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환자거래, 평생환자가 생기는 이유정신병원 환자거래, 평생환자가 생기는 이유

Posted at 2014. 3. 10. 16:34 | Posted in 리뷰/TV

 사람의 건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체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이다. 사람의 성분 또한 크게 이 두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정신은 신체처럼 병이 걸리더라도,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줏어들은 이야기로 심각한 정신분열 증세의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들은 적이 있다. 답은 방치이다. 정신병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격리시키고,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을 제공한다. 물론 몇가지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관한 케어나 진단은 전무하다고 한다. 진단 진료 치료 보다는 관찰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이번 추적60분은 그래서 좀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마음의 병에 걸린채로 방치 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별다른 의학적 수단이 없음에 방치를 동조했다. 하지만, 그 방치의 이면에는 납치, 감금이라는 수단이 있었고, 그 수단이 생기는데에 우리의 세금이 국가라는 컨트롤 타위로 인해 그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세금도 아깝지만, 그렇게 납치 감금 격리된 사람들은 정신병이 있는게 아니라, 무언가의 이익 때문에 멀쩡함에도 그렇게 당한다는 것이다. 



추적 60분 나는 `평생환자`였다 - 정신병원 환자거래 실태 보고



 윤씨는 IMF 때 실직한 많은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절망감에 술을 입에 댄 모양이다. 정도가 심했을까? 급기야 가족이 그를 알콜중독을 치료하는 정신병원에 보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는 그림이 좀 이상했다. 그가 원하거나 합의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건장한 사내가 윤씨를 끌고가다시피 해서 들어갔기 때문이다. 윤씨의 말에 따르면 정신병원은 지옥같았다고 한다. 무슨 약인지도 모를 약과 주사를 투여 받아야한다. 거부를 하면 일명 강박이라고 하는 묶임을 당하는데, 사람은 묶은채로 한 시간을 버티기가 힘들다. 몸의 자유를 빼앗겨 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약 7년을 보낸다. 그것도 한 정신병원이 아니라 약 17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닌다. 그의 알콜의존중이 너무 심했을까? 그래서 국내 유수한 의료기관들을 돌며 치료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퇴원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퇴원이라는 것이 병원을 나간다는 것이지, 자유를 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퇴원하고 병원을 나서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또 건장한 사내들이 그를 차에 태워 다른 병원으로 집어넣었다. 그 과정 중에 환자 본인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본인의 의견을 무시한채 사람을 잡아 이동하는 것, 난 이것을 "납치"라는 범죄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즉 가족 2명의 동의와 전문의 소견이 있으면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본인의 자유를 다른 사람 3명이서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굉장히 피해를 끼칠 정신병력자에게 이런 조치는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이 법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굳이 신경 안써도 되는 사람이 많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야될 문제 같다.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본인의 동의가 아닐 경우, 6개월이 지나면 퇴원을 시켜야한다. 하지만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시간은 다시 리셋된다. 그것을 이용하여 병원들은 서로 환자를 데려갈려고 한다. 우리나라 정신병원들이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이어 받아 환자를 극진히 모시고 싶어서 일까? 



 6개월이 되면, 환자가 병원이라는 울타리를 빠져나갈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존재한다. 하지만 6개월이 되기 전에 환자를 팔면 어떨까? 환자를 사는 병원은 입원비를 창출하고, 그간 입원비를 받던 병원은 판매비를 받는 것이다. 이런 행태를 보며 나는 문득 인신매매가 생각났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돈으로 몸을 사고 파는 행위를 난 인신매매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병원은 인신매매를 한다는 것인데, 그 인신매매가 우리나라 보건복지법 이하 정신보건법에 명시된 법안 때문에 완벽한 보호를 받는다. 이는 국가가 정신병자라고 낙인 찍힌 사람에 대해 인신매매를 허한 것과 다름이 없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한다. 물론 지금의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더구나 정신병이 있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나보다.



 돈이 관련된 곳에는 항상 관련 산업이 발달한다. 속된 말로 주변 상권이 잘되면 덩달아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지 않는가? 그 값이 오름에 그 주변 땅들과 집들은 아무 행위를 안했음에도 값이 오른다. 즉 모든 관련한 것들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병원 환자거래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를 거래함에 있어서 정신병원들은 환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마치 유통업체와 같이 환자들을 나르고, 충당하고, 6개월에 맞춰 이동시키는 업체도 다수 존재했다. 일명 환자브로커라고 하던데, 이 말에는 엄청난 잔인함이 묻어있다. 마약브로커, 정치브로커, 밀수브로커, 브로커란 중간단계업자를 말한다. 중간에서 어떤 물건을 구매자에게 인수인계하는 중계역할을 하는데 그 대상이 환자인 것이다. 환자가 물건이 되버린 것이다. 



 사람된 도리로 어떻게 가족을 정신병원에 가둘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요즘에 몇이나 될까? 급속한 발전으로 이룬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한국이란 나라의 오랜 정신이었던 인본주의와 온정은 찾아볼 수 없다. 정신병원은 이 틈바구니에서 꾸준한 소득을 올릴 기회를 찾은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변하였고, 자신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해를 끼치고 많은 손해를 감내해야하는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었다. 치매에 걸린 부모와, 술에 쩔어 사는 가족은 그래서 정신병원 일용한 수입원이 되기에 알맞다. 


 실제로 위에서 말한 윤씨의 경우도 알콜 의존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는 7년간 입원하며, 단 한모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럼에도 7년간 그는 알콜의존증으로 병원을 돌아다녔다.



 윤씨가 그런 정신병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적극적인 알림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편지를 써서 '실질적인 퇴원'을 받아냈다. 환자가 병원을 퇴원하는데 이런 각고의 노력을 해야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이런 윤씨와 같은 사람들을 브로커는 리스트화 해서 가지고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사람들은 환자들을 돈으로 취급하였다. 한번 자신에게 연결된 환자는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이들의 주 고객은 병원이다. 병원이 브로커들을 이용해 베드를 채우는 것이다. 병원도 한 껍질 벗겨보면, 영업을 하는 영리단체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영리 단체 중에 사람 납치해다가 감금해서 돈버는 곳은 없다. 




 브로커들이 일하는 것 자체도 거의 불법화 되있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보호의무자2명 이상의 동의와 전문의의 소견서가 필요하지만 보호자의 신청만 있으면 출동하는 것이다. 전문의 소견 같은 건 없다. 이는 확실한 위법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보호자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지어진 것인데, 보호자에게 완전히 버려지거나, 잊혀진 사람들도 많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지내야한다. 죽을 때까지 나라의 지원을 받아 정신병원에 금전적 이득을 보게해주는 적금의 역할을 해야한다. 



 당연히 길거리의 노숙자와 부랑자들도 이들의 먹잇감이다. 브로커는 갖가지 회유로 노숙자를 유인한다. 노숙자를 태우고 멀리 병원에 가는 것을 추적해 그 병원의 의견을 들어보니, 혼자 판타지 그것도 양판소를 쓰고 있었다. 노숙인 센터와 연계해서 환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노숙인 센터는 그런 적이 없다 잘라 말했다. 노숙인들은 거의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한다. 그들의 입원비는 90~100% 지원이 가능하며, 의료 행위가 아니라 사람 명 수당 지원이 되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약물이나 진료같은 일련의 의료행위 없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은 정신병원에게 입원비를 지원하는 정부 때문에 그 굴레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정부 측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복지를 했을 텐데 그 복지가 감금으로 이어진 것이다. 복지는 하되 관리는 하지 않는 것이다. 


 환자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두는 역할을 한 것은 정부의 무관심과 정신병원의 탐욕과 가족의 냉정 이었다.



물론 실제 치료를 위해 입원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 또한 심각한 사회적 손상를 입는다. 필연적으로 정신병원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갇힌 사람들은 갇혀있는 시간동안 사회성을 상실한다. 이는 수용화 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수용되면 사람의 원래 사회적 기능마저 파괴된다는 이론이라고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연금제도개선 말고 정신보건법 전부를 개정하는 일도 진행중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삽질인 이유는 애초에 정신보건법도 안지켜지기 때문이다. 법을 바꾸면 관련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들을 생겼을 때 그나마 억제력이 생기는 것이다. 실행력은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행위는 원래부터 있었다. 고려장이라는 역사는 거짓된 역사라고 판명되었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 역에 버려진 아이들과, 지하도의 수많은 노숙인들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챙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것을 방해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위법 행위이다. 그 위법을 감시하고 근절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정신병원들은 건재할 것이고, 날로 고령화되고, 힘든 사회속에 치매와 알콜중독자들은 늘어갈 것이다. 환자브로커들의 지갑은 항상 빵빵할 것이다. 그 빵빵한 지갑에 우리의 세금이 들어 있을 것이고, 환자의 눈물도 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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