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이야기 Y - 대학가 휩쓴 '쩐의 덫' 대학생 대출 사기궁금한 이야기 Y - 대학가 휩쓴 '쩐의 덫' 대학생 대출 사기

Posted at 2014. 6. 7. 10:33 | Posted in 리뷰/TV

 너무 흔한 사기였다. 그리고 그 사기의 원흉은 돈을 쉽게 벌려는 나태와 욕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죄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는 평생에 걸쳐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집안이 어려워 사기 금액의 원금이라도 변제해주지 못하면 꾸준한 학비와 더불어 이자까지 감수해야 한다. 나태와 욕심이 죄는 아닐지라도 죗값은 고스란히 받는 셈이다. 


 대학생이 대출 사기를 당했다. 천여만 원을 대출해서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금과 함께 수고비로 약 백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뻔하디뻔한 사기에 속은 이유를 '사회 경험이 적어서.' 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 너무 잘 적응해서 그런 것 으로 보인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쉽게 쉽게 돈 버는 사람이 성실하고 땀 흘리는 자 위에 서는 세상, 노력보다는 운이 중요한 세상, 한국은 그렇게 가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본대로 행동한 것 뿐 아닐까? 다만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기를 당했다. 










 대학생들이 사기를 당하기에 앞서 사기꾼을 신뢰한 계기는 그가 몰고 다니는 차와 명품시계와 같은 겉치레였다. 겉모습으로 인생이 걸린 담보를 주는 신뢰를 준 것이다. 비단 대학생 만의 문제는 아니다. 외모로 사람을 인지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했으며, 왠지 외제 냄새가 풍기는 차에서 내리면 그 사람은 별 설명이나 인사 없이도 흔히 '먹고 들어간다.'고 표현되는 첫인상의 플러스를 얻는다. 실제로 그 사람이 월 100만 원을 받는 호텔직원이라 깔끔한 복장을 하고 손님의 외제 차를 발렛 하는지는 별 상관이 없다. 그건 '속사정'이라는 것이니까.


 피해 대학생들도 아마 그 속사정을 알아보기보다는 번드르르한 말과 겉모습에 알아서 신뢰를 퍼줬을 것이다. 흔한 어른처럼. 






 돈 나올 구멍이 전혀 없어 보이는 무능력한 학생일지라도 그를 속이면 돈이 나온다. 애초에 그 사회와 금융계의 잘못이 있다고 느껴진다. 대학생 40여 명을 속여 챙긴 돈은 약 6억 7천만 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이건 반대로 말하면 대학생 40명만 속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범죄다. 하지만 형법상의 벌을 받고 나서 변제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설사 민사가 걸려 패소하더라도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니까 처음에 뺏긴 사람만 온전한 피해자로 남는다. 


 목숨값이라는 게 존재한다. 평소엔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어떤 형태의 목숨값이라도 노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들이 꼭 사기꾼이라고는 못한다. 그 사람은 종교인이 될 수도 있고, 사업가나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애인이나 절친한 친구, 혹은 부모도 될 수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는 명제는 사실이다. 다만, 법은 조금 멀 뿐, 주먹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일단 눈앞의 주먹에 겁을 안 먹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주먹을 앞세운 협박으로 친구도 알아보란다고 진짜 그렇게 한 학생의 말은 왠지 이해가 안 간다. 주먹을 앞세우며, '친구를 데려오면 너의 빚은 다 갚아준다.'식의 회유가 있었으면 바로 인정하겠지만, 그냥 위협적이라는 이유로 자신도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친구까지 끌어드리는 친절한 노예가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기꾼은 돈을 갚는다며, 피해자들을 경찰서 앞에 모았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벌금 50만 원이 없어서 노역하러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배 째!' 라는 것이다. 이 경우 형법상 사기죄로 아예 누런 콩밥을 먹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법상 금액의 변제는 요원하다. 


 이 사건에서 나쁜 건 물론 사기꾼이다. 사회 경험이 적어서, 착해서, 멍청해서 어떤 이유에서건 피해 대학생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대부분 어른이 하는 말에는 사기꾼보다 피해 대학생을 질타하는 내용이 많다. 우리 사회는 그 정도로 약삭빠르거나, 악하거나, 배금 적이지 못하면 범죄자보다 더 욕을 먹는 사회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걸 싫어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렇게 말하는 대부분 어른들 또한 사기의 피해자이다. 그들은 투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투표를 바라는 모든 정치인이 호언장담 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 투표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기 피해자이다. '난 투표 안 하니까 멍청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어른은 피해자가 아니라 노예이다. 더한 멍청이에 사회를 좀먹는 벌레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암세포와 별다르지 않다. 


 대학생 욕할 것 하나 없다. 소득과 상관없이 대출을 해주는 사회가 나쁜 것이고, 미리 학생들에게 이런 범죄에 대한 예방 교육을 하지 않은 사회가 나쁜 것이다. 















  대학생들의 대출이 주로 이루어졌던 제2 금융권의 저축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그 사람의 채무 변제 능력에 의해 대출을 결정하진 않는 모양이다. 갚든, 갚지 못하든 일단 빌려줄 수는 있다. 그것이 사회초년생으로서 이제 인생의 시작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래서 그 사람이 채무를 갚지 못할 시 어떤 상황에 처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앎에도 그 상황보다 채무로 늘어나는 이자 효율에 우리 사회는 거침없이 효율을 취한다. 


대학생의 미래 < 이자 이득 (어떤 나라의 상식)





 한 대학생은 채무에 대해 죽어서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큰 희망을 얻은 듯 보인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매우 깔끔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어차피 가해자의 꼴을 보니 변제받기는 틀렸다.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죽는 방법은 너무 극단적이다. 평균 채무 금액을 약 2,500만 원으로 산정하고 생각해도 학교를 휴학하고 막노동판을 뛰면서 이자와 원금을 갚으면 약 3년 안에 변제 가능하다. 지금 그게 어려워서 죽는다는 걸까? 소득도 없는 대학생 주제에 쉽게 앉아서 돈놀이하려고 했던 사람이기에 그런 노동은 죽기보다 싫은 걸까? 물론 그렇게 일해서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보다 슈퍼에서 번개탄을 사는 게 더 빠르고 쉽긴 하다. 하지만 효율적이진 않다.  






 절대 불변의 진리는 존재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이미 뱃속에 부모를 배정받은 순간부터 공평하지 않다. 어떤 아이는 뱃속에 탄생하자마자 그 어미와 아비의 미래를 위해 사지가 찢겨 죽기도 하며, 태어나더라도 가정의 붕괴로 고아원에 버려지기도 한다. 사랑받으며, 부족함 없이 잘 성장하다가도 결국 사기범을 만나거나 탔던 배가 침몰하기도 한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애초에 손해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손해다. 멍청하고 안이했고 나태했으며, 경솔했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응당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반성의 의미이지, 후회라는 것이 아니다.




 제 2금융권은 대출이 쉬운가 보다. 이는 당연히 금융감독원의 허가 아래 시행되는 것이다. 즉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대학생들의 대출액이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른 은행의 이자 소득도 늘어난다. 국가는 은행의 이득을 위해 대학생들마저 채무의 구렁텅이 몰아넣고 있다고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을 빌린 것도 쓰는 것도 대학생이라는 성인에게는 자유이다. 그래서 잘못된 것은 없을까? 다 크다 못해, 이제는 살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사람이라도 돈 한 번 잘못 빌려서 한강 온도계를 찾아보는 세상이다. 대학생은 다를까? 더 현명할까? 무언가 크게 뒤틀려 있다는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일까?


 세월호 사고는 선사의 물욕과 선장 및 선원들의 이기심에서 발현된 참사이다. 그 뒤에는 국가기관들의 안이함과 사악함이 기본으로 깔렸다. 이런 대학생 대출 사기 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기범의 물욕과 사악함으로 범죄가 발현됐으나, 그 뒤에는 국가기관의 기업 중심적 가치 중심적 사고가 기본에 깔리진 않았을까? 하긴 이런 국가와 정부라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가 가능할 것이다.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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