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뛴다로 보는 국민성 혹은 시민의식심장이 뛴다로 보는 국민성 혹은 시민의식

Posted at 2014. 3. 14. 12:51 | Posted in 리뷰/TV

 이른바 골든타임이란 것이 있다. 응급 환자의 경우 골든타임 내에 병원에 도착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이 확 올라간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화재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연소가 이루어지기 전 빨리 도착하면 그만큼 피해도 적을뿐더러 진압도 쉽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응급구조 및 소방시스템은 그 골든타임을 지키는 일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심장이 뛴다 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 유투브를 통해 우리나라 영상 하나가 화제가 됐었다. 꽉 막힌 도로에서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자 차들이 양쪽으로 쫙 갈리지는 영상이었다. 블랙박스 영상이었는데 운전자도 "대박~" 이라고 할 만큼 장관이고, 색다른 풍경이었다. 그런 영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신기하고 색다른 풍경이라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우리가 구급차를 대하는 혹은 구급차가 구하러 가는 한 생명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소방을 주제로 체험하여 그 리얼리티로 흥미를 유발하는 심장이 뛴다는 굉장한 포텐셜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예전 긴급출동 119 같은 프로그램에서 소방 구조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형식의 방송을 했었다. 초반에는 굉장한 인기몰이를 했었으나 결국에 시들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긴급출동 119와 심장이 뛴다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반인으로서 참가 하는 연예인들은 덤덤한 전문 소방관들보다 현실에 대해 더 호들갑을 떨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의 경우 빠르게 가야 하는 상황에서 차량의 비협조는 일상일 것이다. 똑같이 화나고 조바심이 나겠지만 이미 같은 경험을 수백 번 했을 것이다. 고로 감정적으로 덤덤하지 않을까? 하지만 연예인들은 일반인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이 사람들이 양보를 안 하네? 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기도 할 것이다. 시청자가 이입만 한다면 그것은 분노를 자아내기에 너무나도 안성맞춤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청자는 분노를 느끼고 형체도 없는 시민의식의 낮음을 비판하거나 자신도 포함되는 국민성을 탓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분노의 수준을 넘어 '나부터'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지가 되면 예전 '이경규가 간다.' 라는 프로그램처럼 국민적인 의식을 세우는 국민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가능성은 가능성이고 당장 시청률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심장이 뛴다 라는 프로그램은 다 같이 화를 내는 챕터와 웃기려고 노력하는 챕터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나도 일반적으로 다시 부활한 1박 2일이나 가끔 보는 무한도전 런닝맨 등의 예능을 보고 웃긴 웃는다. 그런데 심장이 뛴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는 개그는 도저히 웃음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웃길려고 만든 프로그램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장을 뛴다를 보는 사람들이면 다들 알 것이다. 분명 웃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시도가 있다.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안웃기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길은 소방 구조에 개그요소를 입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 같이 화내는 챕터에서 이 프로그램의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권선징악을 마치 세상의 정의인 것처럼 교육받는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집에 와서도 그렇다. 티비 만화에서마저도 그렇고 동화책들도 거의 다 그렇다. 선한 것은 승리한다. 선한 것은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승리한다. 라는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교육을 받은 우리는 커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 실수들 속에 이 프로그램의 살길이 있다. 모자이크 처리된 번호판을 달고 있는 비협조적인 차들이 악이다. 그리고 협조를 요청하고 안타까워하는 소방관들과 체험 중인 연예인들이 선이다. 우리의 시점은 언제나 선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선으로 이입한다.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가려진 번호판의 차주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그저 빨리 비키지 않아 응급환자를 더 다치게 하고 죽게 하는 사람이 미울 뿐이다. 그냥 우리는 미워하면 된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미워할 거리를 제공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시청해주면 되는 것이다. 



 미움과 분노를 밑천으로 시청률 장사한다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미움과 분노는 공익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봤다고 해서 그것에 맞게 시민들이 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럴 일 없다. 절대로 없다. 이걸 보며 "으이고 나쁜 사람들 좀 비켜주면 어때서" 라거나 "꼭 저렇게 좁은 골목에 차를 대야 쓰겠나?" 라고 지껄이더라도  곧 그와 같이할 것이다. 난 아닌데? 라고 말하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많은 사람에게 심장이 뛴다는 꼭 지켜야 할 공익준법프로그램이 아닌 분노를 생성하고 미워할 거리를 제공하는 리얼 예능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심장이 뛴다를 보고 많은 사람이 국민성 혹은 시민의식을 거론하며, 스스로와 나머지를 모두 매도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민성이 무엇인가? 한 나라의 국민성이 어떻게 평가되는가? 국격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가? 너무나 추상적이다. 약 5천만 명의 사람들을 일반화시켜 하나의 성격으로 표현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비논리적인가 그간 매체와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일명 어글리 코리안 이라는 수식이 붙을 정도로 민폐를 끼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다. 은연중 입력된 그 모습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 자동으로 참조된다. 그리고 그 참조를 이유 삼아 한국의 국민성이 정말 대륙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한다. 그 말을 할 때 그 국민성이라는 주체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음에도 자신은 그걸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있고 불특정다수는 그런 국민성을 만든 어이없고 나쁜 사람들이 된다. 


 

  이 시대를 살며 미디어를 아직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안에 연출이라든지 스토리라인이라든지 하는 것을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에 이입 중 일 때는 그저 방해물에 불과하다. 심장이 뛴다를 보며 우리는 도로에서 협조하지 않는 차를 보며 분노 해야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을 법대로 처리하고 싶다. 장난으로 혹은 취객의 전화로 고생하거나 맞거나 하는 소방관들이 불쌍하고 애처롭다. 


 잘 생각해야 될 것이 하나 있다. 심장이 뛴다 에서 보이는 많은 작태가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발견되었나? 라는 것이다. 원래부터 그래 왔고 지금도 그런 것뿐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그전에는 일언반구 없다가 왜 이 프로그램을 보고서야 화를 내는 걸까? 앞에서 말한 시청자는 정의의 편에서 이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미디어에서 분노를 조장으로 상업적 이득을 취하기에 시청자는 그 장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인가? 



 우리나라 공무원의 종류 중에 소방관 혹은 119구조대원의 신뢰도는 굉장히 높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열악한 시설과 장비 그리고 불안한 처우와 예우 무엇보다 도움을 받는 시민들의 구조활동을 협조하는 의식이 낮은 것은 확실하다. 


 어떤 업에 대해 그 업으로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업으로 목숨을 바치고 진짜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직업은 몇 개나 될까? 그저 어떤 이득을 위해서 일하다가 죽는 것이 아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죽는 직업이 몇이나 될까? 


 심장이 뛴다 가 이제 18회가 되었다. 앞으로 100회 200회를 하더라도 난 그에 관한 시민의식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부터 시민의식이나 국민성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내 차 가지고 내 기름 써서 내 집 찾아가겠다는데 응급한 환자가 있든지 말든지 내가 내 차를 내 집 앞에 주차하겠다는데 그걸로 골목이 막혀 누군가 타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유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며, 개인주의 신봉자이다.


 직접 당신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고 개연성 있는 설명이 없다. 언제 어느 지점에서 119구급차에게 협조를 안 해서 혹은 가는 길을 차로 막아 누가 어떻게 언제 죽었다. '당신으로 인해' 라는 통지가 있다면 바꿀 수 있다. 물론 그 통지는 아마 벌금이나 검찰 출석 통지서이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강해도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죽었다고 한다는 것은 그 끝없는 개인주의에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든 소방관이든 주취자의 행패에 시달리는 것은 현실이다. 이런 주취자를 보며 우리는 분노하거나 짜증 낸다. 도대체 왜 저럴까? 하지만 진짜 짜증 내야 하는 곳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술을 파는 이상 주취자는 계속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에 관해 실형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결국에 자신의 표와는 상관없는 일이므로 신경 안 쓰는 분들에게 이런 현실은 그저 귀찮은 일 중 하나일까? 우리는 그 부분에서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공무집행방해 라는 죄가 있다. 인간을 구조하는데 성격까지 인간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역할을 주취자로 인해 올바르게 시행할 수 없다면 공무집행방해로 구속하는 빠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집행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권력과 친한 것 같은 주취자들이 한꺼번에 멸망할 것이다. 



 이 포스터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물에서 건져놨더니 봇짐 내놓으라고 한다더라라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일까? 술에 많이 취해서 그랬을까? 술에서 깨고 나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만취해서 그랬나 봅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할까? 정확하게 말해서 공무집행방해와 상해죄로 실형을 살게 하고 이런 사례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 소방관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사건들을 한가득 보고 나면 나머지도 모두 더러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거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헛소리와 같다. 열을 봐야 열을 아는 것이다. 5천만 국민들의 모든 사정과 사상을 봐야 국민성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분노 버라이어티를 보며 존재하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국민성과 시민의식을 조롱하기보다는 그 분노를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고 있는 우리 손으로 뽑은 사람들을 질책하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