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알림인가 아니면 감동을 주려 함인가청야 -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알림인가 아니면 감동을 주려 함인가

Posted at 2014. 3. 13. 21:15 | Posted in 리뷰/영화

 청야라는 영화는 거창양민학살 사건이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에 나름의 스토리를 녹여 쓴 작품은 그 사건을 알리고, 영화로서 가치를 높이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는 도구로 쓰인다. 화려한 휴가도 그랬고, 26년도 그랬다. 그때 그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감정은 '재미가 없다.' 이다. 거창양민학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그리 알려진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이 비극적이고 역사적으로 기억되어야 할 사건임을 인지하는 것과 영화가 재미없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된다. 



 슬프기만 해서는 대중에게 알릴 수 없다. 대중은 분노를 원한다. 특히 코믹스런 장치 하나 없이 마냥 역사적 비극에 초점을 맞춘 이런 영화에서는 그게 꼭 필요하다. 그래야 호응을 얻고 사람들이 많이 보며 많이 봐야 많이 기억되고 회자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숭고하게 덧칠하더라도 망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 못하는 객관적인 내가 안타깝고, 영화를 그저 데이트 코스나 심심풀이로 볼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안타깝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거창양민학살 사건에서 양민학살 혹은 빨치산 소탕작전을 펼쳤던 할아버지(명계남)가 치매에 걸리고 그의 손녀가 할아버지의 낡은 사진을 보며 시작된다. 거기에는 거창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PD와 지방청 관계자와 주민과 생존주민들이 있었다. 학살한 쪽이나 학살당한 쪽이나 철저하게 무너져버린 인간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사람이 죽는 게 슬픈 걸까, 죽는 사람들 속에 살아남는 게 슬픈 걸까 영화는 그 낡은 사진 속에 소녀를 할아버지가 찾아내며 끝이 난다. 



청야 (2013)

7.7
감독
김재수
출연
안미나, 김기방, 백승현, 명계남, 장두이
정보
드라마 | 한국 | 83 분 | 2013-12-26
다운로드


 청야를 본 사람들의 평점은 둘로 나뉜다. 청야가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해 거기에 동정을 느낀 사람들이 영화가 아닌 역사적 자료로써 작품을 인정할 때 10점짜리가 되었고, 영화를 영화로써 돈을 낸 만큼 나에게 흥미나 눈물이나 재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2~3점 짜리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관람을 한 사람들은 전자인 10점을 주었고, 우리나라는 역시 개인적인 향유보다는 역사적 슬픔과 연민을 더 경외 시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당시 6.25가 휴전을 하고 남쪽에 남은 빨치산들은 정말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빨치산에 대한 소설과 영화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그들로 하여금 많은 스토리가 한국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백산맥도 그렇고, 남부군도 그렇다. 빨치산 때문에 양민들이 죽어 나갔다. 빨치산에게 죽고, 빨치산에게서 생존하면, 국군이 죽였다. 밤과 낮이 달랐다고 한다. 


 이념으로 생긴 빨치산 혹은 빨갱이라는 사람들처럼 말하거나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빨갱이란 칭호을 얻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처단하는 애국보수나 국군들 그들의 말로를 이 영화 청야에선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같이 늙어 닭 한 마리에 소주 한잔 나누며 서로 좋다고 웃을 수 있는 같은 나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극 중 학살사건 다큐를 촬영하는 PD의 모습은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4.3 제주사건이라든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일에 대해 우리 현대인들의 자세를 나타낸 것 같다. 물론 감독은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영화 속 PD는 거창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술을 먹으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 분노 속에는 직접 피해를 당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갖는 특유의 억울함이라던가 한이 없다. 그저 분노한다. 그리고 거창에서 다큐를 제작할 때는 조금은 비인간적인 방법이더라도 거창의 비극적 잔재를 촬영함에 열을 더 올린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위에 말한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 있지 않다. 물론 0.000001% 분들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한다. 그 분노는 정의롭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잔혹함에 대한 분노이다. 그 분노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어려우나 술자리같은 잠깐의 이성을 놓을 곳에서는 불현듯 표출되기도 하는 주제가 된다. 



 영화는 이상한 강조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학살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이면서 제대로 된 보상이나 예우를 못 받는 사람이 있다. 진짜 빨치산과 관련이 있어서라고 한다. 이 대목을 좀 더 강조하고 더 길게 묘사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오직 명계남의 오랜 인연 찾기와 그 속에서의 사실로 눈물짓는 손녀가 아니라, 실제로 그 사건에 연관된 사람이지만 국가로부터 억울한 처사를 받는 사람들이 분노를 이끌기에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많이 우는데 난 하나도 안 슬프다거나, 영화 속은 잔잔한데 이미 내 눈은 팅팅 부을 정도로 슬플 때가 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사람들이 운다고 같이 따라 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관객들을 다 사춘기 여고생으로 보는 건가? 하는 의심도 든다. 티비 예능이나, 드라마도 괜히 출연진들이 한 번씩 울고 자막으로 이쪽이 감동 포인트입니다. 여기예요 여기! 라며 시청자의 눈물샘을 막 쓰는 걸레 짜듯이 짜려고 든다. 이 영화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비극적이고 슬픈 일임에 이견은 없다. 군인이 그 나라의 사람들을 노인이나 여자나 애나 안 가리고 몰살했다는데 안 슬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사실 하나로 울기에 그건 마치 장례식장의 눈물이지 내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 느껴야 할 감동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도 우는 것에 대한 스킬이 다들 다르다. 배우가 우는 연기를 할 때도 그것은 보인다. 흑흑 핡핡 엉엉 어떻게 울든 간에 같이 울게 하는 배우가 있고, 재 왜 저래? 같은 반응을 나오게 하는 배우도 있다. 관객으로서 여자주인공 그러니까 손녀의 울음은 도대체 재 왜저래? 라는 느낌이 나게 하였다. 우는 연기가 안 좋다는 느낌보다는 왜 저기서 울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한없이 슬프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 또한 슬프기 그지없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사건을 생각하며 울어야 한다. 이를 주제로 만든 영화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었으니 관객들이 울어 줄 꺼야.'가 아닌 이 사건을 더 잘 알리기 위해 많이 울려야지 라고 생각했어야 했지 않을까? 



 이렇게 만들려면 차라리 태극기 휘날리며 처럼 아예 과거로 돌아가서 엄혹한 학살의 현장을 길게 재연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다큐형식으로 만드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다. 끝 부분에 온리 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진 잔인한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나오는 회상씬 즉 과거 학살현장 씬이 제일 보기 편했다. 내가 잔인한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이 인식에 박히기 좋기 때문이다. 조용한 마을에 늙은이의 모습들은 코믹이 아닌 이상 흥미롭게 쳐다보기 힘든 면이 있다.



 슬프고 잔인한 사건을 그린 영화인데 왜 나는 계속 흥미를 말하는가? 네이버에서 다운로드 받을 때 3500원이 아까워서 그러는가? 아니다. 이렇게 슬프고 잔인한 사건을 그렸기에 더 흥미를 중시해야 한다.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전 국민이 잘 알고 그에 관한 책임소재를 문책하기도 하고 유가족 보상이나 예우에 대해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영화로 끝내기에 이 배경은 사실이니까 그런 것이다. 이 영화는 재밌어야 했었다. 그것이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알리는 힘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재미없는 혹은 흥미없는 영화는 망한다. 그리고 그 영화 속 배경도 같이 잊혀진다.


 영화의 재미는 깔깔깔 웃는 코믹요소와 숨쉬기 힘들게 만드는 스릴러, 그리고 펑펑 울게 만드는 감동이라고 크게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외 재미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크게 저 3가지가 대표된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감동을 주 무기로 세팅하고 관객의 눈물샘을 정조준 했다. 하지만 그 조준은 어설펐고,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로 사건을 알리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 사건을 배경으로 감동을 주려 함인가? 이 질문을 안 던질 수가 없다. 사람이 엄청나게 죽은 사건인데 설마 감동을 주려고 그것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었겠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쎄 내가 알기로 이 세상 극장에서 개봉하는 모든 영화는 상업 영화이다. 그 상업의 성공을 위해 거창에서 양민들이 무참히 학살 당한 것을 이용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화려한 휴가도 5.18 희생자를 이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6.25 영령들을 이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비난을 받기보다 호응을 받고 인기를 끄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재미를 바탕으로 그 사건을 알리거나 각인 시키거나 재인식 시키기 때문이다. 그 굴레에서 재미라는 나사가 빠진 영화는 어떤 욕을 들어도 싼 것 아닐까? 나쁜 욕이 아니라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욕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