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스토리 눈 - 부정인가, 학대인가 쇠사슬 훈육리얼스토리 눈 - 부정인가, 학대인가 쇠사슬 훈육

Posted at 2014. 5. 20. 02:06 | Posted in 리뷰/TV

 급한 산업화 때문일까? 현대화 때문일까? 한국은 꾸준히 출산율이 감소했다. 핵가족화에 따른 자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여럿 낳는 것보다 하나 낳아서 잘 키우자는 식이 되었다. 하나를 낳아서 정성과 관심을 집중하겠다는 생각은 일면 현명하다. 하지만 그 정성과 관심의 방향이 아이를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에 물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장소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짐승 같은 아이를 오냐오냐하며 아무 제지도 안 함은 물론 주위 사람이 아이에게 면박을 주면 오히려 그 사람을 나무란다. 이런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평소 개인적으로 훈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훈육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학대는 반대한다. 훈육의 방법으로 폭력이나 언어폭력은 절대로 지양되어야 한다. 아무리 발라당 까진 아이라도 어릴 때의 학대는 평생 기억하며 지고 가야 하는 짐과 같은 것이다. 어른이 돼서 삐뚤어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아동 학대 피해자이며, 그 사람들이 결국 자기 자식을 다시 학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학대는 절대로 안 된다. 


 손찌검하는 학대 가해자들의 교육방식은 틀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훈육을 이유로 학대하는 것은 진짜 훈육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아이의 탈선에 대한 미움이 커져서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부모 중에 아이에게 손을 댄 적 있는 분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아이의 잘못에 화가 나서 화풀이를 위해 학대를 하지는 않았는지 정말 훈육을 하는 방법으로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리얼스토리 눈' 에서는 학대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을 조명했다. 이것은 부정인가, 학대인가? 라는 제목에서 보듯 가치에 따라 결과가 틀릴 만한 주제이다. 원인을 들여다보고 결국 완벽한 학대라고 결론지었다. 나쁜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학대이다. 







 3m가 넘는 쇠사슬에 결박된 채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한 여중생, 아이에게 쇠사슬을 묶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별별 상상이 다 들면서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하여 약간 지루하기 까지 한 '비정한 아버지'가 생각난다. 






 상습적인 가출에 따른 아버지의 결단이라고 하더라도 쇠사슬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유 없는 학대는 아니었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정당한 것도 아니다. 발 달린 동물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간다. 더군다나 인간도 발 달렸으니까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다. 왜 집을 나가고 싶은지,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겠고, 소통도 힘드니까 아이를 묶어 놓는 것은 학대이다. 묶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소통하지 않은 것도 학대이다. 예측하건대 이 사건이 만약 계속 밝혀지지 않고 흘렀다면, 아마 발목을 자르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에게도 탄성이 존재한다. 억누르고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고 더 반항한다. 훈육은 그 탄성에 맞춰 근본 원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거나, 차단하는 것이 맞다. 계속 '안 된다. 하지 마라.'식의 압박은 결국 아이에게 반발심만 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본 사건에서의 최대 학대는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착했고, 예체능인 발레에 소질이 있었던 딸, 그런 딸을 바다에서 일하며 경제적으로 완벽한 지원을 했던 아빠. 이것도 하나의 학대이다. 두 부모가 없는 아이를 친척에게 맡기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라는 존재가 뻔히 있음에도 항상 외로움에 지치게 한 것은 분명한 학대이다. 


 기러기 아빠라고 불리는 유학생을 둔 부모의 상황과는 다르다. 한 명이라도 부모가 붙어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경제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아이와의 소통도 중요하다. 밖에서 생활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돈과 자식이라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에 대해 학대라고 하는 것이 삶의 무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초딩 같은 생각이라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거친 바다 위에서 일하는 분이 몸이 안 좋은 상황도 아닐 테고, 꼭 그 직업을 고수하면서 생활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돈을 많이 버니까 포기하지 못한 것 아닐까? 많은 돈과 굉장히 중요한 시기의 딸과의 소통 중, 아버지는 돈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것이 학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딸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아버지는 퇴사하고 거처를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많이 늦었다. 







 중앙 아동보호전문기관 장화정 관장이 말하는 학대의 순서는 처음 소리를 지르고, 그다음 위협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를 들며,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고 했다. 수위가 높은 폭력과 그 폭력의 빈도수가 증가한다. 


 원장님도 말하듯 결국 학대는 훈육이 아닌, 부모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학대다. 그것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부모는 훈육이라는 변명으로 매질한 것이 되고, 조절 못 한 부모는 아동 학대라는 명목으로 죗값을 받는 것뿐이다. 한 꺼풀 벗기면, 다 같은 아동 학대범이다.




 '자녀에 대한 훈육은 아이를 먼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이라는 멘트에 매우 공감한다. 아이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소통이 없이 일단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폭력이나 언어로써 비꼬거나 쌍욕을 하는 부모는 일찍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어떨까? 부모의 자격이 오직 아이가 쓰는 양육비를 충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요건에 대해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당신은 부모의 자격이 안 되니, 아이를 낳지 마십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부모가 감정 조절을 못 해서 나오는 학대를 아이는 고스란히 배울 것이고 아이의 아이에게 그대로 전파할 것이다.


 모든 아동 학대는 설사 그 목적이 훈육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설령 아이가 영화에서 본 살인 장면을 따라 했다 하더라도 부모의 잘못이다. 그렇게 방치한 죄이며, 그렇게 행동하기 전에 소통하지 않은 죄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내 새끼 내가 먹이고 입히는데 좀 때리면 안 되나? 라고 말하는 중세 노예 상인의 마인드로 양육을 하시는 분들이 노발대발할 것 같다. 어쩌겠는가. 그런 분들이 아이를 때린다고 해도 전혀 말릴 생각 없으며, 때리다 죽이든 살리든 알 바도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교 선생님에게 '잘못하면 세게 때려주세요.'란 학대 모의를 하는 것이 훌륭한 부모라는 인식까지 있는 나라 아니던가 그저 아이들이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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