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뽕을 조심해야 하는가?왜 국뽕을 조심해야 하는가?

Posted at 2014. 2. 20. 21:00 | Posted in BLOG/끄적끄적

왜 국뽕을 조심해야 하는가?

 

국뽕이란 무엇인가? 왜 생겨났는가? 왜 필요한가? 국뽕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한국은 국뽕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을까? 국뽕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뽕의 정의 DO YOU KNOW KOREA?

 

 흔히 하위문화로 분류되는 인터넷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신조어가 탄생한다. 그것들은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 논리는 은연중 대중의 솔직함과 편리함이 내재하여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터넷 인프라가 매우 발달하였다. IT 기술이 아니라 인프라이다. 즉,기업에 의한 인터넷 속도가 빠르다는 말이다. 그 빠른 속도를 기반으로 유저들 간 많은 데이터가 쉽게 이동한다. 그 데이터는 불법적인 저작물과 성인물이 대부분이며, 한편에선 엄청난 트래픽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나 포탈이 존재한다. 유명한 여성 커뮤니티의 경우 약 십만에서 삼십만 정도의 회원들이 있고 약 5만 명이 상시 활동한다고 한다. 규모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런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 또한 헤아릴 수 없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라고 했던가?’ 더구나 많은 사람이 모인 커뮤니티는 어떨까? 말 그대로 북새통이다. 그에 따른 신조어나 신개념들이 많이 성립되기도 한다. 그 속에서 탄생한 진리 중 하나가 “국뽕” 이다.


 국뽕의 의미는 국가에 대한 마약이란 뜻이다. (뽕은 마약류인 히로뽕을 뜻한다.) 마치 국가의 위대함이나 우월함이란 약을 자신에게 투여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나타낸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 국뽕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포츠에 관해서는 거의 중독 수준이다. 스포츠를 잘하거나 즐긴다기보다는 경쟁의 도구 혹은 이기고 지는 살얼음판으로 인식한다. 물론 그 속에서 선수들의 실력이 영향을 받을지는 미지수이다. 게다가 잦은 부상과 이유 없는 악플 들에 시달리며, 사생활을 일찍이 접어야 한다. SNS나 블로그는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선수들이 유명한 리그나 큰 경기를 치르며 TV에 나올 때는 그저 국뽕 중독자에게 반사 우월감을 제공하는 하나의 서비스업 종사자일 뿐이다. 같은 사회인도 아니고 인격체도 아니게 된다. 마약 중독자들이 그들의 마약에 관해 부정적이거나 피해를 주는 주체에 관해서는 그 주체가 설사 마약 자체더라도 어떻게든 몰아세우는 것과 같다.


 국뽕의 이중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히스테리 증상을 국민적으로 뿜어낸다고 생각하면 쉽다. 자신의 기분에 맞지 않으면 ‘버럭!’ 한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아도 ‘버럭!’한다. 하지만 그 선수가 그것을 극복하고 한국에서 통용되는 최고 즉 금메달이나 1위를 거머쥐면 아까‘버럭!’ 하였던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이게 당연한 거 아닌가? 못하고 있으면 버럭! 하는 것도, 그러다 잘하면 웃어주는 것도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표현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당신이 바로 국뽕에 심취한 중독자이다. 애초에 버럭 한다고 선수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끼리 험담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한다고 해서 그것의 선수의 몫일까? 그들끼리 좋아하는 것이다. 선수는 신경도 쓰지 않는데 그들끼리 울고 웃는다. 난 그런 상태의 사람들을 어느 병원에 가둬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병원은 꽤 높은 고도에 하얀 병원이었다.

 

국뽕의 기원


 “백군 이겨라!”, “ 청군 이겨라!” 라며 응원하던 운동회에서 승리에 대한 우월감이나 승리에 대한 중독은 없다. 물론 이기면 좋고, 지면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참가하지 않은 계주에서 이겼다고 눈물을 흘리거나 졌다고 욕하고 삿대질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월드컵, 올림픽보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국뽕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주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국가가 커지며,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졌을 무렵일 것으로 생각한다. 국뽕은 역사 속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현상의 우선순위를 바꾸어버린다. 어느 전제주의 왕이나 독재자들이 좋아할 만한 사회현상이다. 사회 부조리나 잘못된 것들에 대해 눈을 돌려주길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국뽕이라는 마약을 제조하여 뿌렸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3S라는 정책을 쓴 독재자 대통령이 있었다. 그중 스포츠(SPORT)는 매우 탁월한 통치 도구였다. 그 즘에서 생겨난 프로야구, 농구, 축구, 씨름들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옆집의 누가 자살했거나, 파산하여 일가족 전체가 숨지거나, 옆 동네 처녀가 납치 강간을 당하거나, 영아가 유기살해 당한 것보다 야구선수의 방어율과 타율이 더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물론 아주 자극적인 사건은 뉴스로써 좋은 ‘흥미’거리이다. 하지만 정기적이지 않고 그 파장 또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보면 스포츠는 일정하고 예측 가능하며 불의를 말하지 않는다. 접근성이 매우 좋다. 거의 마약의 힘을 가졌다. 국내 스포츠는 지역에 대한 뽕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국내 프로 스포츠팀들은 각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그 지역을 대표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이건 그럼 지뽕(지역뽕)인가?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광주시민들의 기아 타이거즈에 대한 사랑 또한 대단하다. 꼭 그 팀들뿐만 아니라 모든 팀은 자신의 지역에서 사랑받는다. 한화 같은 팀을 봐도 그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인지 할 수 있다. 국뽕과 지뽕이 같이 취급되는 것은 둘 다 자신에게 하등 필요 없는 것들이라는 점과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많은 나라 또한 국뽕을 사용한 예가 있다. 바로 나치 독일이 그렇다.독일 나치당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국뽕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사람들을 학살했다. 많은 세월 우리나라를 핍박했던 일본도 그렇다.


 일제강점기의 손기정을 보면 일본 또한 스포츠에 의한 국뽕을 실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군사적, 경제적으로 부족할 것이 없었던 일본이었음에도 조선인을 국제경기에 내보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나라이름을 드높이기 위함이었을까? 당시 일본(지팡구)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마 그건 자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함이다. 자국민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도 아닌 것을 보며 ‘스고이!’를 외쳤을 것이다. 침략자, 수탈자, 착취자, 살인자 라는 더러운 오명은 이성적인 자각에서 온다. 그 자각이 오기 전에 약을 뿌린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독재가 사라진 나라들은 국뽕이 없을까? 아니다 있을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정치적인 문제와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부터 국민들을 잠시 쉬게 만들거나 탈출 시켜야 한다. 그래야 혁명이나,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중들에게 국뽕은 아주 효과적이다. 자신이 파산하고, 가정이 붕괴되도 축구시합의 시원한 골인으로 환호를 지른다. 그 골을 넣은 선수는 이름을 알리고 실력을 보임으로써 가치가 올라간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환호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이득이 있다. 바로 뽕을 얻을 수 있다. 같은 국민, 같은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의 위상은 나에게 이입되거나 나의 자랑이 된다. 그 선수가 오랜 기간 살을 깍는 훈련으로 쟁취한 것을 마치 내가 가진 것 같은 출처 불명의 성취감이 느껴진다. 그 감정을 ‘감동적이다.’ 라고 표현 사람도 많이 있다. 지도자들 또한 이런 현상을 자신이 겪거나 많이 봤을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구타하고 죽이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에 눈을 돌려준다면 그것도 스스로가 알아서 돌려준다면 얼마나 편할까? 지도자가 비리를 저지르든 정치를 막장으로 하던 사람들이 관심 없다면 그만한 직업도 없을 것이다. 몇몇 깨어있는 시민들과 정치 시사에 관심 많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하여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뽕 중독자들로 그들은 쉬이 묻힐 것이다.

 

국뽕의 종류 DO YOU KNOW KIMCHI?

 

국뽕은 비단 스포츠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국뽕은 종류는 무궁무진하며, 그것은 창의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확장 가능하다. 음식도 국뽕의 종류가 될 수 있다. 외국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음식 가지고도 뽕을 뿌린다. “DO YOU KNOW KIMCHI?”  나도 한국 사람으로 김치를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 전통 음식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왜 외국인에게 자꾸 물어보며 검증 받으려 하는 것일까? 한국에 들어온 유명 외국인은 의례 한국의 음식을 꼭 맛봐야 한다. 그 밥상은 아마 비빔밥에 불고기에 김치가 올라올 것이다. 맛이 나쁘다거나 안 좋은 음식이 아님에도 거기에 나는 거부반응이 나온다. 만약 그것을 받아들이는 외국인이 김치가 너무 역겹고, 비빔밥은 개밥같고 불고기도 싫어한다면, 우리 전통이며, 고유의 음식을 싫어한다며 까는 것보다 우리는 그들에게 맞는 음식을 준비해야한다.


 문화에도 국뽕은 적용 가능하다. 바로 싸이의 유명세가 그것이다. 싸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그냥 인기가수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 그는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재미있는 무대를 연출하는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인기는 지금처럼 열광적이지 않았다. 그때의 인기와 지금의 열광은 성격이 다르다. 그는 한국인으로써 유투브 조회 1위를 달성한 세계적 아티스트라며 사람들에게 국뽕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싸이가 생각한 노림수는 아니었겠지만,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스스로 뽕을 맞는다. 마치 “우리나라에 싸이가 유투브 조회수 1등이야. 쩔지? 우리나라 쩔지? 나도 우리나라 국민이야! “ 식이다.


 한국의 문화라며 외국에 많이 알렸던 것은 국악이나 판소리 같은 거였다. 퓨전이라며 각종 악기와 국악기들을 합주하는 이상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유투브 하나로 한국의 문화는 말춤이 되버렸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유구하고 아름다운 문화가 생활에 스며들어있으면 그걸 수출한다거나 알린다거나 해서 돈벌이의 구멍으로 인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국민들도 지루해하는 국악 판소리가 우리의 문화일까? 아니면 어린 여자들을 섭외해서 교육하여 벗기며 노골적인 춤과 노래를 하게하는 것이 우리 문화일까? 우리 생활에 깊숙히 스며들었고, 돈벌이도 되는 노골적인 아이돌문화가 우리의 문화다. 하지만 대놓고 말하거나 분석하기에는 쪽팔린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기에 국뽕은 위장해있다.. 어린 여자들의 노골적인 컨텐츠 보다는 외화도 벌어들이는 한류 컨텐츠로 위장시킨다.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컨텐츠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며 국뽕을 뿌려댈 것이다.


 우리나라의 폐단 중 하나인 교육이 국뽕으로 등장한 적도 있다. 바로 오바마가 ‘한국식 교육이 좋다’ 라고 한데서 비롯된다. 오바마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지는 잘 모르겠다.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실상은 비참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는 사람의 다양성을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한 틀에서 교육하고 수능이라는 틀 맞춤에 들어맞는 순서대로 사람을 평가한다. 원숭이같은 사람과 물고기 같은 사람이 있는데 똑 같은 식량과 시간을 주고‘평등하게’ 산에 오르는 시험을 본다고 가정하자. 조건은 같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산에 오르지 못할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바보인지 알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임에도 주위에서까지 바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획일화된 교육으로 물고기 같은 오류에 빠진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한국 교육인데 오바마는 이것을 칭찬했다. 한국 교육에 열성이었던 우리네 부모들은 열광했다. “미국이 우릴 인정했어! (혹은 돈 많은 나라 미국이 우릴 인정했어!)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교육이 좋데! 우리 아들 딸이 받고 있는 교육이 좋다고 했다고!! 세계 최강국이 말이야!! 아이비리그를 겨냥한 학원은 없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는 대한민국은 돈으로도 국뽕을 실행한다. 분기마다 나오는 각 기업들의 매출 신장 뉴스와 국가의 경상수지 상승 뉴스는 결코 낯설지 않은 뉴스이다. 분명 돈에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그 뉴스를 이해하며 듣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냥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돈을 잘 버는구나 생각할 것이다. 6.25 폐허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대단한 나라 한강의 기적과 한국인의 혼이 살아 숨쉬는 우리나라 좋은나라일까? 뉴스는 천문학적인 공기업 부채와 IMF위기에 버금가는 가계부채, 부실한 한국 경제의 기틀등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고 정말 알아야 될 사실인 것은 필요가 없다. 오직 듣기 좋은 뉴스를 들려준다. 시청률을 위해서 그렇게 그들이 정신차리지 못하게 계속 뽕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IMF 바로 전 날까지도 우리나라 괜찮다는 기사가 나온 한국이다. 경제로 국뽕은 가능하다. 당장 내 지갑 안에 지폐는 커녕 동전도 없지만 나라가 잘 산다는데!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자 수출 대국이라는데! 흐뭇한 양반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

 

국뽕의 장점


굼벵이도 구리는 재주가 있고, 개똥도 약에 쓸 수 있다. 국뽕도 장점이 있을까? 의례 마약류가 그렇듯 국뽕도 마비와 망각을 돕는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고 잔혹하다. 곧 무너질 모래성을 매일 쌓는 절망과 좌절만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 와중에 현실도피와 상황망각을 시켜주는 것이 있다면, 그 달콤함은 상상 이상의 쾌감을 전달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힘들어 한다. 이유도 다채롭고 대부분 해결이 곤란하다. 그 문제를 해결 하는게 어렵다면 피하거나 잊어버리는 것도 확실히 한 방법 이긴하다. 그런 점에서 국뽕은 어느 정도 효용이 있는 실체 없는 마약 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중독성은 끝이 없으며, 형체없는 우월감을 제공하며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는 진짜 마약과 너무나도 닮았다

 

국뽕의 단점 – YOU KNOW JO DOO-SUN?


 스스로 자각하는 행위는 인간의 발전을 촉진시킨다. 하지만 국뽕은 그것을 방해한다. 개인적으로 방해하기도하고, 국가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국뽕은 마치 필터없는 정수기를 쓰는 것과 같다. 어떠한 자각도 용서하지 않는다. 뽕을 맞은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든 국뽕의 대상은 신성하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대우는 그 대상마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국뽕의 직접적인 타격은 오히려 작다. 진짜 문제는 국뽕으로 인해 묻히는 것들이다. 얼마전 경주 마우나 리조트가 무너졌다. 건물 안에는 약 100여명의 대학 신입생들이 오리젠테이션 행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언론에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약 10여명이 죽은 이 사건의 크기는 소치 동계 올림픽에 묻혀 작게만 보인다. 2002월드컵 거의 마지막 터진 서해교전 (제2 연평해전)은 어떤가? 함정 하나가 침몰하고 약 대 여섯명이 전사한 이 교전 또한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했지만 월드컵으로 뽕을 맞을 대로 맞은 국민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난 아닌데?” “내 주위에 다들 안 그랬는데?” 라고 되도 않는 반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득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국뽕은 이상한 가치를 기본으로 한다. 바로 “애국심”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애국심이 중요하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힘을 하나로 모으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갈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애국심은 무엇을 위해 강조하는 걸까? 애국 안 하면 왜 안 되는 걸까? 법에 저촉되는 행위일까? 이 세상에 가치 있는 듯 위장되고 있는 몇몇 사상이나 행위나 정신이 있다. 그 중 하나에 애국심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왜 필요 없느냐! 라며 마치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빙의된 사람들이 상상된다. 반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왜 필요한지 묻고 싶다. 논리적이고 이해가 갈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두루뭉실하지 않게, 사상이나 상식 타령 하지 말고 말이다. 국가는 우리가 예속된 하나의 큰 단체이다. 국가가 국민을 사랑해야지 국민이 국가를 사랑하면 그 형태는 언제나 짝사랑이다. 짝사랑은 고달프며, 결국 짝사랑 상대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매국노나 변절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국뽕 적용사례 DO YOU KNOW YUNA?

 

한국의 경우 매우 적극적인 국뽕 전략을 실시 하고 있다. 그 방법이 매우 조악한대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 유명 헐리우드 스타를 만나고 그 스타보다는 스타가 체험한 한국을 말하길 원한다. 한국을 칭찬해주길 원하고 한국이 자랑하는 인물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길 바란다. 보너스로 한국어로 인사도 한다. “앗뇽하셰요?” 대한민국 전체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주길 원한다. 어린 아이들은 무언가를 했을 때 부모가 칭찬해주길 원한다. 그 무언가를 해낸 성취감보다 부모가 칭찬하는 것을 더 큰 성취로 느끼기도 한다. 그게 한국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싸이의 노래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이상한 영상들이 돌았다. 바로 리액션 비디오이다. 싸이의 노래를 들으며 리액션을 하는 외국인들이 나오는 영상이다. 그들이 즐거워하거나 놀라거나 자지러지는 모습을 우리는 유심히 본다. “봐봐 어때?” 식일까? 그런 영상이 나돌때면 요즘 말로 오글거리는 손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뽕을 꼭 경계하고 조심 해야 할까?

 

 스포츠가 가장 큰 국뽕 마켓이니 스포츠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의 영원한 퀸 “김연아”는 어떤가? 나 또한 그녀의 연기를 매우 좋아하고 기량에는 늘 놀라곤 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선수이다. 그래서 응원하고 아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역시 김연아 선수에게도 국뽕의 어두운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다. 김연아 선수의 기량이 세계 최 정상급은 맞다. 하지만 주치의가 말한 김연아의 상태는 거의 준장애인 상태였다. 그에 관한 자잘한 사연은 잊어버렸지만 은퇴 후 정상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런 사실은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파이팅’ 정도면 귀엽다. ‘소치에서 피겨 금메달을 당연히 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잘하면 평창도 뛸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선수로써 김연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다. 나머지는 김연아가 주는 세계 최정상이라는 우월감이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승리에 대한 집착은 선수라는 개인의 인권이나 지속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 자체가 너무 비인간적이다. 개인이 없는데 국가가 있을 리 없다. 국뽕에 취한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이 국뽕의 희생량이 되면 알아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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