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스스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

Posted at 2014. 2. 26. 15:25 | Posted in BLOG/끄적끄적

 아무도 스스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본주의자? 따뜻한 마음? 그런게 아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차갑게 보는 측면이 많음에도 그렇다. 사람은 스스로 죽을 권리와 힘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타인을  스스로 죽게 만들 권리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사람을 스스로 죽게 만들지 않는가? 



 죽고싶어서 죽는사람이 어딧을까? 살기 싫어서 죽는 것이다. 삶이 감당 안될 때 우리는 삶을 떠나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죽음을 신봉하거나 희망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는 거의 100% 확률로 자신의 문제가 아닌 사회에 자신을 더했을 때 나오는 문제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더한 사회라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이 문제라면 애초에 자아가 생기는 유년기에 혼자서 죽음을 결심해야 맞다.


 죽고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딧는가. 살기 싫게 만드는 세상이 잘못이다. 라고 하면 스스로 노력을 안해서 라던가 남의 탓만 한다던가 실체도 없는 사회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알파(a)'적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난 그  사람들을 보면 한 단어만 떠오른다. "당해봐야 안다" 그렇다 그들은 아직 문제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다수이다. 아직 세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등지는 '포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아직 우리는 살아 있으니까. 그래서 자신에게 더했을 때 마이너스인 사회를 바꿀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기하는 사람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다수이기에..


 절대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하여 아사(餓死) 하는 세상과 모든 것이 풍족 하지만 정신적인 혹은 사회적인 비관으로 죽는 것 중 무엇이 비극적인가? 난 후자가 월등하게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비극적인 시대이다. 스스로 죽는 세상의 비극적인 시대를 타고난 나 또한 비극적이다. 아무도 스스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허황된 소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죽는다고 생각한 사람도 허기가 지면 음식 생각이 나고, 변의를 느끼면 화장실을 찾는다. 갈증을 느끼면 물 한잔을 할 수도있고, 이상형의 이성을 보면 반응을 할 수도 있다. 그걸로 살아있는 느낌을 받겠지만 그런 원초적인 기쁨마저 포기하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가끔 스스로 죽는 사람들을 직면하게되면 사람들이 말한다. 죽을 힘을 가지고 살라고. 태어나서 들어 본 헛소리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말이다. 죽는 것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과 좌절이다. 절망으로 인해 無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그 절망을 에너지 삼아 계속 절망을 주는 이 세계를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좀 더 맞자' 라는 말고 무엇이 틀린가?.. 


 오늘도 사람은 스스로 죽을 것이다. 그를 애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왜? 라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하고는 상관없다며 신경 안쓰는 사람도 있고, 장례는 어떻게 치를 건지 궁금한 사업자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사후에 대해 기도해주는 종교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아도 될 세상을 생각하며, 후회하는 사람은 있을까? 가족? 애인? 난 스스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아니 어느정도의 절망은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 죽을 만큼 큰 절망은 없는 세상이 필요하다. 스스로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남은 죽어도 된다는 이기심을 부린다. 그 속에 우리의 절망은 매일 커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아니 지금 절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스스로 죽지 않아도 되는, 죽을 만큼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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