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건, 부산외대생 사망, 그리고 보상?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건, 부산외대생 사망, 그리고 보상?

Posted at 2014. 2. 18. 12:56 | Posted in BLOG/시사사회

 부산외대의 학생들이 큰 봉변을 당했다고생고생해서 들어간 대학아직 입학식도 하기 에 OT라는 명목으로 모인 학생들은 차디차고 낯선 곳에서 죽었다명복을 빌며확실한 진상파악과 원인 규명이 있었으면 한다나이가 19살이었다19살 그 학생들의 가능성은 무너진 강당의 잔재와 함께 묻혀버렸다




나의 OT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OT는 대학 강당이었다. 학교 내에서 간소하게 치렀다. OT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신입생이 학교에 대한 적응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다. 왜 장소가 필요했을까? 우리나라 대학문화는 공공연하게 군대문화가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숭X대의 선배 대하는 매뉴얼 사건도 그렇다. 대학생활에 설레는 신입생들이라고 해서 대학 관련 행사를 참여하고 싶은 이유는 없다. 수능 때문에 너무나 지쳤을 테고, 이제 좀 쉬거나 즐기려는 찰나 아니었을까? 짐작만 해본다. 대학의 거의 모든 행사는 압력에 의한 참가가 많다. 나의 경험상 그렇고, 많은 지인의 증언? 으로도 그렇다. 이번 사건 또한 그런 압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신입생의 적응을 돕기 위해 하는 교육을 왜 그런 산간 외딴곳에 서 했는지는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억지감동에 이은 진성 소름

 

 이 사건은 소름 끼쳤다. 사건 자체에 대한 소름이 아니다. 그들의 불행은 안타깝다. 하지만 소름이 끼친다는 것은 다른 감정이다. 소름을 느낀 것은 바로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였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방금 자식이 죽은 부모를 인터뷰했을까? 지금 기분이 어떠시죠?’ 라고 물어봤을까? 그렇게 그 기분이 궁금하면 자신의 자식을 죽여보면 알 것 아닌가? 짐작할 수 있는 슬픔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게 함이었을까? 눈물을 보이면 감성 폭발한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광고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국민의 알 권리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까지도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걸까? 난 이해가 안 갔다. 그 소름 돋는 인터뷰가 끝나고 한 번 더 소름이 돋았다. 바로 광고였다. 언론은 어떤 사건이든 컨텐츠화 한다. 그 컨텐츠는 뉴스와 맞닿아있는 광고를 내보내기 위함이다. 그래야 언론사도 경제성을 영위할 수 있다. 광고 당연히 해야 한다. 어떤 업이든 보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광고도 가려서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 상조회사 광고가 나왔다. 그리고 보험회사 광고도 나왔다. 난 소름이 돋았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리조트 사의 안전 불감증이라고 생각한다. 조립식 건물이라고 하는데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막연히 상상만 할 뿐이다. 건물이란 것은 구조적으로 견딜 수 있는 하중이 정해져있다고 한다. 그래서 철근이나 H빔이 사용된다. 하지만 뉴스 상으로 보면 그 건물은 조립식 건물이므로 그런 하중을 견딜만한 건축재가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리조트사는 이를 알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눈이 펑펑 오는 시간에 직원 한 명이 여기 위험해요.’ 라고 한마디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아까운 젊은이들이 그렇게 비명횡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착한 사마리아 법을 옹호하지 않는다. 리조트 사는 학생들에게 OT 행사에 관한 비용을 받았을 것이다. 그 비용 안에는 학생들이 건물 안에서 행사를 진행함에 안전이라는 명목도 포함돼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리조트 소유기업인 코오롱의 대책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그냥 기자들 모아놓고 죄송합니다.” 하며 보기 싫은 대머리 정수리를 보이고 끝난다면 분명 인과응보를 받게 될 것이다.

 


 학생들이 입학식을 치르지 않아 보험처리가 어찌 될지 모른다는 기사를 봤다. 부산외대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 데에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워프하는 느낌이었다. 난 교육행정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부산외대생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학생들은 부산외대라는 학교가 없었으면 거기 있지 않았을 테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용과 사람 목숨을 저울질하며 책임회피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생명 윤리는 바닥이라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자연재해?


 유례없는 폭설로 건물이 붕괴하였다. 는 명제에 대해 난 강한 의구심을 들고 있다. 건축 관련법을 하나도 모르지만 애초에 그런 하중도 못 버티는 건물을 레크레이션의 장소로 쓴다는 용도허가를 관련 기관에서 내주었을까? 라는 의문이다. 그리고 OT에 관한 리베이트도 확실히 조사했으면 한다. 일면 자연재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연재해는 사건 발달의 방아쇠였을 뿐 화약과 뇌관 총구 등은 다 준비되있던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죽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마무리가 필요하다.

 


손가락으로 지옥 예약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악플러'


 언제나 그랬듯 이 사건에도 관심 종자들이 들끓었다. 악플이라고 한정 짓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을 정도의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연예인을 대상으로 이유 없는 욕과 비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상대로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중에는 부산외대 추가합격자라며 몇 명만 더 죽으면 자신이 합격 일텐데. 라는 댓글도 있었다. 타인의 눈물은 그냥 물일 뿐이다.’ 라는 것이다. 저런 소시오패스같 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교육 때문일 걸까? 어른들은 저런 사람들을 양성하기 위해 지금의 교육제도를 만든 정치인들을 뽑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목숨이 아닌 가능성에 대한 보상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이 가능하다. 평소 나의 지론이다. 내 생각이 아닌 경험을 빗대어보면서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라고한다. 그런 사람들 집 장롱 깊숙한 곳에는 종신보험증서가 있지 않나?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 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가능성은 돈으로 환산 불가하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그 사람은 당장 내일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고, 위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가능성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하다. 19살 정도의 어리고 가능성 충만한 대학생들이 무더기 죽었다. 우리나라는 일정 가능성을 잃은 것이다. 그 가능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적정한 보상을 할 수 있을까? 많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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