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의 참상, 탐사 프로그램의 제 몫을 해낸 - 그것이 알고 싶다.형제복지원의 참상, 탐사 프로그램의 제 몫을 해낸 - 그것이 알고 싶다.

Posted at 2014. 3. 23. 13:24 | Posted in 리뷰/TV

 그것이 알고 싶다.가 오랜만에 그것이 알고 싶다. 다운 소재로 찾아왔다. 역시 솔루션이나 감성자극보다는 분노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너무도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마냥 분노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 시청자들이 느끼고 인식할 기회를 준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잊혀진 비극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항상 인식하고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피해자들에겐 보상과 사과를 가해자들에겐 엄벌을 해야 함이 백번 맞으나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 그저 하나의 비극적인 일로 기억 저편에 묻어두는 경우가 많다. 바빠서도 그렇고 그런 일이 너무나 많아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로 많은 사람이 인식했을 것이다. 차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으나 여론에 의제로써 상승시킨 그것이 알고 싶다는 탐사 언론으로써 그 일을 다 한 것이다.



 무차별적인 납치와 폭행 감금과 강제노동은 염전노예와 닮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의한 인권말살의 염전노예와 형제복지원이 다른 점은 국가가 용인한 범죄라는 것이다. 물론 형제복지원 문제도 돈이라는 매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보다 더 크게 봐야 하는 것은 국가가 용인했다는 점이다. 변호인에서 국민이 국가입니다. 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말이다. 저 때는 군사정권이었다. 독재 시절의 인권은 국가를 위해 존속되고 희생되어도 되는 하나의 부품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끔 했다. 


 형제 복지원은 부랑자복지시설이다. 하지만 거기에 끌려간 사람들은 어린이부터 청소년 대학생까지 다양하다. 그들이 과연 부랑자일까? 동생과 함께 어린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박 양은 어두운 트럭 뒤 칸에 실려갔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곳은 어마어마한 철문으로 막힌 건물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이다. 27년 간.



 끌려간 곳에서는 키와 몸무게를 재고 머리를 깎았다. 집단수용시설에서는 언제나 털 관리를 중요시한다. 바로 위생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거주지의 위생을 책임질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는 방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몽둥이찜질은 이유가 없다. 다만, 군기를 잡고 분위기를 생성한다. 이런 배경을 영화에서 본 적 있다.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일본군 포로시설에 갇혀 그곳을 탈출하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이들은 전쟁포로 같은 대접을 받은 것이다. 다만 전쟁을 한 적군이 아니라 저녁 늦게 길을 걸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새벽 5시 기상, 애국가 제창 후 아침 식사 그리고 이어지는 강도 높은 노동, 군 생활을 해봤다면 익숙한 생활 패턴이겠다. 하지만 저런 감금 생활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결부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수용자 중 어린이도 있었다. 어린이에게 새벽 5시 기상은 그 자체로도 곤욕이다. 게다가 식사는 어떤가?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그렇게 열약할 수 없다. 복지사업이라는 핑계로 그들은 사람을 잡아들이고, 마치 가축처럼 이용한 것이다. 


 내가 가축이라고 표현한 것은 실제로 형제복지원은 축사로써 지어졌고, 용도 변경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인터뷰한 박 양은 동생이 맞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그것을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 세상은 오직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같은 곳이 있다면, 추상적으로 말하는 지옥이라는 곳이 그와 같았을까? 당시 어린아이였을 박 양의 동생이 피가 나고 멍이 들도록 맞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 교도소이다. 저 당시 그러니까 1970년대의 교도소에서 교정원에 의해 저런 폭력이 있었을까? 저들은 애초에 죄가 없다. 저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다. 



 픽션보다 논픽션이 최고의 드라마라고 했던가? 가끔 현실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근처에서 사냥하던 무려 검사님이 형제복지원의 실상에 대해 우연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결국 이것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사건화되는 발단이 된다고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선 설명한다. 하지만 실상은 원생들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형제복지원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고도 한다.




형제복지원 원장은 과거 전두환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군인 출신이었다. 그는 복지사업으로 훈장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국가의 보조금은 복지사업을 자본사업으로 변모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 시점부터였을까? 아마 그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보았을 것이다.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납치 감금 폭력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고 강제노동을 시킨다. 약 3천 여명의 공짜 인력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최소한의 비용만 드는 아주 값진 것이었을 것이다. 중세의 노예를 다루는 주인이 된 기분이었을까? 게다가 한 명당 국가보조금까지 나왔다고 한다. 노다지도 이런 노다지가 있을까? 




 형제복지원은 부랑자 복지 시설이다. 하지만 어린이들 같은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을 잡아들인 이유는 돈뿐만이 아니다. 돈은 의욕을 돋우는 하나의 도구였다. 당시는 88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시점이다. 군사 정권의 내무부는 그런 빅이벤트를 앞두고 깨끗한 한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냥하는 거지들과 쓰레기 같은 부랑자들을 청소하고 싶었다. 전국공무원들에게 이런 청소 의지를 피력했다. 공무원들은 국가가 내린 업무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 업무의 결과물들은 형제복지원 같은 시설로 이동하였


 삼청교육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 시책에 앞장서는 공무원들과 할당제, 그리고 그안 에서 벌어지는 과잉달성들의 실체. 지금의 한국을 만들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장년층 중 난 공무원이었고, 나라의 일을 했으며,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라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시와 부산시 사회복지과와 경찰들 모두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 비리 방조는 물론 납치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고 한다. 한 원생의 증언을 따르면 사는 곳을 알려주어 경찰차로 데려다 준다는 해놓고 복지원으로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요즘 부산경찰인가? 경찰서마다 페이스북이나 트워터로 경찰 행정이나 범죄 수사에 관해 많이 알리던데, 이런 역사적 과오를 사과하는 것도 그런 SNS를 쓰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하지 않겠지? 그건 옛날 일이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납치와 감금과 폭행이 있었다. 당연히 성폭행도 엄청나게 많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마치 군대와 같은 내부에서 여성들에게 내려칠 처단은 뻔하디뻔한 것 아닐까? 하지만 그에 관한 피해 사례는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피해자가 없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생존한 피해자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 악몽의 시간으로부터 벌써 20여 년 훌쩍 지나버려 현재의 생활에 그때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컸을 수도 있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500명. 형제복지원에서 죽은 사람의 수라고 한다. 이 정도면 학살이 맞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 수와 맞먹는다. 아니 더 악질이다. 죽은 사람들이 저 정도면 산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과 두려움 또한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각종 위협이 존재하는 무법지대에서 느꼈을 공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대충 방송을 보면 맞아 죽었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기근과 질병과 구타로 인해 사망한 것이다. 인터뷰에서도 나왔듯 원생들은 쥐를 잡아먹으며 그것을 별미라고 할 정도라니 말 다한 것 아닐까?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죽은 시체들은 시체 상태에 따라 암매장되거나 의학 해부실습용으로 한 구당 3~5백만 원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라는 영화에서 기업들이 직원들의 보험을 들어 직원이 죽으면 보험료를 받는 것이 떠올랐다. 인간이 아닌 하나의 부품, 아니 돈으로 본 것이다. 



 형제복지원의 선전물에선 부랑자들에게 교육하고 교육으로 파생된 이윤을 적금을 넣어 사회에 나갈 때 준다고 했다. 당연히 사기라고 생각한다. 노동을 한 것은 사실이고, 그 노동으로 이윤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사회에 나갈 수 없었을 것이고, 남은 소득은 적금의 형태든 현금의 형태든 누군가의 손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돈이 누구의 손에 있었을지는 쉽게 짐작 가능하다.



 국가에 의한 범죄는 당시 사법권까지 무마시켰다. 사법권을 실행했던 검사는 부산지검 즉 윗선의 철수 명령을 받는다. 게다가 당시 부산 시장까지 연락해서 형제복지원장에 대한 구속도 석방을 부탁받았다고 한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 아닐까? 


 가끔 독재를 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가 아닐 때 일어나는 이런 참상들에 대해 자신은 피해자 안되는 면죄부라도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결국, 원장은 기소되었지만 기나긴 공판 끝에 2년 6개월이라는 어이없는 형을 받게 된다. 누가 검찰이 법의 수호자라고 하는가? 누가 평등한 법을 집행하는가? 그들도 같은 범죄자 이다. 3차 항소심 판결문에선 대법에서 감금이 무죄라고 하여 하급심들도 무죄라고 했다. 군사정권의 엄혹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덕분에 가해자는 가해자가 아니게 되었다. 


 이 사건을 현재에 와서 제대로 다시 심판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장을 맡고 초대 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대법관은 특수감금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면서 특수 감금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사람이다. 


 우리는 짓으라면 짓는 개와 같다. 라고 인터뷰한 검사가 생각난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짓으라고 한 명령에 따라 짓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법치는 사라졌고, 인권은 철저하게 유린당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가해자는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재산을 불리고 아주 잘살고 있다. 


 박 원장은 양심적으로 시설운영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뜻밖의 변을 당했다고 했으며 자신도 시대적 상황에 피해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담당 검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그는 2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교회 장로가 되었다. 형제복지원의 이름을 바꿔 다른 사업들을 하였다. 천억 원대의 법인을 소유하고 있다. 교회 장로라서 그럴까? 어떤 종교단체는 그를 옹호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한다. 



 언론이 접근하자 원장의 가족들이 막아선다. 아들이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인권 없나?" 


잔악한 범죄의 중심인물이어도 인권은 있다. 조두순도 있고, 유영철도 인권은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피해받은 수많은 인권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 와중에 가해자는 인권을 부르짖었다. 그런 인권은 아예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의 인권은 언제나 부각된다.



 당시 사망했던 사람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보상은 고사하고 사과도 없었다.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도 없었다. 더 슬픈 건 이미 많은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으나 이렇다 할 여론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방송은 의미가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명실공히 한국 탐사 프로그램의 맹주다. 사람들이 많이 본다. 그래서 어떤 의제를 설정하든 그것이 이슈가 된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다고 하여도 잊혀진 사건, 하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사망자들의 유골은 합동묘역에 있다고 한다. 무연고 처리된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납치되었다. 그러므로 무연고가 아니다. 염전노예의 인생을 빼앗고 강제노동시켜 신안은 뒤숭숭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질타하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제복지원 같은 사건의 한 관계자이자, 원인제공자도 똑같은 질타와 여론의 비판을 받아야 옳다. 바로 당시 군사정권과 그 정권의 머리 '전두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빠라고 부르는 그를 이 사건과 관계시켜 벌을 내릴 수 있을까? 아직도 군사독재의 잔재가 확연히 남아있는 한국에서는 수많은 희생자와 피해자들이 있다 하여도 한 사람의 인권을 부르짖으며 사건을 무마할 공산이 크다. 


 전두환은 말했다. 

"박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 원장 같은 사람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 관련기사


 밤늦게 돌아다녔다. 라는 죄로 납치당해 살해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아직 합당한 죄의 대가를 받지 않은 가해자에 대한 책임은 누구의 것일까? 이미 지나간 일 원통함에 죽은 사람들은 그 원통함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는 서러움까지 더할 것이다. 



 기억을 지우고, 몇 년간 떨어져 살던 가족이 만났다. 남한 내에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민족의 분단을 두고 우리는 큰 재앙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같은 한국에 살면서 이산가족으로 떨어져 있었던 이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복지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반인권적인 이 사건이 20여 년이 지난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증거이다. 



 그냥 끌려온 사람들은 가족과 헤어짐은 물론 인생에서 큰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형제복지원에서 나왔을 때 그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지 못했다. 사회는 그들을 사회인으로 생각했다. 결코, 피해자가 아니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은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 큰 고난을 맞이하였고, 장애를 얻은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장의 아들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벌써 27년이나 지난 사건인데, 라는 말이다. 벌써 27년이 아니라, 이제 27년인 사건이 맞는 것이다. 이제 27년이나 된 사건을 우리는 똑바로 바라보고 책임을 지고, 보상하고, 사과를 받게끔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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