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노라마 - 실태보고, 한국인의 고독사, 외로움으로 죽는 사람들KBS 파노라마 - 실태보고, 한국인의 고독사, 외로움으로 죽는 사람들

Posted at 2014. 5. 26. 21:44 | Posted in 리뷰/TV

 빠른 경제 성장과 사회에 팽배한 개인주의, 핵가족화와 천민자본주의안에서 슬슬 대두하고 있는 문제 중에 고독사는 그 참혹함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아무 연고도 없다. 죽어서도 찾는 사람이 없는 외로움은 그 자체로 죽음의 고통과 맞닿아있다. 고독사 사례는 날로 늘어날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사람이 죽는 것은 비극이나, 찾는 사람 없이 며칠 간 방치되는 것 때문에 이것이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가족 친지 지인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와 닿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건 그저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고독사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랄까, 영향이라고 한다면 방치된 시신에서 나는 악취를 맡을 것이 걱정될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인은 또 한번 고독하게 훼손된다. 생각보다 한국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일이 아니니까. 상관 없는 사람들. 

 

 사회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도와주지 않는 것은 양심이나 인심이 안 좋은 것일 뿐 범죄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을 보고 아무 감흥 없이 갈 길을 가더라도 죄가 아니다.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자칫 CCTV 같은 것에 찍혀 참고인 조사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인정머리 없는 게 죄가 아니다. 그래서 고독사는 늘어날 것이다.


 잠깐 봐도 '이 양반 고독사하겠네.' 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먹을 것을 주고 담소를 나누자. 그래서 그다음엔? 고독사를 당하는 대부분 사람은 저소득층에 병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저 온정으로 그 사람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사회 복지 시스템은 어떤가 궁금하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시스템은 기초생활수급제와 장애인수급 같은 금전적 도움을 빼면 거의 전무하지 않나? 


 사람들은 복지보다 내 가게 앞에 아스팔트를 새로 까는 것이 더 이득이고, 아파트를 더 짓고, 랜드마크가 들어오길 바란다. 복지는 그다음이다. 아니 정치인들이 당선되기 위해 의례 하는 식상한 용어이다. 힘들게 복지를 성공해봤자, 공치사 거리도 못 된다. 답은 뻔하다. 고독사는 매우 불쌍한 비극일 뿐, 절대 고쳐지지 않는 문제가 될 것이다. 







 죽은 지 5년 만에 발견된 백골 시신 내용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불쌍하지도 않았다. 9겹으로 입은 옷은 추운 겨울밤을 나기 위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수의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옆집, 윗집도 몰랐다. 집이 본인 것이었나? 아니면 사글세로 미리 5년 어치 방값을 냈나? 


 죽어서 5년 동안 발견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웃들이 나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앞만 보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웃에서 누가 출세를 하든, 비극을 맞든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은 그저 에너지 낭비이며, 오지랖일 뿐이다. 이웃들은 그냥 비극적이고 음산한 사고에 불행히 휘말렸다고 느껴졌다. '왜 하필 우리 집 근처에서 죽은 걸까?' 라는 생각을 가진대도 일면 이해가 간다.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괜히 혼자 외롭게 죽어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값 좀 나가는 아파트에서는 자살사고가 나더라도 쉬쉬한다고 한다. 집값이 떨어질까 봐 그런다. 이런 시대이기에 고독사는 민폐다. 정말 안됐지만, 민폐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은 죽어서까지 고독하다. 










 51세 남자는 숨진 지 4일 만에 발견됐다. 임대아파트에서 변사자가 베란다 바닥에 누워 부패한 것을 이웃이 발견했다. 아직 파리가 들끓는다. 술에 취한 채 베란다에 담배를 태우러 갔다가 잠들어 죽었을 것이다. 옆집이 이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언제쯤 시신이 발견됐을까? 









 남자는 안과 장애가 있다. 시력을 잃으면서 생활은 붕괴했을 것이다. 게다가 허리를 다쳤다고 한다. 자살이 아니었다. 사회적 무관심이 그를 죽인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무관심은 이미 일반적으로 남을 대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가 눈이 안 보이든, 몸을 다쳤든, 그래서 끼니도 때우기 어렵든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가 죽어서 이웃이 상관할 일이란 변사체가 되어 벌레가 들끓을 때 그래서 위생상 문제가 생겼을 때, 사체의 악취가 지독할 때 정도이다. 이웃들이 나쁜 게 아니다. 지금이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이다. 














 68세 여자도 숨진 지 4일 만에 발견됐다. 원인불명의 이유로 방바닥에 누운 채 사망했다. 집주인이 아마 방세를 이유로 왕래하던 사회복지사와 함께 발견한 듯하다. 유서를 보면 몸이 안 좋았다는 내용과 보증금으로 집을 치워달라는 내용, 그리고 집주인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계산은 끝났다. 보증금으로 시신과 가재도구 처리는 충분하다. 죽은 여자의 목숨은 200만 원으로 처리되는 무게였다. 















 직업소개서의 상담을 하던 아줌마는 죽은 여자에게 아프더라도 수급자며, 대한민국에 세금을 내니까, 나라에서 돌봐줄 것이란 대답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이 죽으면 세금을 못 받으니까 안타깝긴 하지만 국가가 일일이 나서서 국민을 챙겨야 할 이유는 없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는 도의적인 책임이 있을 수 있으나, 지금까지 그랬듯 여론에 의해 사과를 하거나 무시하며 지나칠 것이다. 




 여자가 죽은 것을 일하던 식당에서도 몰랐던 모양이다. 





 죽은 조순명 씨는 살아오는 내내 고초를 겪은 듯하다. 설움을 받으며 자랐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가정부로 생계를 꾸렸다. 조순명 씨의 유서 말미에는 '나한테 잘해준 여러분들 고마워요.'라고 했다. 여자가 느꼈을 외로움의 깊이는 유서에까지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고독사와 무연고사망이 늘어남에 따라 유품처리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탄생했다.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정부의 생각과도 맞아 떨어진다. 시신 처리까지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처리하지만 망자가 남긴 유품들은 처리가 힘들었다. 이런 업체가 생길 정도면 유품 수습도 못 하는 고독사의 빈도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죽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전 재산은 9천 원이었다. 














 유품 처리업자 정명현 씨는 이 일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전했다. 정리하면 3~4일 동안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듯하다. 사람이 죽은 것으로 하나의 업을 만들어 연명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좋은 마음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런 사회이기에 꼭 필요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다기보다는 찝찝한 감정은 아닐까? 훌훌 털어버리고 그런 감정 안 느끼셔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유품도 처리해주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의 마지막을 처리해주는 것이다. 웃으면서 일해도 별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은 그가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무관심했다. 그나마 유품을 정리하는 사람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유족을 못 찾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변사 사건 담당 박정민 형사는 그런 경우 애를 먹는다고 한다. 












 2013년 무연고 사망자의 자료 총 32,857건을 제작진에서 분석한 결과 완벽한 고독사는 1,717건이었고, 고독사 비스름한 사례는 11,002건이었다. 1년에 만 건 넘는 죽음이 고독사였다는 것이다. 



 고독사는 대도시에서 많이 일어났다. 분석 사례 중 25.45%가 서울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인구가 제일 많기에 그럴 수도 있다.



 고독사 성별 발생비율은 남성이 월등히 앞섰다. 전체 중 73%가 남성이었다. 



 연령별 고독사 발생비율은 50대가 많았다. 


 분석을 기초로 생각하면 대도시에 사는 50대 남성이 주요 고독사 발생 층이다. 50대 남성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국가부도와 재기, 부패와 민망한 문화를 구축한 세대이다. 이제 그들이 고독하게 죽는 것이다. 



 56세 남자는 숨진 지 6일 만에 발견됐다. 변사자는 무직으로 급성 신부전증에 의해 사망했으며, 변사체의 냄새로 이웃이 신고해서 발견됐다. 냄새를 느끼지 못한 이웃은 아직 그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죽은 남자의 현관문은 그가 집에 있을 때 항상 열려 있었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올라간 소년은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20대에는 가정을 이루고 딸도 얻었다. 30대에는 중동 건설 노동자로 일해 제법 돈도 벌었다.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곧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혼도 했다. 정말 너무나 전형적인 중년의 삶이다. 시기를 맞춰보면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그 궤를 같이한다. 그의 간략한 인생을 보면서 OECD의 통계가 생각났다. 


(http://ritlog.tistory.com/315 OECD 통계로 본 한국인의 삶)





 죽은 남자의 지인이 말하는 그의 상태는 만약 그가 죽지 않았을 때 들었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외로움이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딸에 대한 사랑함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성공하지 못한 부모의 절절한 마음을 딸이 알아줄까? 




 자식들은 그의 시체를 포기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이런 식으로 무연고 처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사체포기확인서에 지장을 찍는 자식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여유가 안 되거나 내키지 않으면 아비의 시신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효'같은 건 정말 불필요한 사상이다. 이 시대의 사상은 오직 '돈'이다. 죽기 전에 유산이라도 남겼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바쁜 사람 불러다 기분 나쁜 꼴만 보이는 아비는 그저 죽어버린 생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미납된 건강보험료는 30만 원 정도였다. 미납 월을 보면 많이 쪼들리는 생활을 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고독사 사망률은 노인보다 중장년층이 훨씬 많았다. 







 42세 남자는 숨진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됐다. 변사자는 일주일 전부터 보이지 않았고 옥탑방에서 악취를 풍기며 바닥에 속옷만 입고 부패해 있었다. 








 남자는 당뇨를 앓고 있었지만,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통증을 못 느껴서 상처가 생기면 심해진 상태로 병원을 왔다고 한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대행하는 문정현 씨는 한 번 실수하면, 한 번 망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힘든 세상이라서 이런 무연고 사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앞으로 고독하게 죽어갈 사람들의 명복도 빌어둔다. 그 사람들이 잘못해서가 아닌, 사회의 풍토와 생각들이 그런 죽음을 불러오기에 최적화되고 있기에 이 문제를 가지고 '정치가 잘못됐네, 도덕적 해이가 문제네.' 할 이유도 없다. 그냥 흐름인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에 대해 해결보다는 납득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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