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섬노예, 전라도 나쁘다?전라도 섬노예, 전라도 나쁘다?

Posted at 2014. 2. 8. 19:00 | Posted in BLOG/시사사회

 며칠 전, 전라도 섬노예로 살던 사람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는 뉴스가 떳다. 착취와 감금 같은 느낌의 죄를 적용하여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려져 있을 이와같은 사건들도 발본색원하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상한 단어 하나가 끼어든다. 바로 '전라도'이다. 우리나라 섬 분포 중 전라도 지역의 섬들이 많다. 그리고 많은 섬들 중에서 심심찮게 이번 섬노예와 같은 사건이 언론을 타곤 했다. 전라도에서 빈도 수가 높게 일어난 사건이니 '전라도' 라는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는 쪽과 사건과 지역을 붙이는건 맞지만 지명을 붙여야지 도명을 붙이는것은 아니라는 쪽도 있다. 그러니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경우는 경기도살인사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범주의 범죄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 일어나는 장소를 전라도로 국한 할 수 있다면 '전라도' 라는 이름이 들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 전라도 사는 몇몇 분들은 반발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이것이 통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한 이른바 전라도를 까는식'의 말이 아닌 정말 범주로 전라도를 표현한것이다. 



이런 현대판 노예 소식에 나도 처음엔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담담하다. 이미 사례가 있는 범죄이기도 하며, 그 사례라는 것도 이미 10여년전에 방송으로 송출된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다보니 우리 삶도 준 노예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폭력과 감금을 당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상식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노예가 될까? 그 물음에 난 100% 확신에 찬다. 바로 장애인 특히 지적장애인들일 것이다. 저소득인 농가라도 일손은 필요하다. 하지만 촌이나 그 주변에서 값싸고 힘 좋은 노동력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좀 때리면 말 잘듣고 돈없어도 불평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적장애인. 실제로 옛날 어느 시사프로그램에선 몇번인가 이런 현대판 노예사건들을 소개했으며, 그 피해자들 역시 지적장애자들이었다. 딱 이게 우리나라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장애인이 돌봐줄 가족이 없을 경우, 혹은 사회적안전망에 이탈할 경우 우리 사회는 그들을 지하철 앵벌이, 혹은 위와 같은 현대판 노예로 이끌기 때문이다. 수준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닐 수도있다. 그 사회가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안보고 노동력으로 본다는 증거가 아닐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인적없고 노동력이 귀한 시골들일수록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도 은폐가 쉬운 곳일수록 지적장애인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뺏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뺏는다. 뺏기기전에 빼았는다. 라는 식의 물건 취급을 당했을수도 있다.



 노예제도는 고대 융성했던 문명들의 기초가 되었다. 고대 로마제국부터 중세시대를 거쳐 산업시대, 근대까지도 노예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노예는 하나의 자산이었으며 물건이었다. 노예로부터 파생되는 모든것은 그 노예의 주인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예의 모든 불행은 주인에게 손해라는 명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고대 중세에도 노예를 사고 파는 식의 행위가 있었다. 물론 그 노예라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노예는 아니었을 것이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망하거나, 죄를 지었거나, 전쟁에 패했거나.. 여러 이유로 노예라는 물건이 된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분노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죄도 없으며, 자기 앞가림도 못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노예다.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산적이 없다. 그 사람의 노동력은 물론이거니와 인권을 산 적이 없다. 만약 임금을 지불했으면 이건 이슈거리도 무엇도 아니다. 그 노예살이를 하던 사람의 인권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그저 우리의 영향력이 영원히 닿지 않을 곳에서의 자극적인 뉴스에 움직이는 것이다. 그 뉴스거리가 어쩌다보니 현대 사회에서 없어야될 노예에 관한 이야기 였고 우리는 그 노예라는 사람에게 주인이 돈을 안줘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가뒀다거나, 때렸다거나가 아니다. 그런 걸로 일일이 분노하기에 '우리 사회가 그렇게 착하지 않다.' 라고 난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전라도 섬노예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강제적 임금체불> 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 주인 행세를 하는 범죄자가 노예로 부리는 사람에게 돈을 주었고 그 증거 즉 통장이 있다면 범죄가 아니게된다. 지적장애인은 일하면 안되나? 지적장애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닷가에 와서 일하면 안되나? 그에 대한 댓가의 증거를 보여주고 그 증거를 주인이 가지고 있거나 정보 ( 비밀번호와 계좌번호 )만 알고 있어도 이건 범죄이지만 범죄가 아니게 된다. 때렸다? 가뒀다? 난 거기에 대한 증거를 댈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물론 이번 사건처럼 멀쩡한 사람이 그저 카드빛 때문에 잡혀온 거면 그들 스스로 범죄 입증이 가능하다. 애초에 이런사람들을 노예로써 부릴려고 했던 그 치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멍청한건지 대찬건지. 하지만 지적장애자의 경우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게 정말 전라도까기식 사건이 아니라 저 노예살이를 한 사람의 대한 인권유린과 강제노동에 대한 이야기일까? 스스로 생각해본다. 이슈는 이슈마다 그 힘이 틀리다. 어떤 이슈는 강하고 오래 남고 어떤 이슈는 수증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 이슈는 아직까지 강하다. 그런데 새로운 이슈도 아니라는것이 흥미롭다. 물론 악질적인 범죄의 한 유형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이 뉴스를 접할 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 외로 이슈가 되는 것을 보고 은연 중 키워드에 "전라도" 가 들어가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현대판 노예사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 이유가 내가 생각한 이유이든 그냥 원론대로 인권유린과 그 악질적임에 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 타인의 눈물은 그저 물 H20 일 뿐이다 " 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타인의 고통이나 절망은 나에겐 그저 하나의 제스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란 그런 것 아닐까? 라며 철학적인 답을 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질리도록 이와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어렸을 적에 티비로 홍수 발생 지역을 중계하고 있었다. 가재도구들이 떠내려가고 옷과 이불은 다 젖어버리고 물건들이 쓸 수 없게되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저 티비앞에 배 깔고 누워 한손으로는 과자를 집어먹으며 뒤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고 있었다. 타인의 눈물은 나에겐 그저 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 명언에 비추어 봤을 때 그 노예살이를 한 사람의 눈물은 그저 우리에겐 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의 불행을 보고 화를 내거나 분노를 터트릴 거리를 찾았다. 적당하다. 도덕적이다. 인간적이다. 우리는 그런 불의에 분노했으므로 정의롭다. 하지만 여전히 그 노예살이 장본인의 눈물과 우리는 무관하다.


 정작 우리 자신들도 노예살이를 한다. 다만 더 세련되고 집에서 가깝고 모두가 원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노예생활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느 단체나 조직에 노예가 되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나' 라는 인간이 성장하거나 발전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그 단체에서 원하는 노예가 될 수 있는 교육을 시킨다. 흔히 "이것배워봤자 사회에서 안쓰더라" 라는 말이나 생각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쓸 때가 있다. 바로 그 단체에 들어갔을 때이다. 혹은 그 단체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볼때이다. 자본론을 본적은 없지만 그냥 줏어들은 말로는 자본가는 절대적잉여가치의 창출로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다. 라고 알고 있다. 그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아니 오히려 이런 말을 하면 어쩔 수 없다거나, 회사가 발전해야한다거나, 자본론은 빨갱이책이라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게 딱. '노예' 라는 단어에 걸맞는 행동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일명 재벌이라고 불리는 자본가 혹은 굶주리며 작업하는 예술가 같은 극 소수의 사람 뿐이다. 대부분은 직장을 잡거나 사업을 한다. 직장에 다니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이 아닌 자본가가 원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잘못하면 자본가가 정해놓은 벌을 받는다. 작게는 경위서라거나 크게는 감봉 혹은 해임같은거 말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도 작은 자영업은 큰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야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을 받기위해 아부를 떨면서도 하청을 받아서는 단가후려치기를 건뎌내야한다. 


 쭉 이랬으니 앞으로도 이럴것이다.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우리는 이렇게 노예처럼 살것이다. 다만 하급노예냐 최고급노예냐 가 다를뿐이다. 그리고 급에 맞는 노예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최고급 노예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더욱 노예생활에 박차를 가하며 최고급노예가 되기 위한 학원에 아이를 보낼것이다. 아이가 다행히 틀에 맞춰진 공부를 잘한다면 최고급노예가 될 수 있는 이른바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예비사회노예로써 학자금 대출이라는 무시무시한 노예문서를 작성한다. 최고급노예가 되면 그 문서를 약 10년 일해서 갚을 수 있으므로..  난 노동 혁명이라던가 사회대변혁같은 꿈같은 일은 애초에 바라지않는다.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급진적인 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바로 우리 스스로 우리가 노예임을 아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회생활은 힘들다며 스스로의 생명을 갉아 먹는 나날을 보내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나 좋은 젊은 날 되도 않는 스펙 전쟁을 해야하나. 도대체 왜 우리는 아이낳는것이 두려운가? 그렇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나 원인제공자는 무엇인가? 스스로의 처지를 알고 물음을 던져야한다. 이런 과정이 없기에 이 시대가 불행한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저런 미개하고 원시적인 사건을 우리게 투영할 수 있음을. 우리도 노동자라는 이름하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반 다르지 않는 운명임을 깨달았으면한다.


 전라도 섬노예 사건이라고 통칭되는 이 사건의 가해자는 범죄자이다. 처벌받아야한다. 차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섬노예 사건에 휘말려 극적을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해피엔딩이었으면 하지만.. 다시 노예생활이나 다름없는 노동을 해야할 것이다. 전라도 섬노예 사건은 반인권적이고, 미개한 노동인식에서 파생된 범죄이다. 전라도 전역의 섬에서 일어나 '전라도'라는 수식을 붙이지만 결코 전라도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겠다. 전라도가 나쁜게 아니다. 전라도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이고, 나쁜 것은 우리 사회이며, 우리 인식이며,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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