마스 피케티의 신자본론, 혹은 21세기 자본론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는 방대한 수치를 수집해서 작금의 경제 상황의 불안감을 파헤쳤다고 한다. 책의 논지는 간단하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 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도 여실히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의 노동과 자본의 싸움은 그 오랜 역사를 보더라도 자본이 우세하다. 이건 여타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지나친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인식조차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있는 돈으로 임대업이나 투자업을 하는 사람과 몸으로 노동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면 노동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않아서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더 대우를 받는다. 물론 몇몇 노동자는 고부가가치를 이루어내지만, 극히 소수이며, 그 소수마저 결국엔 모아둔 자금으로 자금을 불리는 일을 한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보면 확실히 발전 초기는 사람에 의한 발전이었다. 하지만 고도성장시기는 그와 반대다. 돈이 돈을 버는 형태가 두드러진다. 이는 돈이 없는 사람은 계속 돈이 없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대로 돈이 있는 사람은 계속 돈이 벌린다. 부익부 빈인빅의 소득불평등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이념에 따라 한국은 충실히 그 길을 걸어왔다. 덕분에 돈이면 무조건 무엇이든 되는 세상이다.  


 피케티가 지적한 진짜 문제는'이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이다' 란 예상 때문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그 속도를 더할 것이다. 당연히 경제 둔화를 가져온다. 노동소득을 높이려는 의지는 없다. 그래서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며, 당연히 노동을 안 하려고 한다. 지금 보유한 자본을 가지고 그 자본을 더욱 굳건히 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어떻게든 자본을 모으려고 노동을 한다. 노동 그 자체로 파생되는 가치보다는 노동으로 자본을 모아 그 자본으로 자본을 모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봤자, 이미 돈이 있는 사람은 자본을 모으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챙기고 있다. 그러므로 소득불평등은 더욱 심화 된다.


 불평등을 타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혁명? 개선? 아마 타파하기 힘들 것이다. 정도전이란 사극 드라마에서 권문세가 일족의 대장 격이었던 이인임은 이런 말을 한다. '거지에게 조금씩 적선하면 거지로서 그것에 빌빌거리며, 좋아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안 주면 나가서 도적이 되더라.' 일반 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 거지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전체 부의 작은 부분을 분배받으면서도 그걸로 만족과 희망을 얻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마저 세습 자본주의로 역행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자본의 세습화가 이미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소득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문제이다. 자본에 의한 소득에 대해 많은 세금을 부과하며, 정치, 사회적 견제가 필요하다가 말한다. 물론 이미 자본에 의한 정치, 사법 체계의 잠식이 이루어져 그와 같은 선 순환적 견제가 이루어질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부의 재분배와 감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쥐뿔도 없는 사람마저 공산주의냐며, 핏대를 세울 것이다. 그러면서 굶어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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