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스토리 눈 - 2살 아기 학대한 아동 돌보미, 멍과 상처로 얼룩진 무관심리얼스토리 눈 - 2살 아기 학대한 아동 돌보미, 멍과 상처로 얼룩진 무관심

Posted at 2014. 5. 27. 04:42 | Posted in 리뷰/TV

 리얼스토리 눈에서 아동 학대에 대한 사례를 조명했다. 다른 범죄에 비해 아동 학대는 그 참혹함이 배 이상이다. 하지만 심심치 않게 신문을 장식하는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사건들은 어느덧 학대에 대해 점점 경각을 잃게 만들 정도다. 아무리 충격적이라 하더라도 계속 접하면 둔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아동 학대 사건도 하나같이 그렇게 잔인하다. 본 블레기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칠곡계모사건이 그랬듯 이 사건도 무관심과 돈이라는 매개가 있었다. 칠곡사건에서도 '놀다가 다친 줄 알았지.' 라며 자신의 무고를 밝히던 이웃들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그 상처와 멍이 때려서 생긴 거예요?' 라며 애써 자신의 무관심을 증명하려는 어린이집 선생이 등장한다. 만약 관심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2살인 아이는 조금 더 빨리 고통에서 해방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오지랖 넓은 관심은 없었으며, 아이는 결국 범행을 하던 가해자의 멍청한 실수로 인해 고통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가해자가 조금 더 치밀했으면 어땠을까? 장담컨대, 아이는 죽었을 것이다. 그럼 이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 사람들은 '잊지 않을게' 혹은 '가해자 사형'을 부르짖겠지? 그 사람들이 공약에 한 줄이라도 '아동복지'를 쓴 후보에 투표할지는 미지수이다. 세상을 가장 쉽게 바꾸는 방법은 시위나 탄원이나 자해가 아니다. 투표다. 물론 그것도 공정한 투표여야겠지만..




 무려 1시간 이상 차 안에 방치된 2살 아기를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한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119 구조대가 출발했고, 문을 개방해서 본 아이는 얼굴과 다리, 등에 멍 자국이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아이가 당한 학대를 세상이 알게 된다. 


 생각보다 심한 상해를 입힌 가해자는 둘 중 하나다. 멍청해서 차 안에 아이를 놔둬도 아무도 발견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가, 아니면 그렇게 때린 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이코패스라거나. 










 멍도 색깔별로 경과 시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아이가 전신에 걸쳐 입고 있던 멍의 색깔은 모든 멍의 종류가 다 있었다. 그러니까 최근에 폭행당한 것과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맞아온 것이다. 멍과 더불어 화상도 있었다. 치료는 이루어졌다고 의사는 말하지만, 딱지가 진 시점에서 흉터는 생길 것이다. 겨우 2살인 아이에게 평생에 걸쳐 되새겨야 하는 상처를 입힌 것이다. 






 멍과 화상은 흉터와 상처를 남기겠지만, 성장하는 데 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장판을 포함한 팔도 골절되었다. 의사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만약 잘못 돼서 팔에 이상이 생기면 이것은 흉터와는 개념이 다른 평생 장애이다. 







 아이가 주차장 차 안에서 갇혀있던 걸 목격한 주민들은 차 주인이 돌보미였으며, 아주 태연했다고 말한다. 아이의 상처를 묻자 돌보미는 못 걸어서 그런다고 말한다. 물론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중에 넘어져 다칠 확률은 있다. 그런데 멍이 들 정도의 상처가 온몸에 걸쳐 생길 정도로 아이의 걸음마는 격렬하지 않다. 





 돌보미의 차에 아이가 갇혀 있었던 이유는 돌보미가 방문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돌보미는 아기를 돌봐주는 동시에 학습지 교사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34세의 아동 학대 돌보미 신지은 씨는 피해 아동의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한사코 결백을 주장했다. 아이를 사랑했으며, 아이와의 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돌보미는 주로 아이를 상대하는 방문학습지 교사이자, 두 딸을 둔 엄마였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이는 그렇게 죽도록 팬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해서 겉만 보고 아이를 잘 돌볼 것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학대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이를 낳아서 충분히 돌보지 못할 거면 당장 편의점으로 가자. 향까지 좋은 피임구들이 널렸다. 서로 고생하지 말고 제발 좋은 일에 돌보지 못할 거면 아예 낳지 말자. 좋은 돌보미를 찾아도 된다. 하지만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완전히 운 아닌가. 운에 아이의 시간을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당장 편의점으로 가자. 아니 비뇨기과에 가자. 자식을 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돌보미 회사 동료가 말하는 그녀가 아이를 차에 가둔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학습지 스케쥴을 빼기 어려웠고, 아기를 어린이집에서도 못 봐준다고 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아이를 차에 감금하고 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습지 교사가 말한 잠깐의 수업은 약 1시간 30분이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아이들의 잠자는 시간 10시간을 빼면 14시간이다. 하루의 활동하는 시간 중 1/14이 잠깐이라는 건가? 일에 대한 책임감도 좋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추는 상식은 지키는 게 맞지 않을까? 상식 없는 책임감은 민폐며, 무지다. 









 현재 29살인 아기의 아버지는 26살에 인터넷으로 만난 애 엄마와 아이를 가졌다. 엄마는 집을 나갔다. 아빠는 일해야 했다. 주야 2교대로 공장에서 일하는 듯하다. 당연히 아이를 돌볼 시간은 없다. 아이 엄마는 어린 나이에 맞게 답답함과 경제적 빈곤이 싫었을 것이다. 오직 쾌락에 의해 세상 빛을 본 아이는 시작부터 부모 한쪽이 없다. 확대해석이지만, 이것도 아동학대다. 책임지지 못 할 것을 알면서 혹은 아이를 진심으로 원한 것이 아닌 어쩌다 생겼으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에게 학대라고 생각한다. 


 단칸방에 살면서도 부부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태어난 아이는 행복하다. 재벌 집 자식이라도 원치 않게 자식을 갖게 되면 빛을 보기 전에 사지가 찢기던지, 낳아도 온갖 설움을 받으며 자란다. 콘돔은 능력이 없거나, 사랑이 없는 남녀 사이에 필수품이다.







 직장 동료의 아내가 아이를 봐준다고 했을 때는 정말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냅다 맡겼는데 그 이후 아기 몸에 멍 자국이 발견된다. 정말 궁금한 것은 아이 아빠가 왜 이 시점에 별다른 조치를 안 취했는지 이다. 걸음마 중 생긴 상처라는 변명이 딸을 보는 아빠의 부정을 막을 정도로 논리적 변명일까? 아마 아쉬운 처지에서 나온 학대의 용인은 아니었을까? 







 사진으로만 봐도 저건 맞은 거다. 눈 두 덩이에 저렇게 시퍼런 멍을 보고도 걷다가 다쳤다는 말을 믿는다는 게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다. 안구가 저렇게 멍들려면 정말 풀 스윙의 주먹으로 맞아야 한다. 학교 다닐 때 망나니짓 좀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저런 멍이 들게 맞은 사람은 뇌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는다. 더군다나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하지 못했으므로 맞고 나서 바닥에 뒹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맞는 당시에는 잠깐 눈앞이 컴컴해지기도 한다. 아이 아빠는 정말 몰랐을까? 적어도 한 달은 갔을 아이의 멍을 정말 못 봤을까? 


 세상에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온갖 추악한 범죄가 아이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서 부모가 필요하다. 위협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지킬 부모의 관심은 이 사건을 보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모두 부모님께 감사드리자

 




 돌보미는 아빠에게 양육비와 치료비를 받았다. 여기서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 많은 멍 자국들에 대한 의문이 약간은 풀린다. 아이가 다치는 데 치료비를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아이의 상처에 대해 속아주는 건지, 아니면 정말 속는 건지 별 의심이 없다. 아이가 다치면 다칠수록 돈을 벌 수 있다. 두 딸과 하루 수차례의 학습지 출장으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아주 좋은 먹잇감이 아니었을까? 





 영양제는 챙겨 먹였다던 돌보미는 아이의 상처에 대해선 관대했나 보다. 






 아이의 건강검진에선 빈혈과 영양실조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발육지연이 진단됐다. 영양제를 먹였다던 돌보미의 말에 심한 의구심이 생긴다.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의 상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인지한 다음에 조치는 없었다. 









 재희(가명)가 다녔던 어린이집 선생님은 때렸다는 의심이 안 들었다고 한다. 얼굴 보면 때려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고 했다. 누가 봐도 때린 상처다. 설사 때린 것 같지 않은 상처라고 하여도 상처가 심하며, 계속 멍이 들면 당연히 의심하는 게 상식적 아닐까?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건 알겠지만, 되도 않은 변명으로 일관하는 어린이집을 보면서 역시 보육원도 운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보미는 구속됐다. 차 안에 감금한 것은 인정했지만, 폭행 사실은 부인했었는데 차의 블랙박스에 폭행 기록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친부 돌보미의 학대를 묵인한 죄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그리고 병원과 어린이집도 신고의무 불이행이 확인되면 관할구청에 통보를 한다고 한다. 


 이걸로 끝일까? 예상컨대, 아이는 아마 장애가 생길 것이다. 신체적 장애는 물론 정신적 장애까지 동반한 심각한 상태가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몇 년 살다 나오길 작정하면 어떤 아이라도 장애인을 만들 수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이가 고통받을 시간만큼 죗값을 치러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린이집은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관심을 가지고 아이에게 유익한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인생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그러므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어린이집은 존속할 이유가 없다. 친부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리고 바쁜 건 알겠지만, 한국에 아기를 책임질 기관이 있다면 부모 딱지 때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가 학대를 용인해서이며, 앞으로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 아닌가? 그렇게 양육해봤자, 아이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한국에 그런 양육기관은 비참한 인생을 보장하는 고아원 정도라고 알고 있다. 







 광주지방경찰청 성폭력수사대 조윤희 대장은 학습지 교육으로 아이를 차에 방치한 것만 55회라고 밝혔다. 그냥 방치한 것이다. 방치만 해도 양육비가 자동으로 나온다. 얼마나 편한 ATM인가? 









 때렸다. 




 후안무치의 끝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때려놓고 어느 정도 심한지, 어떻게 심한지 되묻는 것을 보고 문득 저 돌보미의 두 딸이 생각났다. 지새끼는 이뻐했을지도 모르지만, 모르는 일이다.









 신경정신과 손석한 전문의는 학대 돌보미가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아이에게 화풀이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돌보미도 아이를 떠맡고 나서 훨씬 더 힘든 상황이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에도 육아를 취소하지 않은 것은 수입 때문이었을 걸로 봤다. 그러니까 결국 아빠의 무관심 함에 이 사건은 초래된 것이다. 








 몸의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된 것 같은 아이는 영락없는 재롱둥이, 귀염둥이였다. 저런 아이를 그렇게 때린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건 용서해선 안 된다. 






 재희의 아버지 박선우 씨는 아이의 부러진 팔을 치료하러 병원에 가면서 '힘들다. 같이 죽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왜 죄 없고 안 그대로 힘든 아이를 죽이려는지 이해가 안 갔다. 굳이 아빠 없어도 아이는 생존할 수 있다. 비참하긴 하지만 고아원이 존재한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아이는 끌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 간다. 대부분 생활고를 이유로 자식과 동반자살하는 부모들은 일단 살인자이다. 죽었기에 그 죗값을 묻지 않을 뿐이다. 


 입장 바꿔놓고 누구한테 몇 달 동안 흠씬 두들겨 맞고 겨우 탈출했는데, 그런 그를 보고 부모가 힘들다며 같이 죽자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부모가 되기에 아빠는 아직도 자기중심적인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모든 아이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어른은 그들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 라는 미사여구로 방송은 끝난다. 실제로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주체가 그들의 부모에 국한된다. 제대로 된 부모가 아니라면 사랑받을 권리는 사라진다. 아이의 운명이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그들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 게 맞을까? 맞을 수도 있다. 의무가 아니라 책임이라면, 회피하기 쉽고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 모든 어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을 학대하는가? 꼭 죽도록 때리고 장애를 일으킬 상해가 아니라도, 알게 모르게 작든 크든 보호라기보다는 자신들 좋을 대로 이용하거나 조롱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가? 


 돈 잘 벌고 다정한 아빠, 온화하고 세심한 엄마가 없는 아이라면, 한국에선 태어나지 않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출산율은 괜히 낮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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