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이라는 독도의 역사, 독도 폭격의 진실우리 땅이라는 독도의 역사, 독도 폭격의 진실

Posted at 2014. 3. 3. 23:58 | Posted in 리뷰/TV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 에 있다는 독도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그저 우리땅 이라는 것? 한국과 일본은 아주 오랜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다 한가운데 독도가 있다. 일본과 우리의 역사 속에 독도가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당연히 우리 땅이니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무대응 하는 건 하나의 방법이지만 무관심한 것과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이번 3.1절 특집 독도폭격에 대한 다큐는 이런 무지를 한 번 더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3.1 특집 KBS 파노라마 발굴추적 독도폭격, 배후에 일본이 있었다.



 KBS 파노라마에서 독도에 있었던 비극적인 일을 재조명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새들의 고향이라는 그 외로운 섬은 아직도 그 비밀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비밀의 끝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라는 증거였다. 독도 스스로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는 이런 것 때문 아닐까?



 독도 상공에 약 열한 대의 B-29 폭격기가 날아들었다. 이윽고 폭격을 시작했다. 그 근처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들은 모조리 침몰했고, 어부들 또한 죽었다. 


독도는 예로부터 황금어장이었다. 아직 정부도 수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한국의 식량 사정은 열약했다. 그래서 강원도 경상도 울릉도의 어부들은 독도에 며칠씩 묶으며 어업을 했다고 한다. 어업 중 아무런 경고나 소식 없이 폭탄이 투하되었다. 바위 섬이었던 독도도 많이 부서졌고 사람도 죽은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때이다.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 미국의 군정 지배를 받게 된다. 일본은 모든 행정력을 박탈당했음에도 영토 확장 의지를 갖추고 있었다. 역시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고 제국주의를 단 시간에 버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일본의 당시 수상 요시다 시게루 또한 의욕을 가지고 영토 확장을 꿈꾸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의 NEEDS를 알고 있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폭격연습장이 필요했다. 동북아 지역 그러니까 중국 한국 일본이 있는 이곳은 특유의 제트기류와 전자기파의 교란상태가 심했다고 한다. 당시 소비에트와의 견제가 필요했던 미국은 동북아 에서의 원활한 폭격 임무 수행이 필요했고, 그래서 연습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괜찮은 섬이 있다고 로비를 하고 다녔다. 


 예를 들면, 격투선수가 연습할 공간이 필요했다. 옆집의 무라카와는 우리 집 앞마당을 연습장으로 내주었다. 그러면 힘센 격투선수가 우리집 앞마당을 무라카와의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 어이없지만 실제로 일본이 이런 발상을 하고 이런 식으로 전개되도록 로비를 벌였다.




맥아더는 실질적인 일본의 지배자 역할을 하였고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지령을 내렸던 인물이었다. 그 지령은 일명 스케핀이라는 각서의 형태로 하달되었다. 스케핀 677호에서는 이미 맥아더가 일본의 원래 영토를 제외한 울릉도 독도 제주도의 한국 섬들은 한국의 것이라고 명시한 바가 있다. 그러니까 이미 미국은 일본의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맥아더의 의지를 무시하며 일본은 계속 로비를 단행한다. 결국, 연합관사령부는 이런 제국주의의 일본에 철퇴를 내린다. 다음 스캐핀으로 일본의 어선들이 독도 근해에 아예 접근을 못 하도록 접근금지 명령을 내린것이다. 이로 인해 오직 한국의 어선들만이 독도 근해에서 어업을 하였다. 그것은 곧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뜻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 독도를 손에 넣을 가능성을 점점 희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타개책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미국이 폭격연습장을 필요로 하는 것을 일본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은 독도를 미국에게 폭격훈련장으로 허가를 내기 위한 로비 혹은 사기행위를 시작한다. 일본은 '일본의 부속 도서들' 이라는 책자를 배포했다. 내용 중 독도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것은 독도에 대나무가 울창해서이다 라고 했으나 독도에는 대나무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한다. 사기로 시작한 거짓말이 대 국가적인 공상허언증으로 발전한 특이한 사례인 것이다. 당시 한국이 매우 피폐하고 혼란스러운 것을 들어 독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고 하였다. 엄청난 논리적 오류이다. 애초에 자신들의 영토였다면 남이 왜 발전을 못 시킨다고 했을까? 한국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일본의 도쿄를 발전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도쿄는 일본땅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하지만 저런 엉터리 서적들과 끈임없는 로비로 일본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바로 독도를 미국의 폭격훈련장으로 만든 것이다.



 어느 날 몇 대의 폭격기들이 날아와 아무 사전경고도 없이 어선 위로 폭격을 하였다. 무고하고 무고한 어민들이 죽었다. 단지 일본이라는 나라의 야욕을 때문에 해방 이후인데도 불구하고 죽어 나갔다. 이 원통한 죽음 때문이라도 우리는 독도에 대해 알아야 하고 온전한 우리 땅으로의 인식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독도는 우리땅" 이 아닌 진정한 우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우리 땅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이쯤 되면 미국에 대한 원망도 든다. 미국은 당시 폭격 훈련이 절실했다고 한다. 전략적으로 폭격기는 미국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B-29는 문명 게임에도 미국의 특수 유닛으로 나오지 않던가? 그 폭격기를 자유자재로 동북아 상공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관련 훈련이 필수였을 것이다. 



 대낮에 시행된 미국의 폭격 훈련은 참사를 불렀다. 당시 폭격기 리더 역할의 존 깁슨이라는 사람은 폭격 당시 작은 선박을 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폭격은 진행되었다.




 당시 자료에는 미국이 독도를 폭격하기 전에 사전 통보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전 통보를 일본의 민간기관에 한 것이다. 일본의 의도대로 미국은 독도를 일본의 것으로 생각하고 일본에만 통보를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어민들에게는 폭격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폭격으로 인해 어민들의 죽음이 알려지자 한국은 미국에 항의를 했다. 주일미군에 한국이 항의했다. 당시 관내에 248만 원 피해자 유족에서 390여만 원을 배상하고 사과를 하고 폭격을 즉시 중단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죽여놓고 돈 주고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돈 줬으면 됐지 무엇이 모자른가? 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다. 반대로 한국인이 미국에 가서 수류탄을 그 주일미군 가족에게 던진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정말 미안함을 전하며 받았던 돈을 그대로 줘보자. 돈은 돈 대로 뺏기고 아마 사형당할 것이다. 그저 우리는 약한 나라의 약한 서민들로서 과분하다고 생각되는 보상을 받고 입을 닫아준 것뿐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큰 사건 이후에도 일본의 로비는 더욱 가열 차졌다. 애 내는 용감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가끔 헛갈린다. 


 때마침 6.25가 터졌다. 정말 민족의 불운이 아닐 수가 없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미국은 다시 동북아에서의 폭격 훈련장이 필요했다. 잘 보이는 타겟과 주위에 인접 인구가 없는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일본은 다시 폭격지점을 독도로 지정했다. 그리고 연합군은 다시 독도를 폭격 연습장으로 지정하였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연합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연합군의 독도 폭격 훈련 지정은 이미 1년 전 한국정부로부터 신청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의 최대 우방 미국의 어떠한 부탁이라도 들어줘야 했을 것이다. 서울을 폭격훈련장으로 쓰자고 했으면 아마 그것도 승낙했을지.. 모르겠다. 나라의 존폐가 걸린 일 앞에 작고 외로운 섬 하나 아깝다고 할 처지가 안 되었다.



 일본은 현재도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외무성 홈페이지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10개 이유를 달아놓기도 했었다. 그중 위에서 쭉 설명한 미국의 독도 폭격 허가에 대한 구문도 나오는데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곤란했었다. 하지만 이젠 좀 열 받을 것 같다. 그들의 탐욕으로 사람이 죽었다. 엄연히 전쟁에서 패한 패전국의 로비로 국민이 죽은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수탈행위는 도를 넘었다고 전해진다. 놋쇠젓가락 한 개도 남기지 않고 가져가 총알 만드는데 썼다고 한다. 집안에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은 소년을 징용해서 총알받이나 가미카제같은 자살 특공대로 썼다. 소녀를 잡아다가 성 노예로 만들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다. 그런 억울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의 야욕은 무고한 어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어민들의 죽음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크나큰 이유가 될 것이다. 


 2014년 SNS가 사회 소통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스마트폰으로 음식도 사고 영화도 볼 수 있고, 3D 프린터로 사람의 장기까지 1초만 뚝딱 만들 수 있는 이 시대에도 일본은 여전히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에 한국 경찰이 배치되어 치안을 지키고 있고, 주변 어업은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를 증명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독도 폭격 당시에는 정부 수립마저 안 되었던 불안정한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른 만큼 독도가 온전히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정부의 유연하고 완벽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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