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 희망은 왜 가라앉았나? 세월호 침몰 불편한 진실그것이 알고싶다 - 희망은 왜 가라앉았나? 세월호 침몰 불편한 진실

Posted at 2014. 4. 27. 13:23 | Posted in 리뷰/TV

 사고 10일째가 지나가고 있다. 소조기가 끝났으며, 다시 조류는 강해진다고 한다. 날씨마저 안 좋다. 사고가 일어나고 3 일 후 사람들이 말한다. "아마 잘못되지 않았을까? 저체온증이나 식량도 없을 테고.."라는 말을 하면 당신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아느냐고 되묻곤 했다. 그런 불안요소를 이기는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르고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0일이 지난 시점, 그리고 배가 뒤집힌 상태에서 바닥에 안착하고 옆으로 넘어졌다는 점, 무엇보다 벌써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실종자보다 많은 사망자에게 눈을 돌렸다는 점에서 이제 희망이니, 기적이니 하는 말은 무의미하게 퇴색되어 버렸다. 즉 포기하는 순간 실제로 생존자가 있다고 해도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희망은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왜 가라앉았을까? 바로 어른들 때문이다. 배를 소유했던 어른, 배를 운전했던 어른, 배에서 방송했던 어른, 그 배를 감시하고 통제했던 어른, 구조했던 어른, 배의 안전을 검사했던 어른, 검사했던 어른의 어른, 그저 눈물밖에 흘리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애들이 희생되었다. 그 희생양이 어린애들임에 대한민국의 약 300여 명분의 희망도 가라앉았다고 볼 수 있다.


 벌써 세월호 관련 포스팅만 몇 번 째인지..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전히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일단 선장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과 선사가 돈을 밝힌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슬퍼한다는 것.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 또한 보는 내내 슬펐고, 마지막에 가서는 울어버렸다. 딱히 그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드라마적 슬픔이 아닌, 그저 자동반사적인 그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오는 것과 같다. 





 인생에 대체로 단 한 번인 것은 무엇일까? 이때 반드시 '대체로' 혹은 '일반적으로'라는 수식을 붙여야 한다. 어떤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생에 단 한 번인 것, 출생과 1살의 생일, 2살의 생일, 입학과 졸업, 그리고 수학여행 모두 한때이며, 한 번뿐인 추억들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이라는 인생 단 한 번의 추억 만들기에서 불꽃놀이라는 재밌는 경험을 마지막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직 남은 인생에 얼마나 많은 달콤함과 씁쓸함과 행복과 불행이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남은 삶은 그들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몇 명일까? 정부의 오락가락한 숫자인 470여 명 정도일까? 개인적인 생각에는 약 1500여 명 정도가 직접 피해자이다. 그리고 간접 피해자는 약 5천만 명이다. 직접 피해자란 재해를 당한 사람과 그 가족들이며, 간접 피해자는 전 국민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직접과 간접의 피해 수치는 넘사벽이라는 것이다. 


 사고 초기부터 아프리카 티비의 뚫린 안경 님의 생중계와 유스트림의 365일이던가 하는 생중계를 병행해서 보았다.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의 가족들 모습은 직접 비추어 지진 않았으나 끊이지 않는 통곡 소리와 흐느낌만으로 분위기를 통감할 수 있었고 이따금 이어지는 BJ의 상황에 따른 지극히 일반인 다운 반응 또한 충분히 현장감 있었다. 


 현장감 넘치는 개인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체육관 냉골 바닥에 누워 음식도 제대로 안 먹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은 깜깜한 바닷속에서 춥고, 굽고 있다며 눈물지을 때, 난데없이 통곡 소리가 나올 때, 사고 발생 4 일 후 '이제 하겠다. 시도 한다.'라는 어이 없는 말을 듣고도 박수를 칠 때는 눈물마저 났다. 









 아들이 두고 간 휴대폰에서는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 카카오톡을 사용했던 흔적이 있다. '전부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ㅋㅋㅋ, 이따 만나자.'라는 인사에서 느껴지듯 갑작스러운 위기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확인했고, 희망을 내보였다. 저 말 중 가장 슬픈 말은 '이따 만나자.'가 아닐까? 구조 돼서 이따 만나자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휴대폰에 남은 아들과 친구들의 마지막 대화를 보며, 어머니는 이제 확인도 하지 않고, 더는 새로운 이야기도 올라오지 않는 단체 톡방에서 홀로 아들 대신 남아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안전행정부 장관 강병규 씨의 사고 초기 인터뷰이다. '전문요원들이 수색 중이며, 결과는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으며, 자신이 보기에 수색하는 데 날씨나 파고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알고 있듯 구조자 '0'명 이라는 절망으로 장관의 호언장담은 깨졌다.


 당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서기 전이다. 즉 안행부 장관이 사건 총책임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총책임자는 인터뷰와 얼굴도장보다 실제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책임을 지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옳다. 인터뷰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짧게나마 언론의 취재에 응할 수 있다. 그런데 책임자이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의견을 총책임자라는 이름에 맞춰 그대로 말하는 것이 옳을까? 수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희망의 말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럽게 다가올지 정말 몰랐을까? 일단 긍정적인 에너지를 배출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 확고히 하고 싶음이었을까?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방법도 없음에 자신이 보기에 유유자적한 바다 상황이기에 별일 아니라고 느꼈을까? 자신의 자식이 만약 그 배에 있었다면 그런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긍정은 배신한다. 긍정의 배신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지치게 하며, 후에 있을 긍정적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해버린다. 그래서 항상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긍정이나 부정의 감정적인 말보다 있는 사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 관료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가장 감정적이어야 할 피해자 가족이 이성을 찾았고, 언론은 자극적인 오보를 쏟아냈으며, 정부는 처음 은행에 혼자 간 꼬마처럼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안전행정부 장관 강병규 씨의 거취가 궁금해진다.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없고, 사고가 나도 모든 사고에 효율적인 대처가 어렵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국민이 보기에 안전행정부 장관 강병규 씨 이하 정부 사람들의 대처가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 




 검경합동수사본부의 검사는 브릿지 즉 조타실에는 기본적으로 2명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항해 내내 조타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항해사 한 명과 조타수 한 명, 2명 씩 짝을 지어 교대로 배를 운행한다.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배가 지나고 있는 해역이 맹골수도라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른 곳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담당 항해사가 이제 경력이 1년도 되지 않았다면 그런 위험지역은 경험 많은 선장이 동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현직 3등 항해사도 맹골수도를 통과할 때는 원래 조타실에 선장이 있어야 한다고 증언한다. 이는 도의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안전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그간 보도 내용 중 어렴풋이 선원법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이라고도 들은 것 같다.







 사고 당시 조타수는 배를 직접 조종한 사람이다. 조타수는 자신이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조타기 즉 핸들이 유난히 많이 돌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실수한 부분이라고 언급했던 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조타기가 유난히 많이 돌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배를 몰아보기는커녕 탄 적도 별로 없는 나 같은 일반인의 경우 '그게 그럴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평소보다 많이 돌았다.'는 것으로 유추해보면 조타수는 세월호를 처음 조종한 것이 아닐 것이다. 조타기라는 것은 각도에 의한 주입식 핸들일 것이다. 거기에 원하는 각도만큼 운전하면 조타기에 맞춰 배의 키가 움직일 것이고 그 키에 맞춰 배가 방향을 틀 것이다. 


 자동차 운전자가 사고를 낸다고 가정해보자. 그 운전자는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데 평소같이 핸들을 꺾었음에도 바퀴가 더 많이 꺾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석연치 않지만, 기술적인 부분이므로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사건에 따라다니는 몇 가지 수식어가 있다. 몰지각한 선장과 무능한 정부 그리고 윤리 없는 기업이다. 그 윤리 없는 기업의 선두 주자로 급부상한 청해진 해운은 과거 오대양 사건과 연루된 기업가가 만든 세모라는 회사의 자회사이다. 그러니까 안에서도 센 바가지, 바깥에서도 세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번 센 바가지는 어차피 또 센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한다. 이윤추구 과정 중 사람의 목숨이나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한들 아직 문제가 된 적 없다고 하면, 별 상관이 없어진다. 그런 기업에 태클을 거는 것이 바로 정부기관이다. 하지만 세월호를 관리하는 청해진 해운에는 그런 태클이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무리한 증축과 개조가 실행된다. 


 기업 돈 벌자고 시작된 무분별한 탐욕의 결과는 너무도 비극적이다. 아직도 우리 주위엔 기업 돈 벌자고 자행되는 수많은 탐욕의 결과들이 있다. 쉽게 생각해보자. 그 결과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지는 굉장히 유추하기가 쉽다. 그들이 돈을 버는데 왜 우리의 목숨이 담보 되어야 하는가? 그들은 돈이 많고, 우리는 없기 때문이다. 딱 그 이유 하나다. 그게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이며, 우리나라 '어른'들은 모두 그 천민자본주의를 신봉한다. 




 전직 항해사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아마 수긍할 것이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고가 없었다. 하지만 항상 선원들은 불안했다. 그 불안함을 이기고자 과연 기업이 투자를 해야 하는 걸까? 만약 당신이 그 회사의 직원이라면 나 불안하다고 설비에 막대한 투자 집행을 요구할 수 있을까? 아직 이렇다 할 사고도 안 났는데? 난 못할 것 같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약간 당연함을 느끼는 나라이다. 일단 소를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업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다.  


 약 10억짜리 기계가 있다. 언제나 불안하다. 사람이 빨려 들어가 분쇄 당할 것 같고, 자잘한 전기 사고가 잇따른다. 하지만 약 10~20여 분의 중단에 수리만 있을 뿐 대대적인 수리는 신청하지 못한다. 수리에 필요한 돈은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위 같은 상황에서 설비 운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회사를 나와야 할까? 아니면 수리를 신청해야 할까? 파업할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10점) 난 아직도 답을 못 내고 있고, 실제 세월호의 선원들 중 몇몇은 불안한 배로 인해 퇴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일본 도쿄 해양대 와타나베 교수는 침몰 원인이 이미 출발 당시부터 내재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와타나베 교수가 보여준 세월호 실험은 무게중심에 대한 실험이었다. 작은 낚싯배에 얼음을 담은 상자를 놔두고 계속 얼음을 쌓는다. 얼음이 어느 정도 차면 배가 좌우로 흔들린다. 그래도 계속 얼음을 투입한다. 그러면 배가 한쪽으로 기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넘어간다. 세월호에도 얼음의 역할을 하는 화물이 존재했다. 하지만 화물이 계속 늘어난 건 아니다. 


 화물이 배의 무게중심보다 많이 적재되면 배는 넘어간다. (사실)

 화물의 무게를 지탱할 무게중심을 아래로 이끄는 것은 평형수와 연료이다 (사실)

 연료는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며, 평형수는 화물의 과적을 위해 일부 버려서 통제력이 약하다.(사실)


 와타나베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무게중심이었다. 화물은 그대로이다. 그런데 하부의 연료는 계속 없어진다. 당연히 무게중심은 바뀐다. 더군다나 화물을 과적하기 위해 배의 평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마저 일부 버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와타나베 교수의 말을 생각해보자. '이 배는 인천항 출발 당시부터 마치 시한폭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어땠을까? 과연 지금까지 한 번도 세월호에 이만한 과적 화물이나 평형수의 유실 혹은 복원력에 문제가 한 번도 없었을까? 개인적으로 이 배는 인천항에서 출발할 당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장 내일 아침 상륙하는 거대한 태풍이 아닌, 언제라도 고칠 수 있었고, 점검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그 역할을 해야하는 관계 기관과 정부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와타나베 교수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때린다. 정상적이고 상투적이기까지 한 말인데, 왜 이 말이 가슴을 때리는 걸까? 선원들만 제대로 대처했다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을 거란 그의 말이 너무 당연하다. 원래 그랬어야 했다. 그러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일차적인 원인 제공에 있어 선장과 일부 선원에 대한 질책은 당연하다. 


 세월호의 브릿지 즉 조타실이라고 불리는 조정실은 배의 거의 윗부분이었다. 아무리 무게중심이 높아졌다고 해도 브릿지에선 배의 어느 곳보다 빨리 무게중심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빨리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대처나 보고도 없었다. 승객들보다는 선장과 선원들끼리 일단 탈출을 한 것이다. 그들은 확실히 씨맨쉽을 가진 바다 직업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돈만 잘 벌면 되지 윤리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그 윤리가 없어서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몇 명인가? 





 진도 관제센터와 제주 관제센터의 세월호 사건 현장에서의 거리를 한 눈에 보니 세월호에서 제주 관제센터에 신고를 한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정말 미스터리이다. 그리고 구린내를 지울 수가 없다. 왜 그랬을까? 진도 해역에서 일이 났으니 당연히 진도 관제 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굳이 멀리 있는 제주를 택했다. 







 관제센터에서는 진입보고가 없더라도 해역에 진입한 배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배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면 그 배에 이상 유무를 먼저 묻기도 한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장 김형준 경감은 관제구역 내에 160여 석의 많은 선박이 통항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신경 못 썻을까? 배의 침몰에 관한 정보도 결국 관제를 통한 것이 아닌, 침몰하는 배 안의 학생이 119에 신고를 해서 해경에 전달된 것이다. 관제센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관제센터는 필요하다. 관제센터에 저렇게 일하는 사람이 필요할까?


 해경 측에서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말 그대로 바빠서 인원이 넉넉치 않아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현정의 뉴스쇼에 따르면 당시 인근 해역에 인원 400여 명을 태우고 있었던 것은 세월호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 좀 더 유심히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도 VTS의 즉 관제센터에서 귀선, 지금 침몰 중입니까? 라고 물어봤다. 즉 관제 센터에서 선박의 진입과 속도를 알 수 있음에도 이상 징후에 대해 전혀 반응 한다거나 미리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징후에 대한 관리와 대처를 위해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든 진도 VTS와 관제센터 직원들은 직무를 전혀 하지 않았거나 못한 것이다. 만약 관제센터가 제 역할을 정확히 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공허한 후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허한 후회는 원래 그렇게 되게 해야 했을 국가기관의 직무유기가 있기 때문이다. 선장도 나쁘지만, 관제센터도 잘한 것 하나 없는 것 같다.





 선내 방송에서는 익히 알고 있듯 계속 대기를 외쳤다. 이건 그냥 죽으라는 말임에도 그렇다. 그건 이미 널리 알려진 세월호의 병크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는 이런 병크에 딸린 안타까운 사연도 보도했다. 바로 어느 오빠가 희생된 여동생에 남긴 마지막 대화였다. 오빠는 동생에서 방송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아주 상식적이고 교과서적이며, 제일 안전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어느 오빠가 동생이 넘어가는 배에 있는데 '빨리 바다에 뛰어내려!'라고 할까? 아무리 평상시에 많이 다투었더라도 그렇게 안 할 것이다. '방송에서 하라는 대로'라는 말 때문에 결국 죄책감을 가질 오빠는 평생 그 죄책감을 놓기는 힘들 것이다. 


 이게 바로 세월호의 2차 피해이다. 평소에 잘해주지 못한 것, 부족하게 한 것이 죄책감이 되며, 마지막 순간에 구해주지 못한 것도 죄책감이 된다. 배의 한 쪽이 뾰족이 바다에 나와 있을 때 그 안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아이들에게 어떤 손길도 내주지 못한 무능함에 대한 죄책감이 트라우마로 남아 2차 피해를 일으킨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런 무능함을 느끼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전체가 2차 피해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들과 승객들이 절절하게 자신의 위기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리고 있을 때, 선장은 아주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선장의 자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자식이 객실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후회와 망상과 한숨만 점점 늘어간다.





 선장은 승객들에게도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방법은 아직 없다. 하지만 팩트만 보자. 구조된 승객들은 그런 퇴선 방송을 들은 적이 없다. 명령을 아마 마음 속으로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구조된 배 위에서 나와들 보세요. 했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던가 어느 나라에서도 선장이 먼저 탈출했는데 그 선장에 대한 구형은 2000여 년이었다. 이준석 선장의 형기는 얼마나 될까? 왠지 안 봐도 뻔할 것 같은 기분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한다.







 선원의 할 일은 무엇일까? 그저 돈을 받고 사람을 배로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일까? 배가 평소라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가 넘어가는 비상 시에는 좀 다르지 않을까?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고 나 살기도 바쁘다며 그게 맞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게 한국의 표준적인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난 모른다. 내가 할 일 아니다.'라는 변명은 너무도 잘 통한다. 점점 삭막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이 세상은 결국 어른들의 저런 말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기 할 일을 완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할 일이 아닌 것에 선을 긋는 것은 매우 잘한다. 



 물론 진짜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선박의 비상부서 배치표를 보면 비상 시에는 모든 선원이 각자 맡은 바 임무가 있었다. 이 임무를 안 했으므로 할 일은 안 한 것이 된다. 




 세월호 사고에서 펴진 구명보트는 2척이라고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을 객실이 아닌 갑판으로 올려보내고 선원들이 모든 구명보트를 펼쳤다면 어땠을까? 한숨만 늘어간다.





 한 사람이 접근해서 40개 되는 거 펴는 데 2~3분도 안 걸린다는 소리가 왜 이렇게 얄밉게 들리는지 알 수 없다.





 부득이한 사정을 설명하는 자신에게 몰아치는 비난 여론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갑자기 공정방송을 요청한다. 그대로 방송에 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죄가 없다면 진짜 비상 시에 선원은 먼저 탈출해도 되는 것이면 이 방송이 제대로 그대로 나오는지 보고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구속되었을 것이다. 방송을 그대로 내보내더라도 볼 수조차 없는 잘못을 한 걸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까? 아마 방송도 부득이하게 못 볼 것이다.







 회사는 1인당 약 4천 원의 연수비를 썼다. 이 연수에 그나마 안전교육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봐도 적은 돈이다. 한 시간 시급보다 못한 돈이 안전을 위한 교육에 투입됐다. 역시 효과도 그에 상응하게 나타났다.









 항해사는 해기사가 해야 한다. 그러니까 항해에 관해 전문적 교육을 받고 인증을 거쳐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 치과의사도 치대생 졸업생이 해야하고, 판사도 로스쿨 졸업생이 하는 것이 당연하듯 말이다. 그런데 일반 종교단체 같은 지연으로 사람들이 왔다고 한다. 당연히 선박 운행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운전 면허 없는 사람이 차를 운전하는 사고를 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군사독재나 일제시대의 리더처럼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하라면 해! 라는 식의 경영은 결국 대참사를 불러왔다. 남의 회사 어떻게 경영하든 별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면 말이 달라진다. 잡아서 죄를 물어야 함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선박 증축에 관여했고, 그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고에 큰 일조를 한 것이 된다. 




 현직 관제사가 말하는 증언은 매우 흥미로웠다. 교신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것이다. 



 원래 VHF (초단파무선통신)은 FM 방송이므로 거의 휴대폰 라디오 음질만큼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녹음된 내용은 무슨 오래 된 무전기 마냥 찌지직거리고 음질도 상당히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에 대해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소리공학연구소장 배명진 교수가 첨언을 했다. 




 교신 할 때 내용이 없는 구간은 묵음이 될 수가 없다. 작은 전자파 소리가 들려야 한다. 윙~칙~쉭~ 같이 아주 작게라도 그런 대기음이 들려야 하는데 진도 VTS에서 녹음된 것은 대기 상태가 아예 묵음이 돼버린다.  





 컴퓨터 프로그램화로 음파 표시된 녹음 내용을 살펴보면 파장이 이어지다가 급하게 직선이 되는 구간이 나오며 그 직선 구간이 묵음 구간이 된다. 그리고 이런 급격한 묵음은 편집 삭제 구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해경 측에서 세월호와의 교신 내용을 숨기거나 은폐하기 위해 편집하거나 삭제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런 의혹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해줄지 궁금할 따름이다. 






 배명진 교수가 한 가지 더 지적한 부분이 내용 중 울리는 부분에 관한 것이다. 울린다는 것은 메아리로써 에코 효과라고도 불리는데 상식적으로 메아리는 먼저 울리지 못한다. 원음이 나오고 나서 울리는 것이 상식인데 녹음 내용에서는 목소리가 먼저 울린다. 소리나 음향에 관한 전문가의 의견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해경에서 해명해야 하는 부분이겠다.




 이번 사건에 거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해경이다. 너무 무능하게 보이는 이 해난사고 전문 기관은 그 무능의 이유를 유속이나 시계에 떠넘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이유로 구조가 늦어져서 무능하게 보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한다. 무능이란, 소통도 안 되면서 딱히 실리적이지도 못한 그런 스스로 모두를 왕따 시키지만 그에 따른 능력은 안 되는 마치 중 2병 걸린 아웃사이더를 연상시킨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했을지도 모르는 시간 사고 후 2~3일 지날 때까지 갖가지 허가와 승인과 권한으로 구조 작업은 굉장히 늦어졌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걸로 밍기적 거린 것이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만약 그때까지도 선내에 생존자가 있었다면 해경이 죽인 것과 다름없다. 국가기관이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이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죽이려고 죽였다기보다는 일단 그들을 살리기 위해 저기에 대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함량 미달로 죽였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함량 미달이라고 해도 그들의 주머니엔 국민의 세금으로 받은 월급이 들어갈 것이다. 그 월급을 받는 사람이 그 자리에 맞는 일을 하건 말건 말이다.


 군대 가기 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해경 가면 편하다고. 설마 이래서 편한 건 아니겠지 생각해본다. 이 사건 이후로 자신이 해경 출신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일반화 일수도 있다. 오직 하나의 지휘계통을 공유하는 한 조직은 일반화해도 좋다. 예를 들어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북한과 1:1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그 고위 관계자 아래로 외딴 부대 이등병까지 하나의 생각을 한다고 해도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대표나 리더는 중요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에 나온 세 명의 민간잠수부의 이야기만 듣고 민간잠수부 전부 구조작업에서 배제됐다고 말하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구조 작업이 적어도 민,관,군 삼각 형태의 전폭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거부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공짜 자원을 거부할 때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자원이 남아돌아서 지금 구조 현장이 너무 빡빡하거나, 아예 구조를 포기했을 때 아닐까? 현장에 너무 많은 봉사자와 관, 군들의 활동이 있어 거부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안 그랬다면 사람 새끼가 아닐 테니..




 박근혜 대통령도 대참사가 일어난 진도에 방문해 가족들에게 위로와 대책에 대한 말을 전했다. '지금 오늘 여러분들하고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거기에 박근혜 대통령도 포함되는 것이다. 왕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4년 짜리 계약직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총리도 물러났다. 물의를 일으킨 교육부 장관과 몇몇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해수부 장관과 안행부 장관도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사태에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을 못 하게 했으며 비극적인 시국에 알맞지 않은 공직자를 뽑은 박근혜 대통령도 물러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든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 진짜 리더라고 생각한다. 결정과 권한은 갖고 있는데 책임은 없는 사람을 알고 있다. 우리 북쪽에 사는 돼지가 그렇다.


 배가 침몰한 거랑 대통령이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쿨뽕 맞아 헤롱거리는 인두겁을 쓴 것들이 있다. 지금 배가 침몰한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침몰 후 구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가족들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거기 있는 분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가족들과의 약속은 무엇인가? 구조이다. 구조 상황은 어떤가? 제로이다. 그러므로 다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물러나라고 하면, 시민들을 물러나게 할 것이다. 이게 바로 향수에 취해 추억에 취해 나라의 대표를 뽑은 그들 덕분이다. 



 모든 가용세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왜냐면 위에 나온 것처럼 반려된 민간 잠수봉사자들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국민에게 거짓을 보고하고 있는 장면이다. 수색 구조작업에 대한 의혹은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제쳐놓고, 모든 가용세력을 동원은 확실한 거짓말이다. 


 주인에게 거짓말한 하인은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비록 겉으로 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거짓말하는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대우와는 반대로 아마 이런 사람은 영전이라는 특혜를 받을 것이다. 



 수색구조 세력에 대한 설명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함정 173척, 항공기 29대, 잠수요원 532명을 말하는 데 이것은 누적집계라고 한다. 즉 하루의 자원이 아닌, 사건 발생부터 지금까지라는 전제가 있다. 


 '난 밥을 10만 끼니 먹었다.", "난 밥을 30년 동안 10만 끼니 먹었다."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관료사회의 관행은 결국 사람까지 죽이고 말았다.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의 말에 따르는 것이 맞고 그것이 애국이며, 의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가용 인력이 532명이고, 투입 인력이 38명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현장 방문까지 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대통령의 뜻이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조차 들게 한다. 세월호의 길이는 거의 150M이다. 100M 달리기를 연상해보면 500명이 250명씩 양쪽으로 침투한다고 생각해도 아마 자리가 있을 것이다. 자리가 없어서 투입이 안 되었다고 양보하더라도 38명이 적은 숫자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도 한꺼번에 38명이 아니기에 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취재 중에 취재내용을 녹음하는 사복경찰을 발견했다. 경찰은 부정보도에 대한 걱정으로 녹음했다고 한다. 이는 경찰이라고 해도 불법이다. 경찰은 확실히 불법에 대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법에 대한 면제권은 없다. 도둑놈 잡는 경찰이라도 도둑질을 하면 잡혀가는 것이다. 불법녹음도 마찬가지이다.


  홍가혜라는 사람이 MBN에 나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현재 구속 중인 것은 사실이다. 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감시한다는 것일까? 그래서 불법녹음을 한 것일까? 확인 결과 사복 경찰이며, 경찰 신분까지 확인은 가능했으나 경찰 측에선 불법 녹음에 대해서 개인의 일탈이라고 했다. 나왔다! 개인의 일탈. 개인의 일탈이라도 분명히 불법이니 SBS측에서 강하게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서 확인해본 결과 그 사람은 확실히 경찰관이었다. 






 제일 이해가 안 되고 안타까운 게 바로 이 전문 무사 발표이다. 무슨 정보로, 무슨 정신머리로 이런 오보를 알렸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해당 정보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곳이 어떤 기관이든 그 기관은 해체해버려야 한다. 그곳이 국가기관이든 언론이든 해체 해야한다.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는 기관은 살인집단이랑 다를 바가 없다. 





 안행부 장관을 필두로 한 대책본부의 행태는 한숨이 나오다 못해, 혼이 쏙 빠질 만큼 어이없음의 연속이었다. 저런 사람이 굳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전보다는 행정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그 자리에 계시는 거 같았다. 세월호의 탑승인원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한국의 재해에 대한 정보 습득 능력의 단적인 예이다. 


 즉, 정부에서 확인하지 못한 피해자 정보 중 내가 있다면 난 이름도 모르고 죽은 미상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는 국가이며, 무정부 상태는 아니지만, 안전에 관해 무정부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꼭 책임지고 물러났으면 한다. 거기 서 있는 모두.












 한국이 역사적으로 한 번이라도 같은 정권 내에서 환골탈태를 한 적이 있는가? 사즉생의 마음으로 총제적 시스템 개편을 하면 나아질까? 그 총제적 개편에 제일 웃대가리부터 바꾸어야 한다. 어차피 지금 실패의 향기가 스멀스멀한 내각도 그 웃대가리가 직접 하나하나 뽑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장관이나 중요 인사들을 갈아 치우는 걸로 변화는 그칠 것이다. 그리고 빨리 월드컵이 오길 빌 것이다. 


 답답한 정권을 보고 더 답답해진 국민들이 하는 답답한 짓은 촛볼 놀이이다. 숨져 간 아이들에 대한 추모로써 촛불 추모제를 실시하는 것은 찬성한다. 하지만 집회나 시위에 촛불을 사용하며, '이것은 평화적이며, 감동적이고 어두운 밤에 서로를 비추어 주는 뜻깊은 집회랍니다.'라고 힘차고 희망적인 노래 2~3곡에 구호 몇 번 외치고 끝나며, 깨시민 다운 쓰레기 정리까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서로의 죄책감과 후회를 자위해준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힘을 얻는 구조는 언론이 자유로울 때이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의식이 자유롭게 모여들 때 그 파급력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을 보면 촛불집회로는 전혀 답이 나오지 않음에도 이미 국가에 대한 반문의 수단으로 촛불집회에 중독된 국민들은 계속 양초를 사러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위정자들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병신들.."이라며.


 구조 당국 즉 정부가 늑장 대응으로 아이들을 죽였다는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피해자 가족분들을 위시한 국민적인 분노가 형성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액션은? 양초가 팔릴 것이다. 양초가 아닌 벽돌이나 화염병을 들자면 그 분노한 사람들이 갑자기 의연해질 것이다. 그것은 폭력 아닌가요? 그렇다면 국가가 행한 무기력한 구조는 폭력이 아니란 말인가? 폭력 행사자에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엇이 통할까? 


  평화적인 방법을 쓰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뿌리고 최루액을 분사하는데 계속 평화적인 사람들은 여기가 무슨 간디의 땅이라도 되는지 아는 걸까?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도 그렇게 평화롭고 아무도 피흘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촛불과 거기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로 쟁취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평화적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각종 범죄와 이기심이 만발하는 것도 이상하다. 


  정부가 안일한 구조를 했다는 전제하에서 말하는 것으로 적용하지 못 한다. 국가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못 구했을 뿐이다. 그렇자나요?^^ 그래서 벽돌을 들자느니, 화염병을 들자느니 같은 폭력적인 대안은 애초에 필요가 없다. 


그저 아이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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