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통계로 보는 한국인의 삶OECD 통계로 보는 한국인의 삶

Posted at 2014. 5. 20. 19:20 | Posted in BLOG/시사사회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이고, 설사 통계로 99.9999%의 확률이 있다고 하여도 자신이나 가족, 지인이 그 통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랏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통계자료 출처에 신빙성 문제가 없다면 어느 정도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을 것이며, 전체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끝없는 사회분열과 지역갈등, 상식보다는 이념을 중시하고 공약보다는 출신 지역과 학교를 보고 투표를 하는 행태는 작금의 한국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이유가 아래 나오는 OECD 통계들의 참혹함을 설명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So What? 한국의 상황이 어려워지든 말든 자신과 가족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복지공약보다 아파트값과 땅값 오르는 공약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욕할 수도 없다. 시대의 부당함에 대항하지 않고, 입 다물고 지지한다고 해도 욕할 수 없다. 이것 또한 시대의 흐름이며,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낮다. 예전에는 남아선호사상이라는 미개한 민간 전통이 있어서인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고 보는 가정이 많았다. 꼭 남자아이 때문이 아니라도, 가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농어촌 같은 손이 많이 가는 1차 산업의 경우 다산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바뀌고 문화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노동력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해졌다. 즉 밭을 일구는 손의 개수보다 어떻게 일굴 것인가 생각하는 한 개의 두뇌가 더 값어치 있어진 것이다. 


 낮은 출산율에도 세상에 태어난 행운아들은 현저히 떨어지는 행복지수를 느끼게 된다. 그 이유가 부모의 무관심이나 오직 대입을 위한 준비에 의한 것이나, 잘못된 가정 교육으로 친구들 간 따돌림 폭행을 당한다든가 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나오는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놀러 가는 곳에 까지 책을 가지고 오며, 그것을 탐독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책 읽고 공부 잘하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행복한 행위가 아닐 것이다. 내기도 할 수 있다. 놀러가서 까지 책을 싸들고 가는 아이의 심리는 진짜 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것을 보고 부모나 어른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닐까? 칭찬받는 것은 행복하지만, 그 행복을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것부터 배우는 아이들이 행복할 리는 없다.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의 행복은 뻔하다. 공부 잘해서 대학 잘 가고 좋은 직장 얻어 결혼 잘해서 땅 사고 집 사고 부모 자신에게 용돈 많이 주는 것 아닐까? 그 과정에는 절대로 아이 자신에 대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아이가 갖게 되는 부산물의 양과 질에 따라 아이의 행복은 측정된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1등 하는 것은 많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고등학교 이수율은 98%이다. 거의 100%라고 봐도 된다. 또한, 전문대 이상의 학력 이수율도 1위이다. 교육열이 무척이나 높다는 것이다. 교육열은 높은데 그 교육의 목적이 오직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생각하는 문화와 과학의 발전은 없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경영자나 고위 공무원을 꿈꾼다. 공부가 뒤떨어지는 아이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를 꿈꾼다. 한국의 창작 문화나 기초 과학분야는 불모지나 다름 없다. 지금까지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없을 것으로 단언할 수 있다.


 그릇된 성공 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이들의 꿈을 획일화 시킨다. 한국 또한 아이들의 꿈은 성장함에 따라 심하게 획일화된다. 그러다 어중간하게 지방대학이라도 나오면 공장 생산직에서 시간과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저소득층이 되거나,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떼주기 위해 하루 12시간 이상을 다시 영어와 씨름한다. 그런 세상이 행복할 리는 없다. 



 힘들게 공부해서 취업해도 결코 그 환경이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다. OECD 주요 국가 산재사망률을 보면 한국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재해라는 것은 비단 저소득층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선되기는커녕, 비용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 '혁신'이라는 단어를 외치기 만들어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몸이라도 상해 일을 못 하게 되면 자식에게는 이런 더러운 꼬라지 보지 말라며, 학원을 등록시켜 준다. 그래서 그 자녀가 성공해 관리자나 경영자가 되면 다시 비용절감을 외치며,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몬다. 


 한국인은 위험할 정도로 안전불감증이 심하다며, 모두 안전에 유의하자고 하지만 안전에 인색하다기보다는 '빨리빨리' 문화와 당연히 해야 할 안전이 비용으로 생각되는 물질만능주의 때문은 아닐까? 안전 로프를 설치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작업하는데 시간도 많이 들고 관리 비용도 들어가기에 안 하는 사례가 더 많을 것이다. 결국, 이것도 돈이다. 돈을 위해 안전을 포기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2011년 기준 한국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 2위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자원은 흙과 나무와 물, 그리고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산업의 발전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발전한 나라를 보며, 어느 독재자가 열심히 해서 이 정도 먹고사는 것이라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억울하게 노동 착취를 당하며, 군말 없이 근로하는 성실한 노동자가 이 나라를 이만큼 부강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이미 부강하다. 그럼에도 노동 시간은 예전과 비슷하다. 시간의 효율 측면에서 그렇게 사람을 굴려야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드는 그 이익이라는 것도 노동자의 이익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이익일 때가 많다. 


 힘들게 일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더라도 사회복지는 형편없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OECD의 최하위급이다.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사회복지수준은 사회를 더 삭막하게 만들며, 복지는 돈이라는 수식이 성립되기에 알맞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보다는 모아 놓은 돈의 양이 복지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래서 젊을 때는 이른바 '노후자금'을 의식하며, 저축이나 연금에 힘쓴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는 그마저도 무색하게 한다. 



 IMF 때 나오는 헛소리 중에 '빚도 재산이다.'라는 말은 정말 역대급 개소리이다. 빚은 재산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가계부채는 이미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며, 그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가계의 부채는 파산을 뜻한다. 그리고 많은 가계가 파탄 나면 결국 나라도 망할 것이다. 


 힘들게 공부해 직장을 잡아 하루 종일 일 함에도 빚은 늘어나고 행복하지도 않다.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 굳어있고, 노후에 대한 불안은 하루가 다르게 목을 조여온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OECD 자살률 1위는 어쩌면 당연한 말 같다. 


 201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33.3명이 자살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물론 개인적으로 노력하지 않았거나 운이 없어서 일수도 있다. 거기에 대고, 국가의 사회안전망이나 복지 수준을 탓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지가 못나서 죽은 걸 왜 국가 탓을 하느냐'는 애국적 발언을 한다. 물론 그 애국적 발언은 자신이나 가족이 자살했을 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자살할 용기가 없거나 그냥저냥 살던 사람들이 늙으면 어떻게 될까? 노인 빈곤율 또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언젠가부터 길거리의 골판지나 생활폐지들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노인들이 끄는 리어카는 언제나 가볍기만 하다.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주겠다며, 공약했던 것이 먹힌 이유도 아마 이런 빈곤에서 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서 노인을 쓸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빈곤은 항상 노인을 힘들게 한다. 당연히 노인의 자살률 또한 최고치이다. 약 50여 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다시 세워 한강의 기적이라는 민족적 자위 질을 할 만큼 성장한 나라에서 아직 아사자가 발견되고 밥벌이를 못 해 스스로 목을 매는 것이 한국이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며 자책하는 노인들은 그 말이 자책에서 나온 실언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은 빈곤 노인에게는 어느 정도 맞는 공약이다. 빈곤 노인들이 말하는 '늙으면 죽어야지.'란 말을 국가가 이루어지도록 방임하기에 자살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OECD 통계를 보고 있으면, 돈 벌어서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이유가 없어진다. 살아서 뭐하는데? 애 낳아서 뭐하는데? 오래 살아서 뭐하는데? 라는 자조 섞인 한탄만 하기보다 제 3세계에서 다른 인생을 찾는 것은 현명한 처사이다.


 나라를 떠난 것이 현명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일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선택은 어차피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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