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성폭력 보고서, 누가 오 대위를 죽였나 - 시사기획 창군 성폭력 보고서, 누가 오 대위를 죽였나 - 시사기획 창

Posted at 2014. 4. 10. 16:41 | Posted in 리뷰/TV

 군대 내 성폭력은 낯선 소식이 아니다. 이미 공공연하게 성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 군대라는 특성상 또 한국군 특유의 남초 성향상 그런 예상은 섣부른 걱정이 아니다. 나라의 부름에 또는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군이라는 직군을 선택한 많은 사람이 지휘체계를 무기로 자행하는 성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망가지거나 사지로 몰리고 있다. 이는 오 대위라는 여군이 죽은 이전에도 그랬고, 죽고 나서도 계속될 것이다. 



 '누가 오 대위를 죽였나?' 라는 제목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노 소령이라는 상위자의 가혹한 폭언과 무시와 성희롱으로 인해 죽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대신 '왜 오 대위는 죽어야만 했는가?'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전혀 군이랑은 상관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심하게 성희롱을 당했으면 죽었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 대위가 죽은 이유는 그 상황에 대해 별다른 해결책을 못 찾아서 오는 깊고 깊은 절망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졸리면 잠을 잔다. 돈을 벌고 싶으면 일을 한다. 같이 어떤 문제는 항상 해결책이 있다. 하지만 군대 내 성폭력, 성희롱은 해결책은 논개가 적장을 안고 투신하듯이 해야 하는 일종의 포기가 필요하다. 그 포기로 오는 자신의 꿈과 미래의 붕괴도 아마 오 대위의 죽음에 한몫을 했으리라 예상만 해본다.





 여장군이 되겠다며, 군대에 자신의 꿈과 청춘을 바치려던 오 대위는 어느 날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오 대위의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추석 전에 딸이 한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오 대위는 부대 내 여성고충상담관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고충은 누가 들어줄 수 있었을까? 그녀의 고충은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일기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일기마저 그녀는 숨겨야 했다. 그녀가 죽고 남긴 차 안 운전석 깔판 아래에서 빨간 다이어리가 발견되었다. 


 확실히 숨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부라면 자신의 책상 정도는 있을 것이고, 그 책상에 서류와 책들 사이에 둬도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무를 보고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직무실이 아닌 간부숙소 책상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이어리의 보관 장소로는 생소한 운전석 깔판 아래를 선택했다. 웬만해서는 발각될 리 없는 장소이다. 그녀는 죽으면서까지 그 일을 숨기려고 했던 것 같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모든 탈출 방법 중에 가장 완벽하고 궁극적인 탈출 방법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으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죽으려고 생각한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은 없다. 두려울 것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다. 하지만 오 대위의 죽음은 그저 한스럽고 억울하게만 보인다. 우리나라 군의 지휘 무게가 그렇게 육중한 것일까? 









 딸이 추석에 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딸을 추궁했다. 그래서 들은 딸의 군 생활은 너무도 비극적이었다. 성범죄란 것은 피해자는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영향도 미치고, 가족도 미친다. 


 언젠가 성범죄를 당한 사람에 관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밥을 먹거나 TV를 보며 웃고 즐길 때 조차 피해자의 몸을 기어 다니는 뱀이 있다. 그 기억은 언제 어느 때라도 발현되며, 그것에 대한 유통기한은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과연 목숨 바쳐 명령을 수행하는 부하이면 그런 식의 정신적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일을 해도 되는 것일까? 범죄를 떠나 그런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머릿속에는 어차피 부하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 나가선 지나가는 아가씨 다리도 못 쳐다볼 찌질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영향력 내에 있는 사람을 더욱 가열차게 희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 대위의 일기를 살펴보자.


1월 1일 - 신정 새해다. 하지만 나에겐 조금 더 잘 수 있는 날, 올해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1월 17일 -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극으로 치닫는 모욕, 병사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고, 다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아, 진짜 눈 뜨기가 싫다.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2월 15일 - 하급자 앞에서, 병사 앞에서 날 바보로 만든다. 진짜 내가 없어졌으면 하시는 걸까? 미칠 것 같고 계속 토하고 이러다가 내가 어떻게 될 거 같아 무섭다, 두렵다. 이런 내가 너무 불쌍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4월 28일 - 최악이다. 이제 내 업무에서 손 떼라고 하신다. 이렇게 모진 소리를 들으며 내가 삶을 영위해야 하나 싶다. 어둠이 차올라서 나를 다 태워버릴 것 같다. 전혀 살고있는 거 같지 않다.


6월 2일 - 이번 주 정말 힘들었다. 나보고 정신지체장애인, 여자소 란다.  제대로 확인 못 해서 또 정신지체장애인.


7월 12일 - 수치스러운 이야길 들었다. 농담이라고 할지라도 '나랑 잘래?' 이건 심하지 않은가? 치욕적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저질 B급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하는 걸까? 마음 같아서 확 찌르고 싶지만, 온전히 끝낼 수 없으면 소용없는 걸 알고 있기에 말하지 못하겠다. 정도가 넘어서고 있다.


8월 16일 - 참모님은 성과 관련된 농담을 지나치게 좋아하신다. '남자친구와 성관계할 때 전화하면 안 좋을거 아니냐','성관계를 문란하게 하면 저런 병 생기지','여자란 자고로 몸 관리 잘해야 해'라고 말한다.





 오 대위는 자신의 친구에게도 말을 했다. 친구의 말은 거의 상급자가 오 대위에게 성상납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다. 한 번 같이 자면 군 생활이 편해질까? 정말 한 번 같이 자면 끝날까? 확 찌른다는 오 대위의 생각이 그렇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오 대위는 아마 반항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군대 상급자 특유의 협박도 있었다. 너 하나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말에 어떤 논리도 없지만, 막상 군대라는 사방이 막혀있는 곳에서 절대적인 상급자가 무서운 분위기로 말을 하면, 공포감이 있다. 그때 느꼈을 절망감과 두려움은 군인이라고 해도 여자인 오 대위에게 버거웠을 것이다. 




 오 대위를 희롱한 상급자인 노 소령은 그 일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 중에도 군대에서 흔히 있는 문서 위조를 뽐냈다. 노 소령이 제출한 자료는 오 대위의 퇴근 시간이 가지런히 적혀있었으며, 야근 사실은 없다는 것을 나타냈다. 하지만 다행히 유족 측이 제시한 오 대위의 야근 자료는 꽤 험한 근무를 짐작게 할 만큼 많은 야근이 기록되어 있었다. 


 군대에 다녀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과 시간 못지않게 근무도 힘들다. 아마 노 소령이 말한 성상납으로 인해 편해지는 군 생활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빡세던 근무가 갑자기 줄어들면 당연히 군 생활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오 대위가 죽으며 노 소령에 관한 성희롱 의혹에 대해 다른 4명의 여군도 고소했다. 하지만 곧 그 부대에 있던 3명의 여군이 한꺼번에 고소를 취하한다. 이유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군대 다녀와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집단생활에 집단 규율이 있는 곳에서 무리의 우두머리격으로 높은 상급자를 고소한다는 것은 꽤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더라도 결국,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혹은 '그런 식이면 앞으로 진급할 생각하지 마라.' 같은 갖가지 회유와 협박들이 난무했으리란 건 너무도 예측이 쉽다.  



 이 사건을 언론을 통해서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바로 해당 부대의 부 사단장이라는 사람이 오 대위의 죽음에 관련해 천도재를 지낸 것이다. 그 천도재 자체의 선악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천도재를 지내면서 오 대위의 영혼이 '노 소령을 풀어줘라, 더 괴롭히지 마라, 아빠 몸 다치니까 괴롭히지 마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천도재라는 의식을 잘 모르지만, 영혼을 불러와서 죽은 사람의 원을 들어주는 것인 모양이다. 


 죽은 오 대위가 노 소령을 상대로 저런 말을 했을 리가 만무하다. 즉 부대는 오 대위의 죽음까지 유린해가며 제 가족 감싸기를 시전한 것이다. 그런 파렴치한 짓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부모에게 그대로 알린 사람들도 부디 예쁜 딸 낳아 꼭 군인을 만들었으면 한다. 군인 가족이라면 아무 피해 없을까? 얼마전 방송한 김훈 중위도 군인 가족이었다. 그럼에도 군에서는 김훈 중위 죽음에 대한 합당한 증거들은 모조리 무시하고 오직 자살로만 몰고 갔던 것을 기억한다. 또한 우리나라 군인들의 문란하고 마초적이며, 용맹한? 성 의식을 믿는다. 



 마음 아픈 부모의 상담을 왜 자신이 하는 걸까? 부모가 군인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상담하는 걸까? 부하가 못된 짓을 당하고 자살을 했는데, 부하 관리 못 한 상급자가 무슨 권한이 있을까? 전투력 약화도 군법에 위배된다. 흔한 우스갯소리로 자위행위도 힘을 쓰기 때문에 전투력 약화며, 군법에 회부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부하 관리 못 해서 죽게 한 상급자는 어떨까? 장교 한 명 배출하는 데 쓰이는 세금과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충분한 전투력 손실을 초래한 것 아닐까? 군에서는 제법 높으신 양반이라 군법을 초월하려나? 


 부사단장의 전언에는 분명 '아빠 몸 다치니까.'라는 내용도 있다. 노 소령을 고소하고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하는데 왜 엄한 아빠 몸이 다친다는 걸까? 총을 가진 군인의 양아치 성이 민간인에게까지 뻗친 사례이다. 고소 취하 안 하면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에둘러서 한 협박은 군바리답게 역효과만 나타내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 15사단 부사단장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알 사람들은 다 알게 될 것이다. 자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노 소령은 심문 당시 군장 착용할 때 옷매무새를 도와줬고, 어깨를 주무른 것은 사실이나 성희롱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농담으로라도 '나랑 잘래?'라고는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 중 나온 증언을 보면 거짓말이라는 게 느껴진다. 탄띠 길이를 조정한다며 온 몸을 만지고, 직무를 보는 오 대위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때 오 대위의 얼굴을 일그러져 있었다고 한다. 상대가 수치심을 느끼면 그것은 성희롱이라고 규정된 사회적 약속에 의하면 결국 노 소령은 스스로 자신이 성희롱했다고 증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 


 '자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같이 있는데 내 의도도 모르냐 같이 자야지 않아? 같이 잘까?'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다른 여 하사에게도 '얼굴에 색기가 있다.', '남자랑 많이 자서 성관계가 문란해 병원에 자주 들락거린다.' 했다고도 한다.




 오 대위 아버지는 죄를 인정했다면 소령을 풀어주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결국, 노 소령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물론 성희롱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이나 무기징역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걸로 사람이 죽었다. 한 사람의 악질적인 행위로 사람이 죽었는데 2년이라는 형량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회의 사법계도 그렇지만, 군의 법은 성범죄에 더욱 관대했다. 


 높은 지위를 가진 군인들이 노 소령처럼 하나같이 발정 나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법 체계를 모른 척 한다면 결국 그 법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도 언젠가는 같은 성범죄를 저지름에 보험을 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 대위 사건은 크게 이슈를 탄 사건이지만, 그에 대한 군의 반성이라든가, 군 성범죄에 관한 의식이 바뀌진 않았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군법또한, 군대의 높으신 윗분들의 성욕을 위해 언제나 관대할 준비를 하는, 다리를 벌리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창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신성한 의무가 몇몇 미꾸라지 같은 윗분들로 생식성 넘치는 문란한 장소가 돼버리는 것이다. 딸이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라!



 군대 성범죄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통계상으로 사병인 일병과 하사의 피해자가 제일 많았다. 사병은 제쳐놓고 하사가 제일 피해사례가 많은 이유는 아마 짧은 경력으로 인한 무지에서 오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멋 모르면 용감할 수 있다. 하지만 계급이 높아지고 그 세계에 적응할수록 무서운 것이 늘어나며,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것에 대한 아까움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애써 사건을 묻으려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군대 특유의 분위기에 맞춰 묻힌 성범죄는 얼마나 많을까? 남녀 구분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걸로 고통받았을까? 그리고 그 고통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느끼는 억울함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 사람들 개개인의 인권에 대한 문제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군기강 문란이 걱정된다. 하긴, 높으신 양반들은 원래 문란하니까 기강도 문란해야 정상이려나?




 인생은 죽을 때까지 엔딩이 아니다. 더군다나 정의의 사도도 없으며, 복선도 없고, 예외적인 상황은 더더욱 없다. 언제나 권력과 돈으로 흐르며 설령 악의 길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스토리를 쓴 작가도 없을뿐더러 수정도 되지 않는다. 


 여군이 성희롱에 대해 큰 수치심과 저항을 하더라도 직업으로써 군인을 포기한다는 각오하에 가능하다. 인터뷰에 나선 사람도 그 점을 설파했다. 한 번의 정의를 위해서 고소를 하고 사건을 벌이기엔 그다음 당할 불이익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사필귀정에 중독되어버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그래도 고소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며 항변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미필일 것이다.















 이미 전역한 예비역 해군 대위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을 보면 군대 내 성 의식이 얼마나 후진적이고 원시적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임관을 하고나서도 성희롱으로 각서까지 받은 사람에게 밥을 같이 먹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거칠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맨날 왕따당하며 뒷자리 앉은 아이가 머리를 툭툭 건드려도 씩씩거리며 째려보기만 하는 것과 같다. 가해 학생이 왕따를 보며 "그래서 뭐 어쩔건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즉 군대 내 성희롱 범죄들은 다분히 양아치 적이라는 것이다. 




 예비역 해군 대위를 성희롱하다가 각서를 쓴 그 사람은 결국 다른 여군을 건드리다가 징계를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성범죄 범의 지갑에는 우리의 세금으로 만든 연금이 꼬박꼬박 들어갈 것이다. 피 같은 돈이 범죄자의 생활을 위해 쓰인다. 그저 안보만 지켜주면 상관없는 것일까? 6.25의 아픔이나 북괴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석연치 않다. 


 진짜 나라 지키는 사람은 최전방에서 손발 얼어가며 시급 150원 정도 받는 일반 사병들 아닌가? 정말 잘 모르겠다.



 군에서는 직업군인의 경우 군복만 벗어도, 그러니까 퇴직만 당해도 큰 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군대도 직장의 개념으로 보면 파직은 최고의 형벌이 맞다. 


 직장에서 성희롱을 일으키면 사회에선 법원으로 간다. 법원은 삼권분립체제의 한 축이며, 정의를 구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목적을 가지고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기구이다. 군대도 군 법원이 있다. 하지만 군 법원은 정의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가 더 우선인 것 같다. 


 군대는 상명하복 체제이다. 군 판사 또한 군인의 한 명으로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설령 자신이 판결을 내릴 사람이 유영철이라 하더라도 상급자가 무죄 처리하라면 할 것이다. 그것 역시 군법에서 지시하고 있는 명령복종의 일환이다. 





 만에 하나 고소해서 잘 처리됐다고 가정해도, 결국 그 사람은 조직에서 도태되며, 왕따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자신의 상급자를 고발한 사람을 과연 조직이라는 단단한 그물망을 신조로 삼는 사람들이 반가워할까?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더라도 달가운 존재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진급은 물 건너가고 전역이 기다릴 뿐이다. 아마 이건 군대 문제이기도 하지만 조직 내 부조리보다는 불화나 하극상을 더 금기시하는 우리나라의 종족 특성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런 가운데 느꼈을 오 대위의 고민과 내적 갈등은 표현하기 힘들다.

은색 식판에 반찬을 담으며 오늘 하루도 상관의 폭언과 성희롱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가운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총기 사고를 낼까?"

"죽여버릴까? 아무도 모르게 칼로?"

"그냥 성을 바치고 편하게 살까?"

"너무 수치스럽다. 성 노리개가 되는걸까?"

"고소할까? 그러면 내 꿈인 장군은 아예 물 건너갈 텐데"

"그래, 죽자. 죽어버리자."













 사병인 남자들도 군대 내 성범죄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성적 성향이 달라서 생기는 동성애적 사건도 있겠지만, 위의 사례를 보듯 성적으로 가혹행위를 하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이는 군대에서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대물림된다. 


 전통을 지키기 위한 선임들은 후임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든, 괴로움을 느끼든 그것이 군대에서 행해야 할 하나의 관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자신들도 당했으므로 후임도 당해야 한다는 비논리적인 사고로 고통을 준다. 


 단순한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요즘 군대도 가해자에게 꽤 적대적으로 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의 경우는 위에서 볼 수 있듯 군 헌병마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군대는 신속, 정확이 모토이다. 그래서일까? 피해자에게도 신속 정확한 증언을 원하는 것 같다. 어떤 정신적 혼란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상관할 바 아니다. 신속 정확하게 증언하지 못하면 증거 부족이 돼버린다. 가해자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것이다. 1:1로 싸우면 북한도 못 이긴다고 호언장담하며 "나는 국민의 세금을 갈아먹는 식충이요."라고 자백했던 군부 내에서 하급 군인의 인권은 없는 셈이다. 군인은 신성한 의무를 잠깐이지만 복무하러 온 '국민'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쓰다 버릴 군용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일까? 





 총 235건의 군 성범죄중에 불기소가 168건 기소가 140건이다. 그중 기소된 사건의 실형의 12건으로 전체의 약 12%이다. 







 부모가 통곡한다. 같이 지냈던 사병이 안타까워한다. 여군의 상징과 같은 거물도 유감을 표명한다. 하지만 모두 허공에 노 젖기이다.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떤 은밀한 유린이 군대에서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군법은 계속 관대한 척하며 유린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지만 누구에게는 널리고 널린 군인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신해도 자신의 앞날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군대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들이 소재 없을 때마다 쓰기 좋은 몇 개월이나 몇 년 지난 자극적이며 공분을 사기 좋은 소재가 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류의 군 문제가 이슈가 되고 방송이 되겠지만, 절대로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 변할 마음도 없을 것이다. 


 꼭 변하지 않더라도 국민들 중 자기만 아니면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듯 자기만 아니면 괜찮은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전 국민에서 보면 정말 소수인 군인이나 직업군인들의 인권같은 것은 장애인 만큼 못하더라도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쉬는 날 TV 앞에 앉아 이 짜증나는 세상에 욕할 거리로 군대를 까는 것은 매우 달가워한다. 자신과 상관없고 다수의 동조자가 있는 상황에서 욕하고 분노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그래서 시청자도 즐겁고, 시청률 높인 방송사도 즐겁다. 


 우리나라 군대는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나라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나라란 몇몇 특권층이 주류인 형태의 집단을 수식한다. 


 정치를 왜 하느냐며 통곡하는 오 대위 어머니의 절규가 왠지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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