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 사필귀정이 아닌 작위적 사필귀선의 킬링타임용 영화용의자 - 사필귀정이 아닌 작위적 사필귀선의 킬링타임용 영화

Posted at 2014. 3. 5. 21:03 | Posted in 리뷰/영화

 영화 용의자는 거의 3백만 관객수를 동원한 스펙타클 스릴러 영화라고 알고 봤다. 포탈의 영화 소개란 평점도 굉장히 좋았고 평들도 수작이네, 명작이네 하는 것들이 많았다. 마케팅이 잘된 건지 아니면 내가 무언가 공감 능력이 심히 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무언가 느끼거나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수작이나 명작에 반열에 올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강추한다.


 영화 내내 보여주는 긴박한 액션씬과 추격씬의 장면만 보더라도 이 영화는 고예산 영화이다. 출연진도 빵빵하다. 이만큼 돈 들였는데 킬링타임 거리도 안되면 억울할 것 같다. 다행히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강력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북 출신 기업가가 살해당한다. 그 살해 현장에 지동철(공유)이 있었고, 무언가 흑막이 있는 살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그리고 그 살해를 교사한 집단과 끝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서브 스토리로 지동철은 북의 특수요원이며,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고, 살해한 사람을 찾아 남으로 귀화하였다. 



용의자 (2013)

7.8
감독
원신연
출연
공유, 박희순, 조성하, 유다인, 조재윤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37 분 |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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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배경은 아주 재미있다. 현실적으로도 북한과 남한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몰입을 일으키는 소재로써 안성맞춤이다. 정정한다. 북한과 남한이 아니라 남북한의 이야기이다. 이상하게 북한이 남한보다 먼저 나오면 종북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보는 내내 게임 콜 오브 듀티가 생각났다. 굉장한 피지컬을 가진 개인들이 마치 국가를 대신하는 것 같다. 이념 대 이념의 대결을 상징하는 것 같은 인물 설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물론 전쟁 시에는 선봉이나 중요한 접전에서의 병사 한 명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평시에는 그렇지 않다. 영화는 평시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탈북자는 간첩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고 툭하면 탈북자를 대상으로 이념 논쟁이 벌어진다. 2013년을 휩쓸었던 단어 "종북"이 생각난다. 그 종북이 펼치는 액션과 스릴은 좋았으나, 스토리의 작위성이 너무나 컸다. 


 생각이 다름으로 인류는 발전 한다. 하지만 다름이 사상이라는 것으로 치환되어 전파되면 논쟁을 거쳐 전쟁으로 발화되기도 한다. 전쟁은 땅이나 재산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닌 사상을 관철하려는 것으로 바뀌고 이미 전쟁이 아닌 학살로 번지기도 한다. 이념은 목숨을 부품으로 만든다.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실재하는 인간의 목숨은 부지기수로 바쳐진다. 

 

 21세기 아직도 분단국가로써 동북아의 화약고 역할을 맡는 한국은 이런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는 국민들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작부터 많은 예산과 좋은 출연진 그리고 몰입 가능성이 높은 배경까지 좋은 조건을 가진 영화였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실패했다. 



 영화는 소설처럼 작위적인 예술이다. 작위적이라 함은 꾸민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작위성이 지나치면 작품을 이해 못 하거나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혼란스럽게 된다. 용의자란 영화는 매우 작위적이었다. 영화는 보통 보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과를 넣는다. 하지만 어느 인과나 이유 없이 그냥 그게 멋있는 행동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무조건 선하고 다 같이 WIN WIN 하는 쪽으로 가려는 작위성은 집중도를 흩트려놓았다.


 작위적인 것은 인물 설정에서도 나타난다. 상식적이고 정의롭고 그 정의를 일명 윗선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따르는 군인이 나타난다. 얼마나 어이없는가? 모든 군인이라는 존재가 온갖 비리와 무능력 경직된 사고 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군인들은 윗선의 말을 따른다. 극에서처럼 대놓고 반항하지는 못한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 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 이기 때문이다. 



 군인을 압도하는 작위적 인물 설정은 바로 기자였다. 이 기자는 진실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극 중 대사에서도 "진실이 앞에 있어. 니가 그러고도 기자냐?" 라고 외치는 기자를 보고 오!~ 라는 감탄사 대신 풉~ 이라는 헛웃음이 나온 것은 왜일까? 내 기억 속의 기자란 충격! 경악! 이라는 어구로 언제나 별거 아닌 일을 크게 만들거나 모든 일에 별 도움은 안 되지만 매우 귀찮은 존재, 정작 알아야 할 중요한 사건들은 말하지 않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모든 기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인물의 설정은 작위적일 수도 있다. 현실과 영화는 다른 세계이니까 작위적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진행에서 스토리의 앞 뒤는 작위적이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지구를 쳐들어온 악당이 갑자기 도착하자마자 사람들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감독은 평화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과 없는 빠른 진행으로 스토리는 한번에 작위적이 돼버린다. 영화 용의자에서도 이런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왔다. 왜 그렇게 됐지?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라는 의문에 대답은 없었다. 


 '사필귀정' 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잘잘못은 결국 올바른 길로 간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영화는 모든 스토리의 촉각을 사필귀선에 맞추고 있다. 모든 잘잘못은 결국 선한 길로 간다는 뜻이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뒤틀릴 듯한 작위적인 사필귀선의 스토리는 이 영화를 명작에서 킬링타임용 양산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가 선한 길로 인도하는 목자가 돼버렸다. 주인공인 탈북자를 대북 관련 업무를 하는 대령이 츤츤거리지를 않나 응사에서 삼천포 역할을 맡았던 철천지 원수가 눈물을 흘리지 않나.. 



 여기에 딱 정상적인 캐릭터 하나가 있다. 바로 김실장(조성하)이다. 김실장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속성을 너무 평이하게 잘 나타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돈의 욕심을 너무 잘 연기했다. 돈으로 뇌물을 줘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이제 식상할 정도의 권력 속성이다. 게다가 대북 관련 기관의 준 수장급임에도 탈북자를 빨갱이로 부르는 그 오만함 또한 권력자에 대한 솔직한 묘사일 것이다. 이런 솔직하고 있을 만한 캐릭터를 말도 안 되는 캐릭터들이 응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선으로 통해야 하기 때문일까? 


 결말로 갈수록 스릴러에서 실소를 자아내는 코미디로 바뀌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결말로 이르는 과정마저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탄탄한 인과와 복선이 아닌 뜬금없는 작위성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 작위성의 끝은 선의적이었음에 더욱 거슬렸다. 어떤 악당이나 범죄자라도 결국 세상은 선하며 정의로운 결론에 이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이 영화는 품고 있는 듯하다. 


 시선을 사로잡는 액션씬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영화로서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액션씬과 초반 서스펜스에 취한 사람들만이 이 영화를 끝까지 재밌게 볼 것이다. 하지면 영화의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본 사람은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헛갈릴 것이다. 아마 이번 추석에 방영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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