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길 - 죄 많고 불쌍한 그들의 이름, 서민 (전도연, 고수)집으로 가는길 - 죄 많고 불쌍한 그들의 이름, 서민 (전도연, 고수)

Posted at 2014. 2. 10. 22:07 | Posted in 리뷰/영화

 한창 뜨는 영화들의 기세를 보면 이 <집으로 가는길> 이라는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전도연과 고수라는 스타를 기용하고 실화에 가까운 괜찮은 스토리를 가지고도 이 영화가 기대에 못미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흥행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이긴하다. 하지만 이 영화 곧곧에는 상업영화들이 갖춘 여러 요소들이 보였기에 더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김영삼 시절 지금의 '창조경제'와 같은 정체 불명의 정책단어인 "세계화"라는 시대의 우리는 살고 있기에 영화를 봐서 나쁠 것도 없다. 영화로써 극화된 스토리겠지만, 엄연히 실화로써 이 고통을 겪은 사람이 존재하기에 나한테는 생기지 않을 일로 치부할 수가 없다.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말이 싫지 않다. 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 안에서도 굉장히 비매너적일 때가 많다. 그 예를 일일이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은 대륙의 그것과는 차별화되는 고급 민폐문화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권이나 자유가 무시되어야할까? 


 죄가 있다. 바로 못 배운죄, 없는 죄, 속은 죄. 이것도 분명 우리나라 서민들에게는 크나큰 죄이다. 법적으로 벌을 안받더라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벌을 받는다. 그 서민의 가정은 유리조각처럼 부서지고, 그 조각들은 경쟁이나 빈익빈 덕분에 알알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하늘나라로 갈때까지 고통받는다. 



 전도연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엔 경제적 문제였다. 그것이 이득을 위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극중 고수의 일방적인 이쁜사람병 (혹은 착한사람병) 덕분이었다. 고수의 연기가 좋았다. 진심으로 극 중반까지 정신못차리고 사기친 지인을 옹호하는 그의 연기는 나를 빡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서 전도연의 죄가 하나 추가된다. 못배웠으면서 재산도 없고 속았으면서 남편도 잘못 둔 죄. 그 결과는 너무나 고달프고 무거운 형벌이었다. 


 거짓말이 만연하고 사기가 빈번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는 속는 사람도 죄를 짓는 것이다. 속지말아야한다. 속지 않으려면 무관심해지고, 개인주의를 펼쳐야한다. 괜한 온정이나 동정 혹은 인간다움이나 이타주의는 파멸을 불러온다. 부모 형제 자매 친구 지인 가족까지 함부로 믿지 말아야한다. 



 무능하고 또 무능한 가장은 얼마나 불필요한 존재인가? 이 영화의 고수를 보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뭘 믿고 결혼이라는것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을까? 정말 멍청한건지 용기가 충만한건지 나로써는 헛갈렸다. 이 가장이 무능하다고 하는 이유는 비단 경제적 조건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묻지마'보증'을 섯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담보로한 사기에 희생되었는가? 보증에 대한 절규들은 하루이틀도 아니다. 보증이라고 쓰고 파멸이라고 읽는다.


 개인적인 무능만을 탓하기에는 이 영화에선 더욱 악의적인 것이 있다. 바로 정부이다. 정확히는 외교부와 그 소속 공무원들이겠다. 물론 상업 영화인 만큼 관객들의 분노를 극으로 끌어올릴 장치로써 그 공무원들은 뛰어난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연중에 국회의원이라던가 고위직 공무원들을 비리의 온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난 무턱대고 일반화하긴 싫지만 나 역시 그런 경.험.에 의한 인식이 있긴 하다. 그게 사실이든 어느정도 살을 붙였든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는 댓가로 받는 것은 그 사람들이 지키지 못하거나 착취하거나 개무시하는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생기는 것이다. 그 돈을 우리는 '세금' 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감옥에 갇혀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아예 비행기로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 나는 프랑스 감옥이 저렇게 야만적이고 무법천지 일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드라마 프리즌브레이크를 봐도 그런 무법지대같은 느낌은 있었는데. 그에 관한 생각은 보류하더라도, 교도소안에서의 인종차별은 정말 일 것으로 생각된다. 프랑스가 어떤나라인가? 프랑스에도 극우파가 존재한다. 벙커1특강에서 목수정 작가가 한번 언급한걸로 기억하는데. 프랑스의 극우파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한다. 백색우월자들 이겠지? 그런 곳에 절대 소수도 아닌 완벽히 혼자로써 황인종이 갇힌다는 것 게다가 말까지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로 그것은 지옥일 것이다. 


 그런 지옥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라고 파견한 외교관이 대사 혹은 영사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능하지 않았고, 그 서민은 지옥에서 약 2년여를 견뎌야했다. 여기서도 극중 전도연의 죄가 하나 더 추가된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죄. 아니 대한민국의 힘 없는 국민인 죄.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극중 고수가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에게 화를 내다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바로 사과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딱 그 위치가 서민의 자리 나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이 나라 헌법이 버젖이 존재함에도 서민은 언제나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아. 말한다. 선거철에 사람들이 말한다. 하지만 결국 지켜지지않는다. 선거철에 유권자라고 불리는 대다수의 서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지지를 하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표 호러다.



 발단은 무지로 출발했다. 하지만 무지하다고해서 받는 형벌로는 너무도 가혹하다. 그 가혹함 자체가 감독의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그 가혹함은 우리의 공분을 자아내기위한 하나의 도구였을것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공분을 사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실화라도 영화인 이상 극적인 요소를 섞는것으 일반적이다. 차라리 극중 전도연이 감옥에서 병을 얻거나 심각한 외상을 입거나 했을면 어땟을까? 거기에 정부의 안일한 태도도 일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실화가 섞인 영화로써 더욱 큰 공분을 자아내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요즘 은근히 사회고발형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사회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활발한 국가라면 그런 사회고발 미디어들은 호응을 얻는다. 아니, 영화화되기 이전에 호응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란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영화화된다하여도 그리고 그 영화가 상업적 이득이 있음에도 복 날 개잡듯 영화를 잡는 자본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영화속의 서민들도 불쌍하지만 그 영화를 보는 우리라는 서민들도 불쌍한 것이다. 


 법 상으로 죄를 지어 처벌받는것은 합당하고, 필요한 일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하지만 힘 없고, 돈 없고, 지식이 없다고해서 처벌받는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지금은 그렇다. 그것이 상식임에도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서민들의 바램은 언제나 짧고 간단명료하다. 극 중 전도연의 바램은 "집에가고싶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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