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60분 섬마을의 비극, 현대판 노예 과연 염전만?추적60분 섬마을의 비극, 현대판 노예 과연 염전만?

Posted at 2014. 3. 17. 01:21 | Posted in 리뷰/TV

  이미 한 차례 염전 노예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다분히 나의 상식과 관념에 의해 쓴 글은 자본주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노예이다. 라는 생각으로 쓴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말 그대로 관념적이었다. 라고 느꼈다. 



 추적 60분에서 방영한 섬마을 노예들의 이야기는 그와는 조금은 다룬 구체적이고 진짜 사람의 인생이 걸린 하나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의 무지와 보편적 가치가 돼버린 비인권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고 마을이 형성되고 국가가 탄생한다. 그래서 사람은 중요하다. 하지만 리 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증명되었다. 국가가 나서서 세우는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타인과 타인들이 지켜주는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한 명의 인생 대부분이 노예 생활로 사라졌다. 그의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 한 명의 가족들이 몇 년을 가슴앓이하며 살아왔다. 그 심장이 녹을 듯한 걱정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루가 지옥임에 그 지옥은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불지옥이 아닌, 현실에서의 생이별의 지옥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의 원천은 천민자본주의와 사람의 인권을 개, 돼지 마냥 아무 거리낌 없이 생각하는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생지옥이었다.




 편지를 집으로 보내 탈출에 성공한 사람으로 이 거대한 노예 시장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을 놓고 '전라도'를 붙여 일반화시켜 욕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저 지역의 염전을 소유한 사람들은 왠지 일반화시켜도 될 거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일부가 아닌 전체에 의한 비상식이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미친 사람의 나라에선 정상적인 사람이 미친 사람이듯, 그들은 스스로 모두 미쳤다. 하지만 그들만의 세계가 아닌 더 큰 세계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미친 것은 물론이고, 악마로까지 묘사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양반집이면 집집이 노비가 한 명씩 있던 조선 시대에는 노비를 부리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 오히려 많은 노비는 그의 부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그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하였다. 그것이 보편적 가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시대이다. 인권이 존재하고 노동법이 존재함에 그들의 인권 유린은 보편적이지 않다. 섬이라는 폐쇄적인 특수성 때문이었을까? 그 비상식이 보편적 가치가 되는 데는 얼마 시간이 안 걸린 듯하다.



 섬에 감금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상태에서 폭력을 당했을 때 피해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난 상상이 안 간다. 그 막막함 절망감은 무한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무한의 절망감에 투쟁하여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이 문제를 세상 밖으로 알린 사람이야말로 노예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는 첫 단추를 완성시킨 게 아닐까? 국가나 시민단체나 유력 정치인이 아니라, 같은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이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것에 나는 약간의 자조감을 느꼈다. 신당을 창당하든 야합을 하든 큰 문제들이 많든 국민을 위한 대표들은 무엇을 했는지, 나라의 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은 무엇을 했는지, 정부의 관련 부처는 무엇을 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라는 패기가 없었다. 살고자 하는 구구절절함만 보이는 편지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내가 말한 투쟁이란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찾아올 때는 소금을 사는 구매자처럼 위장하라는 말을 미리 알리라는 것은, 올 시에 어떤 은닉 행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현행 노동법상 몇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한계 규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했다면 하루에 총 18시간을 일한 것이다. 6시간 자고 18시간을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을 못하면 때렸다. 아마 일제 시대 때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을까? 염전 노예를 부렸던 소유주들은 악마가 분명하다. 



 사건이 일어난 신안군 사람 모두를 일반화하여 악마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몇몇은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 은폐했거나 혹은 옹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생각마저 힘을 잃었다. 업체와 노동자가 계약하고, 그 계약에 숙식이 들어가면 급여에서 숙식비를 제하더라도 임금은 지급돼야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말 미친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숙식이 제공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오는 것이라고 한다. 공짜로 재워 주고 먹여 주니까 오는 사람들이기에 일은 공짜로 시켜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거짓말이라도 이렇게 옹호는 모습을 보며 내가 꼭 천일염을 먹을 이유가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했다. 외국산 소금도 있고 암염도 있다는데 알아봐야겠다. 


 진심으로 농수산 관련업자들이 우리나라 식량 주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임을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드러난 소금만은 식량 주권이고 나발이고 그냥 외국 꺼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신안산 천일염에는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의 땀과 눈물과 피와 한이 서려 있을 것이다. 그거 먹고 젊어진다거나 만병 통치가 된다 해도 안 먹을 것이다. 망했으면 좋겠다. 저 정도면 범죄 단체라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출처 : http://council.shinan.go.kr/home/council/guide/page.wscms


신안군에선 알고 있었을까? 당연하다. 추적60분 내용에서도 군의원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포착되었다. 이런 더러운 환경을 알고도 지금까지 의정 활동을 해온 정치인들은 과연 얼마나 더러울까 상상이 안 되었다. 이상하다. 신안은 전라도고 전라도에선 그 당은 뽑지 않을 건데 정치인들은 다 그냥 더러운 걸까? 같이 노예를 부리지 않았더라도 더러운 것이다. 1~2년도 아니고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몰랐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거나 다 부질없는 변명일 것이다. 



 섬은 탈출하기 불가능에 가까운 요새와도 같다. 바다라는 천혜의 울타리는 그곳을 더 폐쇄성 짙은 곳으로 만든다. 신안 사람들이 그냥 멋모르고 형성된 노예 사용에 적응하여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랬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은 피해자들을 때렸다. 도망가면 가지 말라고 협박을 했다. 그들은 그것이 잘못인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편지를 써서 탈출한 그분을 선두로 다른 노예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발견된 모양이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 돈을 못 받은 채 몇십 년 거기 있었다. 그분의 인생과 가능성은 그 염전 주인의 편한 이득을 위해 희생되었다. 염전 주인이 노예를 10년 사용했으면 10년형을 내려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벌어들인 금전도 모두 압수해야 한다. 어이없게 노동법과 약간의 형법 적용해서 2~3년 판정하면 앞으로 염전노예시장 전용 바지사장도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사람이 그간 체납된 임금을 받으려 항의를 하러 갔다. 10년에 3천만 원을 요구했다. 일반적으로 1년에 3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저 사람은 왜 10년에 3천으로 말하는 걸까? 과연 하루에 18시간을 육체노동 하고 일 년에 3백만 원, 한 달에 23만 원, 하루 일당 8,300원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더 웃긴 건 염전 주인들도 저 금액이 맞는 금액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줄 거 다 주고 염전 하면 남는 것 없어서 망한다고? 그런 산업은 차라리 망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소금산업의 명맥은 어떻게 하느냐고? 우리나라 소금 산업 명맥 차라리 개나 주자. 저 할아버지 나이와 일한 연도를 감안하여 시급을 4천원으로만 측정하자. 하루 18시간에 4천 원이면, 하루 72000원 일요일 제외한 25일 180만 원이다. 1년에 2160만 원이며, 10년이면 2억 돈이다. 과연 그 노동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주머니 배에 시선이 꽂혔다.



오랜 시간 동안 노예 생활을 해 온 사람은 그 종속관계에 대해 완전히 적응 한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들은 많다. 완벽하게 노예로 태어난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염전 노예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완전히 적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광역수사대의 수사에서도 같은 종속관계의 특징을 보였다. 답답하기는 조사하는 형사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장애인들은 현실적으로 노동 시장에서 소외를 당한다. 하지만 그 장애인들만을 골라 뽑는 직업소개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을 손쉬운 돈벌이로 생각했다. 한 명 넘기고 백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말하다 보니 무슨 아주 먼 이국에서 일어나는 미개한 사건 같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나라이고, 그 범죄에 관련한 수요가 있고, 그래서 공급이 있다. 일단 우리나라 치안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 추적 60분의 타이틀은 섬마을의 비극이었다. 섬마을의 비극이라기보다는 섬마을에 갇힌 사람들의 비극이 아닐까? 그 사람들은 무슨 죄로 거기에 있는 것일까? 장애가 있는 죄? 노숙자인 죄? 한국의 힘 없는 빈민인 죄? 



 돈이라는 것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그 괴물들이 폐쇄된 사회에서 서로의 치부를 인정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닐까? 그렇게 노예를 부리면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건으로 억울하다거나 몰랐다거나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 된 지 모르거나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다. 낙후되고 폐쇄돼서 라기엔 너무 엇나간 인권의식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게 픽션으로 방송에서 지금 연출을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원래 나는 방송의 주제보다 방송이 그 주제를 다루면서 보이는 문제를 보는 것 자체를 즐긴다. 그런데 도저히 이 방송은 한 발 뒤에서 볼 여유가 없다. 주민의 제보를 듣고 있노라니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이란 나라 안에서 진짜 생긴 일인지부터 궁금함이 밀려왔다. 있을 만한 사건은 분노나 저항이나 포기를 할 수 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이치와 같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죄의식이라는 말을 하는 신안군 주민을 봤다. 그는 분명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 알린다거나 노예를 도와준다거나 하지 않았다. 결국, 그도 같은 공범일 뿐이다.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독일 나치에 대해 부역한 언론인말고도 침묵으로 일관한 언론인까지 프랑스인들은 처단했다. 똑같은 이치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방관하고 침묵을 지키는 자는 언제나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를 도맡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사회 보장이 잘 되어있는 나라였다면 그들이 노예를 쓸 필요도 누군가 노예를 팔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욕심으로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사회 보장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보기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사람이 미친 것 아닌가? 미치지 않고서야 온 동네 그것도 치안을 담당하는 파출소까지 합심해서 노예관습을 이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사회보장이나 복지 같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개인의 혹은 지역의 범죄 문제가 더 크다는 느낌이다. 


 미국은 링컨이라는 사람이 노예해방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것으로 전쟁할 정도로 뜨거운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도 노예가 아닌 노비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노비해방운동? 그런 거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흩어지고 문서가 타버렸고, 누가 누군지 주민등록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냥 자동으로 근대에 들어와 노비제도가 사라졌다고 알고 있다. 이 축복이 이 사건과는 별 상관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동적이고 편한 신분제도의 재편은 우리에게 신분에 대한 인권의 중요성을 배우는 계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의 방증도 될 것이다. 뜨겁게 데어본 사람만이 불이 무서운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몇 일부터 단속을 시작한다는 어이없는 계획을 선포하던 경찰이 부디 지속적이고 성실한 자기 일을 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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