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스토리 눈 - 층간소음 전쟁, 13층의 수상한 이웃과의 전쟁리얼스토리 눈 - 층간소음 전쟁, 13층의 수상한 이웃과의 전쟁

Posted at 2014. 5. 30. 08:00 | Posted in 리뷰/TV

 온종일 사회에서 시달리다 드디어 방에 들어가 침실에 누웠다. 몸에 힘이 없고, 눈은 스스로 감겼다. 그러다 들리는 소리. 쿵쿵. 불규칙하고 거슬리는 소리가 난다. 계속 난다. 이웃의 소음이다. 이런 층간소음을 당하지 않아 본 사람이 그 고통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 한다. 아마 아파트나 주택 밀집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왜 소음으로 살인이 나는지 일면 이해까지 갈 정도로 고통스럽다. 


 실제 층간소음으로 발생 되는 여러 폭력행위가 있다. 폭행은 물론 각종 모욕과 살인까지 일어났다. 그럼 법적으로 층간소음에 대해 완벽한 통제를 해서 미리 불상사를 방지해야 할 텐데 어쩐지 우리 법은 층간소음에 매우 소극적이다.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면 스스로 해야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쫓아가서 싸워야 하나? 아니면 요리해가서 가져다 바치며, 이해를 구해야 하나? 만약 상습적으로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이웃이 있다면 거기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이사뿐이다. 애초에 이웃에 대한 배려와 인식이 있는 사람은 소음을 내지 않는다. 물론 생활 중에 어쩔 수 없는 소음은 난다. 그런데 새벽에 쿵쿵거리며, 그것도 거의 매일 그러진 않는다. 답은 이사뿐이다. 그런데 억울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사를 가야 하나? 이 시점에 이미 엄청난 정신 소모와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에서의 층간소음은 답이 없다고 해도 말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답이란 소음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뜻한다. 왜 그런 법이 안 만들어지지? 라고 생각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잠깐만, 우리 국회의원님들을 생각해보자. . . 이해가 갈 것이다.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리얼스토리 눈'에서도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취재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소음이 심한 건 알겠는데 이게 방송을 탈 만한 희소성이나 시사성이 있는 내용인지는 의심이 생겼다. 다세대 생활을 하는 사람은 거의 50% 이상 겪고 있을 층간소음이 새로운 뉴스도 아니고, 아주 심한 정도인 것은 확실하지만, 처음 접해서 경악할 내용도 아니었다. 


 하긴, 방송마다 놀라움을 선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내용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이입이다. 내가 저 피해자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참신한 방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해, 부탁, 협박, 폭행, 보복 소음, 고소 등 미봉책만 가득할 것이다. 본 블레기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이 내용을 보며 가끔 소음은 일으키지만, 시원하게 군대용 욕 한번 발사하면 쥐 죽은 듯 조용히 해주는 내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피해자는 옆집 사람이었다. 순간 '옆집 사람이 열 받아서 방송에 제보할 정도면 아랫집은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피해자 최하림 씨는 약 800여 개의 소음 증거를 녹취했다. 그런데 이 증거는 증거도 뭣도 아니다. 그냥 '소음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소음 유/무를 확인하는 자료는 될 수 있으나 어느 정도 심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소음을 측정해주는 업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어서 미약하나마 법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분은 법이 좋아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소음 통계치를 뽑아주는 업체를 찾는 게 우선하여 할 일이다.








 이 사건을 제보한 피해자도 장기간에 걸친 소음에 인한 스트레스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가끔 사람을 극도의 분노에 휩싸이게 한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요즘따라 빈번한 것도 그 증거다. 


 법적으로 확실한 체계를 만들어 그걸로 이사를 명령한다든지, 아니면 구속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살인나는 것보다 이사 가는 게 싸게 막는 방법 아닐까?









 피해 제보자의 옆집은 과도한 소음의 흔적들이 한눈에 보였다. 소음의 이유는 정신과적 기분장애 때문이었다. 그냥 성격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장애가 있었다니 조금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장애는 욕먹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애로 파생되는 피해는 욕먹을 일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다. 어떤 사람이 팔 하나가 없든, 다리 하나가 없든 상관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 앞줄이 빨리 진도를 나가지 않으면 그것은 피해가 되며, 욕먹을 일이 된다. 장애인 인권이나 현실에 대한 경각을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소음 가해자의 담당 정신과 전문의는 확실히 가해자가 작은 자극에도 터지는 듯한 반응을 하며, 다시 뇌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부의 사리판단이 일반인과는 분명히 떨어진다고 했다. 소음을 내는 쪽을 극히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저런 장애가 있다면 소음 원인에 대해서는 약간 이해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안타까운 사연을 제외하고 전체 대한민국의 소음 발생자 중 과연 몇이나 정신병이 있어서 그러는 걸까? 아마 정상인이 다수이지 않을까? 





 피해 제보자의 어머니 김주혜 씨는 성치 않은 몸으로 지금까지 큰 고통을 감내한 듯 보인다. 경찰서는 물론 검찰에도 불러가고,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쿵' 소리 한 번에 실제로 좋지 않은 심장이 영향을 받는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만약 옆집의 소음으로 심장에 무리가 와서 어머니가 사망한다고 해도, 옆집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약한 것은 죄다. 병든 것도 죄다. 가난한 것도 죄다. 한국에서 태어난 자체가 죄다.





 신경정신과 조민석 전문의는 현재 피해 제보자의 상태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의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정부 민원안내콜센터에서 3,0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층간소음 스트레스의 내용은 무려 79%라는 절대다수가 소음에 인해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했다.

 





 일단 방송은 심리상담 치료사를 등장시켜 이웃 간 억지 해피 엔딩을 만든다. 심리 치료사의 마지막 말이 와 닿는다. "서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엄밀히 말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둘을 모아서 서로 노력하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갔다. 피해자가 참 속이 좋았다. 방송이고 나발이고 책상 엎고 성격 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악수까지 한다. 성격이 좋으셨다. 그래서 그간 이웃이 왜 그런 안하무인격의 소음을 남발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갔다. 


 이 엔딩을 보며, '서로 말로 하니 얼마나 좋아. 그래, 사람은 좋은 말로 하면 다 통해. 역시 이웃 간의 정이 아직은 살아있네.'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그냥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한 번씩 써먹는 정신승리법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취재를 해본 결과, 명확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고 단정했을 것이다. 시청자들 보기 좋게 마지막 포장을 한 것이다. 


 이해와 상생의 사회? 서로 양보하는 사회? 다 헛소리다. 피해와 가해가 존재하고 손해와 이익만 있는 세상이다. 심각한 층간소음에 일반적으로 부르는 사람은 심리치료사가 아니다. 변호사나 경찰이다. 오히려 방송은 이런 뜨뜻미지근한 마무리보다 소음 가해자에게 따끔한 형벌이 내려지는 엔딩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게 사회의 섭리 아닌가? 왜 방송에서 그런 걸 안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면 전국의 많은 소음 가해자들이 제 발을 지릴 텐데. 



 서로 배려를 해주는 삶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방송 제보를 할 만한 거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인식과 배려가 생겨서 모두 스스로 조심하는 게 제일 깔끔하고 정상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성숙한 문화와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어도 꼭 한 두 마리의 인두겁을 쓴 짐승은 존재한다. 게다가 한국은 성숙한 문화도 없을 뿐더러 시민의식이라는 평균적인 도덕 수치도 아마 낮을 것이다. 그래서 강제적인 규제와 법이 필요하다.


 인식과 배려를 가지는 게 맞다. 그런데 이 말이 좀 웃긴 모순이 존재한다. 층간 소음이 남에게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하며, 하지 말아야겠다는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애초에 조용하다. 아예 그런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만 층간소음을 일으킨다. 곧 굶어 죽을 사람한테 '음식이 없다면 돈으로 사시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별다를 것 없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좋은 이웃이 있으면, 경험 상 편하다. 그런데 진짜 좋은 이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면 두말없이 신고해서 처벌을 받게 함이 옳다. 사회 전체의 가치가 '정'보다는 이익과 이기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모두 이기적으로 변해서 한 톨의 피해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는 사회가 되면, 아마 층간소음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지금의 한국은 제대로 가는 게 맞다. 모두 자신만 생각하는 세상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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