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 사막처럼 한없이 건조한 우리 삶의 경계 (장률, 서정)경계 - 사막처럼 한없이 건조한 우리 삶의 경계 (장률, 서정)

Posted at 2014. 2. 13. 12:25 | Posted in 리뷰/영화

 경계라는 영화를 봤을 사람들은 분명히 지루하다거나 이해가 안 간다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메세지를 숨기거나 왜곡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그런 목적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은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는 흥미롭진 않지만 잔잔한 떨림이 있는 영화였다.





 몽골은 지구본에서 봐도 한반도와는 굉장히 떨어져 있는 나라이다. 초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초원이 점점 사막화돼간다는 절망의 배경을 몽골남자는 스스로 혼자 남아 묘목을 심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막화를 막을 수 있을까? 역부족이다. 하지만 사막화를 저지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위로의 목적이 큰 행위다. 그러던 중 한 모자가 나타난다. 그들은 북한 주민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인스턴트 같은 영화에 길들다보면 이런 대사 별로 없고 감정적인 변곡점도 없고 스릴도 없는 영화가 질리게 느껴질 만하다. 아니면 공부로써 무언가 느끼기 위해 영화를 분석하며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의도하는 깊은 내면 보다는 배우의 절제되었지만 확실한 표현을 보는 것이 옳다.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고, 여자는 그것을 즐기지만, 질투를 느낄 때는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아이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선택을 한다. 어린 나이에 수라의 인생을 거쳐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인신매매단의 등장으로 그들의 안전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완곡하게 보여주는 것이 몽골남자 아닐까? 그는 하루하루 묘목을 심는다. 초원이 사막화된다는 것은 남자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몽골사람들은 초원에서 모든 자양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초원이 모래로 변하는 것은 생존의 불가이다. 인간으로서 삶에 투쟁하는 것. 그것이 남자가 하는 일이었다.



 삶의 투쟁은 북한에서 온 모자도 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몽골까지 그들은 어떻게 왔을까? 그리고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었을까? 보기에 인구밀도가 거의 없는 몽골에서조차 인신매매단이 있었다. 그렇다면 중국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불안요소가 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전에 이미 죽음을 경험한다. 바로 북한 탈출 때 가장이 총에 맞아 죽기 때문이다. 투쟁은 원하는 것을 얻는 행위지만 투쟁으로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은 피로로 인한 달콤한 휴식이 아닐까?


그 휴식을 모자는 몽골의 길 위에서 발견했고, 남자는 기꺼이 찾아온 휴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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