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맛있게 잘 버무려진 영화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관상" 맛있게 잘 버무려진 영화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Posted at 2014. 1. 12. 21:50 | Posted in 리뷰/영화

 어렸을 적 나에겐 삼촌이 있었다.

겨우 유치원생인 나에게 대학생이며 286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고 

안경이 잘 어울렸던 삼촌은 매우 멋지고

아빠 다음으로 힘도 쎄며, 참 편하고 좋은 존재였다.

하지만 역사속, 권력속 친족의 존재는 

먹고 먹히는 존재인것도 사실이다.



관상 (2013)

The Face Reader 
7.6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정보
시대극 | 한국 | 139 분 | 20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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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체적으로 잘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과 극의 재미와 스릴을 더하는 소설 그리고 미신적인 관상이

마치 너무나 죽이 잘맞는 나물들과 밥을 섞어 놓은 비빔밥 같기도하다. 



관상이란 개인적으로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관상학이라고 말하는 일종의 유사과학으로써의 관상을 말하는것이다. 

사람에겐 생긴대로의 관상과 풍겨나오는 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상은 확실히 연구나 공부를 한 사람들이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인상은 볼 줄 안다. 

인상으로 면접에 붙기도 하고, 계약을 성취하기도 한다. 결혼에 골인도 한다. 

그런 믿을 수 없는 관상을 극증 그렇게나 신통하게 맞추던 송강호를 본다.


우리나라 특징이다. 영웅적인 혹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별것없는. 사람

하지만 그 능력으로 하여금 곧 지인을 얻고, 높은 곳에 다다른다. 

결과야 새드엔딩, 해피엔딩으로 감독 취향대로 골라잡아 내놓으면그만인것이다.

그냥 비범한 능력 + 과거가 있으며 현재는 평범한 사람이 

출세하는 것. 그 자체의 설정은 한국의 지리멸렬한 흥행 코드다.


조선시대를 논하는 관상이라는 영화 자체는 혹시 나치당의 요제프 괴벨스를 아는가?

괴벨스가 말한 1% 진실에 99% 거짓을 섞으면

대중들은 더욱 신뢰한다는 말에 부합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극증 쓰인 역사적 사실들은

거짓이 아니다. 

문종 사망 후 단종이 어린나이에 즉위하고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키고 김종서는 죽고

세조가 된다. 라는 건 큰 맥락에서 역사적 팩트이다. 

하지만 그 판에 정말 김내정이라는 관상가가 있었을까? 

그 역사적사실에 송강호을 밀어넣음으로써 극으로써의 가치가 오히려 상승된것으로도 보인다.


역사적 사실이란 결국 김종서와 수양대군에 대한 인식때문이다. 

실제로 극중에서 역사적으로 명사격 이름이 나온건 3명이다.

수양대군, 김종서, 한명회

모두 방송국들 사극에서 환영받는 캐릭터들이다. 

조선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킨 비정하고 날카로운 수양대군은 

많은 서적과 사극에서 자주 회자된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다.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자신의 적 전부를 죽이면 혁명가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하여 사람을 평가할만큼 많이 배우진 못했다.

하지만 수양대군과 극중 민심을 보며 이런생각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성군 앞에선 누구보다 강해지고

폭군 앞에서는 누구보다 순종적이된다. 

사람 봐가면서 대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나보다.

그렇다고 그게 나쁜것인가? 

그렇지 않다. 


절개와 충의가 중요한가. 아니면 자기 한 몸, 가족의 안위가 중요한가.

당연히 후자이다. 

머나멀고 보이지않는 길같은 충의 길보다

쉽고 빠르고 평탄한 배신의 길은 언제나 달콤하다. 

여기서도 감독의 상업적인 노림수랄까.. 그런걸 느꼈다,

흔히 사람들은 충의 길 , 멀고 험한길을 주인공이 이겨내서 큰 승리를 하는것을 바라며

또 그런것에 중독되어 있다. 만약 안그러면 드라마같은 경우 게시판이 폭파된다고 한다. 

찌질함이 그지없다. 사람들은 작품보다 자신의 기분이 중요하다. 

역시나 극중에서 송강호도 그에 따라 행동한다.

중립적이거나 아예 판을 떠나거나 수양의 편을 들수도 있다.

설정인 비범한 관상능력은 이미 수양대군이 왕이 될 것을 눈치채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결국 그 반대가 되어 비참해졌다. 

한낮 관상쟁이가 나라의 왕이 된 수양대군에게 어찌 복수를 하여 권선징악을 실행할까 궁금해졌다.

역시나 거의 마지막 씬에서 한마디의 일침으로 권선징악은 완성된다.


난 문득 수양대군이라는 이름에 아 어디선가 들어봤다라는 느낌과함께

김종서란 이름이 나오자 아. 이것은? 하며 역사를 배우던 중학교때가 떠올랐다.

김종서. 그는 현재의 북쪽의 경계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6진이던가.. 하는걸 만들어서 오랑캐로부터 조선의 국경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내가 알기론 간도지역에도 옛날엔 거의 우리나라처럼 생각했다던데

김종서로 하여금 간도지역을 이국의 땅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쨋든 역사적 실체가 있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집중도가 올랐다. 

이 영화에서 나의 눈을 제일 사로잡은건 조정석이었다. 



이런 저런 드라마로 한두번 보았고 그때마다 주연급연기자였다.

이정재가 비정한 삼촌인 수양대군을 연기했다면

조정석은 멍청하고 한없이 착한 삼촌을 연기했다.

정말 옆에 있으면 명치 한대 쎄게 때리고 싶은 캐릭터이다.

그만큼 조정석의 캐릭터 소화도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갈림길에서 조정석은 극중 복선에 맞게 화로 화를 당한다. 

하지만 그런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기에 무언가 남아있는 느낌이다. 


내가 조정석이었으면 어땟을까?

애초에 배운게 있던 없던, 재산이 있던 없던, 

자신의 누이가 잘못되고 자신은 결혼도 못한채 매형과 조카와 사는상황에서

그야말로 가족은 그 3명 뿐일것이다. 

과거력 때문에 출세도 못하는 조카를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답답함? 불쌍함? 

화가 화를 불렀다. 라고 말하기에 너무 불쌍한 마음과 마음들이 있다.

조카가 다쳤을땐 어떗을까?

나였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든 조카에게 위해를 가한 주체를 알았다면

분명 복수를 할것이다. 

극중 조정석도 그랬다.

오히려 극중 조정석이 우리 일반인의 심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조정석의 연기를 보면

한없이 짜증이 난다.



송강호의 비범한 능력도 없다.

이종석의 급제할 정도의 지혜로움도 없다.

김혜수의 미모도 없다.

이정재의 권력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는 그저 일개 백성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백성이 하는 일마다 꼬였고

그래서 더 답답한것이다. 

만약 조정석이 비범한 검객이었다면 어땟을까?

비록 화가 화를 부르는 일이 난대도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액션으로

그 역시 권선징악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결말이 같아진다면

과연 그때도 나는 극중에서의 그를 답답하다고 생각할까?

아니 오히려 안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비범한 검객이고 비운의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저 화만내고 화만부르는 일개 멍청한 백성의 

운명으로부터의 비운은 그저 그를 답답한 인간 혹은 멍청한 인간으로 보이기 만들었다. 

그것이 조선이란 나라 대부분 사람들의 상황이었음에도..



난 김혜수가 좋다. 가슴이 이뻐서 좋고 얼굴이 이뻐서 좋다.

무엇보다 연기같지 않는 연기를 보는것이 좋다. 

내 기억속에 처음부터 그녀가 그런 연기를 한것은 아니었던거 같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믿고본달까? 

이번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번 영화에선 연기는 좋았지만 캐릭터가 너무 약했달까.. 

그런느낌이 강했다. 그게 각본인지는 몰라도

나로써는 조금 아쉬웠다. 

아니 생각해보면 오히려 항상 그정도 선에서 연기하는 그녀였다.

다음 작품도 기대해 봄직하다.


사람의 생김은 인생을 좌우하지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온 그 흔적들이 얼굴에 묻어나올 순 있다. 

하지만 생김으로써 과거를 알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선다.

그리고 실컷 상처받으며 그의 가시밭길 마음으로 전진해야한다. 

그래서 만난 마음과 마음이 비로써 서로 교감하며

서로를 향해 알아간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관상은 매력있다. 

얼굴을 보는것만으로 사람을 알 수 있다. 

과거와 성향과 성격을 알 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마치 어렸을 적 표준전과을 펼쳐놓고 시험보는 기분일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힘든 인간관계 속에서 한 톨의 상처도 없이

한 사람을 알수있는 능력은 그렇게 경외의 대상이 되는것같다. 


생각해보면 관상은 타인을 알기위함보다 자신을 알기위함이 컷다.

예로부터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관상을 볼때 자신을 봐달라고 하는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바램을 말한다. 

결혼은 언제하냐 취업은 언제하냐 아기는 언제낳냐 돈은 언제 많이 버냐 자식들은 좋은대학가냐 

언제 손주손녀를 볼 수있냐 등등

자신의 얼굴 생김으로 자신의 바램을 알아보려고한다. 

거기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모두 사기라고 생각하는 바

그래서 나는 관상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봤을때 풍기는 인상을 나는 믿는다. 

사람의 눈을 봤을때 피할 수 밖에 없는 살기를 뿜는 사람또한 있다. 

사람의 입을 봤을때 신경 쓰이는 미소를 짓는 사람또한 있다. 

우리는 이미 누구나 관상을 생활에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선입견이라는 크나큰 오해와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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