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 신입생 도플갱어, 리플리 증후군의 결말그것이 알고싶다 - 신입생 도플갱어, 리플리 증후군의 결말

Posted at 2014. 4. 13. 17:38 | Posted in 리뷰/TV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시시한 미스터리에서 사회의 담론으로 기승전결을 배치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괜히 국내 최고 탐사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시시하지만, 신기한 범죄가 되고 그 범죄를 단초에 둔 배경은 우리 사회의 비극을 조명했다. 


 더불어 이번 화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낚시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 신입생 엑스맨'은 누구인가








 한 명의 사람이 전국 무려 48개 정도의 대학에 신입생이 되어 오리엔테이션이나 각종 동아리 활동에 참가한다는 별로 관심은 안가지만 신기한 사건으로 방송은 시작했다. 이번 화를 보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취재했을까? 싶을 정도로 초반에는 지루하다. 하지만 지루함을 참고 끝까지 본 보람이 있는 방송이었다. 






 만약 사건의 주인공이 전국 48개 대학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게 동시였다면, 완벽히 미스터리가 될 뻔했다. 당하는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약간 소름이 돋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누가 자신이 입학하지도 않고 실제로 다니지도 않는 대학에 신입생 흉내를 내겠는가? 무언가 커다란 흑막이라든가, 무시무시한 범죄의 향기가 나기도 한다. 


 도플갱어 신입생은 선배들에게 아주 살갑고 편하게 대했다고 한다. 스스럼없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대학이라는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기 제일 좋은 형태일지도 모른다. 쭈뼛쭈뼛 대는거 보다 적극적으로 민폐를 끼치는 편이 사람 간에 벽을 허무는데 더 나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민폐의 정도는 일반 상식을 상회했다. 대학 1학년이나 4학년이나 다 같은 대학생, 즉 학업에 전념하여 경제적 독립권이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다. 선배가 후배 밥 사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그 메뉴도 거의 분식집 정도의 것인 게 보통의 상식이라면 도플갱어는 삼겹살이나 스테이크를 요구했다. 또한, 약 1,2만원의 소액을 빌려 가서 연락이 두절되고 잘 곳을 구걸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칭 사기는 원래 그 사칭하려는 사람의 존재 가치나 직위의 존재 가치가 높을 때 사기 효율이 더 높다. 들키지만 않는다는 전제하에 '내가 대통령이다.' 라는 사칭을 하는 것으로 얼만큼의 경제적 사회적 이득을 편취할 수 있느냐라는 것은 계산이 쉽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은 어떨까? 아무리 명문대라고 하여도 그걸 사칭해서 1, 2만 원과 음식과 잠자리를 취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탐사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큰일일까? 범죄는 확실하나 방송으로 나올만한 일인가? 라는 생각으로 보는 내내 재미없고 지루했다. 




 도플갱어가 그저 찌질한 신입생 사칭 꾼이며, 도가 넘는 민폐 꾼이라는 설정을 계속해서 한다. 그 이유는 도플갱어를 성격에 문제가 있거나 거의 싸이코패스 적인 인물로 상징화하려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우리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겨 줄 반전과 경악할만한 사건의 실체를 봐온 경험 때문에 인터뷰 하나하나의 기재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을 하기 마련이다. 너무도 예상하기 쉬운 흐름으로 방송은 전개된다. 그저 찌질한 신입생 사칭꾼으로 전국의 대학을 돌며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사칭꾼은 약 5년 전부터 계속 그 일을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 대학생 MT나 OT 그리고 동아리 모임 등을 하면 진이 빠질 만큼 힘든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런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몇 가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 중 주로 발현되는 기재 2가지가 의심스럽다. 돈과 성욕이다. MT라는 야외활동 중 주변 사람들의 돈을 훔친다거나 여학생을 어떻게 한다거나 식의 흔해 빠진 스토리를 예상했다. '그저 MT가 좋았어요. 즐기고 싶었어요.' 같은 순수한 생각도 가능성 있지만, 결말은 아마 돈과 성욕에 포커스가 맞춰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가지 그 예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 것은 많은 인터뷰에 참가한 학생들이 그에 대해 '소름끼친다.','이해할 수 없다.' 같은 말만 할 뿐 별다른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신입생이 아닌, 고등학생 흉내도 냈다. 대학생들에게 과외를 의뢰하고 시범과외를 받은 뒤 캔슬하는 형태로 여러 대학생을 만났다. 한 번의 과외 비용이 문제 되겠지만, 이것 또한 강력범죄라고는 볼 수 없다. 과외 의뢰를 받은 학생들도 분명 짜증 나는 일이긴 하지만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소소한 피해자들이 아닌, 직접 현실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도 존재했다. 이준성군은 한 통의 메세지를 받고부터 계속 문자메세지 공격을 받았다. 그 공격은 주로 '학교에 나오지 마라.' 였고 자신이 선배라고 밝혔다. 선배가 후배를 학교 행사에 나오지 마라라는 것을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준성군은 반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협박이었다. 


 수강신청과 시설물 신청, 학생증의 재발급과 주민등록증까지 모두 빼앗기고 있었다. 심지어 준성군의 동기들도 사칭꾼이 진짜 준성군으로 착각하고 2~3일 살 정도였다. 개인의 정보를 도용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온 큰 범죄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도용이 아니라 강탈이라고 생각된다. 


 준성군이 느꼈을 공포는 아마 불특정한 개인으로부터의 공격이 왜 이루어지는지, 또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르면서 오는 공포와 같다.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도 공포지만, 원초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이를 테면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라든가 귀신같은 영혼 같은 것이다. 결국, 준성군은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이 사칭꾼을 리플리 증후군으로 진단했다. 거짓말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거짓이 사실로 인식되는 것, 자신이 만든 가공의 인물이 된 거처럼 진짜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 신정아 사건이 세간을 뒤흔들 때 나온 '공상허언증'과도 궤를 같이하는 이 증후군은 결국, 현실부정으로 마음속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인격장애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1960년 '태양은 가득히'라는 알랭 드롱의 '리플리'역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진짜로 규정하고 현실을 오히려 허구로 믿는다고 한다. '태양은 가득히' 라는 영화에서도 아이비리그 출신이며, 재벌가의 아들 디키 그린피르를 만나며 그런 상류의 삶을 동경하는 리플리가 더 대담한 거짓말로 신분을 위장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을 볼 수 있다. 


 리플리 증후군은 결국 사회적 성취 욕구는 크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사람들이 정신병리학적으로 실행하는 도피 수단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범죄성의 진화로 진단했다. 지금은 단순하고 소소한 사기지만 '바늘 도둑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후에 커질 사태를 우려했다.



 도플갱어의 미니홈피가 나왔다. 방송상 실수인지 아니면 도플갱어라고 칭했던 사칭꾼의 진짜 이름이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김법진의 미니홈피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그리고 참여한 클럽에는 여러 대학교의 학부나 동아리클럽에 가입한 흔적이 남아있다.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던 전국 대학에 걸친 도플갱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도플갱어는 확실히 정신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원인은 학벌에 대한 가정과 사회의 압박에서 발현된 것이었다. 스스로도 학벌에 의해 자신을 다르게 보는 것을 느낀 도플갱어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왔고, 거짓 행동을 하다 보니 결국 그 만족감에 계속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나타난 극도의 민폐 행위와 준성군을 협박한 사실, 소액이지만 돈을 빌려 갚지 않은 것들은 범죄임이 확실하다. 







 그는 대학이 중요했다.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도구의 대학이 아닌, 그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에 유명 대학이 좋았다. 그건 시대가 만들어 낸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는 유독 그 만의 것이 아니다. 아마 대한민국 전 국민이 가지고 있는 병일 것이다. 예전 유머 자료에서 '학교가 달라지면 부인의 코 높이나 유방의 크기가 달라진다.' 라는 이야기 있을 정도로 한국의 학벌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커다란 잣대이다. 그 잣대에서 승리한 나름 명문대의 출신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이 패배자이다. 이 사건은 국가적인 콤플렉스가 결국 개인에게 미치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도플갱어의 아버지가 쓴 글을 보면 그 가정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 스포츠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대입시험에는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있기 마련이고" 라는 글귀에서 알 수 있듯 뼛속 깊이 새겨진 학벌에 대한 갈망은 결국 그의 자식에게 정신병과 범죄자의 꼬리표를 붙이게 하였다. 하지만 이게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 도플갱어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부모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식에게 승리자가 되라고 말한다. 즉 이런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학벌 콤플렉스에 의한 범죄나 미스터리는 계속될 것이다.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는 배움에 대해 큰 열망이 남아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신의 거울삼아 기르다 보니 생겨난 하나의 국민정신병이다. '내 아이만큼은'이라는 모토에 맞게 모두가 명문대에 가길 바랐다. 그 와중에 아이의 정신이 박살 나든 인성이 개 같아지든 그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오히려 도플갱어가 착하게 느껴졌다. 분명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긴 했어도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은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위에서 보듯 사람을 협박할 정도로 리플리 증후군이 심각했음에도 그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꿰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참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착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식의 학벌 콤플렉스로 인한 리플리증후군을 겪는다면? 소소한 범죄뿐만 아니라 희대의 잔혹한 사건이 발현될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그런 발현 가능성이 한국에서는 매우 높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이호분 원장은 그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평을 했다. 오직 학벌로 자신의 대함이 다른 것을 느낀 도플갱어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외로운 사람이 변해서 생긴 괴물이라는 소리이다. 


 중앙대 심리학과 정태연 교수는 도플갱어가 가짜 학벌이 아닌 다른 것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리플리 증후군에 빠져 극단적인 사건이 된 사례도 소개됐다. 31살의 여성이 친한 친구와 아기들을 목 졸라 죽인 것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자신의 사정과는 반대로 항상 풍족하고 화목해 보이는 친구의 가정이 결국 그녀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다. 매우 치밀한 수법으로 그녀는 살인을 감행했다.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 주변에는 결국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전문의의 소견은 소름 돋았다. 굳이 학벌 콤플렉스가 아니라도 이미 우리 주위에는 경제적 생활적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리플리 증후군의 후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사회가 바뀌어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원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 이런 사태들은 벌어질 것이다. 






 심리학자 또한 사회적인 해결이 원론적인 해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허공에 노 젖기 같은 공허한 주장이다. 


 모두가 가치 있는 삶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분명히 천한 직업과 좋은 직업이 있으며 순위까지 매겨져 결혼정보사이트에서 사용한다. 짝짓기도 그런 순위에 맞게 재보고 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만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작게나마 내 주위에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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